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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는 어디?

역사 속 대외 전진 기지에 관한 나의 엉뚱한 생각들

  심청전은 이렇게 시작한다.


  ‘황주 도화동에 심학규라는 봉사가 있으니, 대대로 내려오며 벼슬하던 거족으로 명망이 자자하더니 가운이 기울어 가난하여지고 어려서 눈을 못 보게 되니 시골에서 곤궁하게 지내었다. 하지만 본래 양반의 후손으로 행실이 청렴하고 정직하며 지조와 기개가 고상하므로 동네 사람은 모두 칭찬을 마지 아니 하였다.’


  심청전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들어 있는 '효녀 지은 설화', 전라남도의 '관음사 연기 설화', <삼국유사>의 '거타지 설화', '적성의전', '양풍 운전'  등과 같이 주인공이 눈을 뜨는 이른바 '개안 설화(開眼說話)'에 그 뿌리를 두는 것으로 학자들은  설명한다. 이와 같이 구전으로 전하는 우리의 민간 이야기들은 그 근원을 명확히 따지고 구분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할지 모른다. 아니 굳이 따지고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야기 속 시대와 지명, 관직명 등도 시대 상황을 반영하거나 오랜 역사 내내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던 중국의 영향을 받든 등, 그 배경 역시 매우 복잡하다. 예를 들어 '본래 양반의 후손으로' 등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이른바 '몰락 양반'이라는 개념은 민간 이야기가 소설로 채록되거나 판소리로 만들어졌던 '조선 후기'라는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용어일 테고, 심청을 아꼈던  ‘장승상 댁 마님’에서 승상이란 벼슬 명칭은 대단히 중국적인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명확하지 않은 영역이 오히려 상상력을 펼칠 공간이 넓다는 것은 반전이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나의 역사적 상상력에 기반한다. 그러나 완전히 허황한 상상력이 아니라 역사적 팩트에 기반한 것이니만큼 허무맹랑한 '뻘소리'만은 아닐 수 있을 것이니, 여러분도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쳐 주시길!! 


  우리가 잘 알듯이 효녀 심청이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별다른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던 차에 마침 공양할 처녀를 찾는 뱃사람을 만난다. 뱃사람들은 심청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배를 타고 만리를 다니는데, 뱃길에 인당수라는 곳이 있어 변화 불측하여 자칫하면 몰사를 당합니다. 15세 처녀를 제수로 제사를 지내면, 수로 만 리(水路萬里)를 무사히 왕래하고, 장사도 흥왕 하옵기로 몸 팔 처녀 있으면 값은 관계치 않겠나이다." 


  이번 글에서 나의 관심은 '도대체 인당수는 어디일까? 실제 있기나 한 지역일까?'에 있다. 이야기 속 지명은 실제 존재하는 곳일 수도 있지만 예를 들어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이나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같이 소설가의 상상 속 지명일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인당수도 그저 상상 속의 지명일 수도, 실재하는 지명일 수도 있을 터이다. 나는 얄팍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곳이 어딜까를 추론해보고자 한다.


  소설 속 심청의 고을은 '황주'이다. 우리나라 지명에 황해도 황주가 실존한다. 비록 분단으로 인하여 오고 갈 수 없는 북한 지역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는 인당수를 황해도 장산곶과 경기도 백령도 사이의 파도가 장난 아니게 심한 바다로 추론하는 학자들이 있을 뿐 아니라, 실제 백령도 주민들이 그 바다를 인당수로 불러왔다고 하며, 이야기 속심청을 태웠던 연꽃이 섬으로 떠내려 와서 뿌리를 내린 곳이란 전설을 가진 연꽃 바위가 백령도 북단에 존재하는 등, 백령도 바닷길쯤에 인당수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온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실재 황주 지역을 중심으로 가공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나는 인당수의 실제 모델이 되는 바닷길은 혹 울돌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울돌목은 한자로 명량(鳴梁)이다. 이 곳은 임진왜란 당시 명량대첩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최근 가슴 아픈 참사의 현장인 세월호 침몰의 현장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그만큼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가는 공식적인 뱃길은 신라시대는 당항성(지금의 안산, 화성 바닷가)이었고, 고려 전기에는 벽란도(개성 근처 예성강 하구에 있던 포구)였다. 황주는 바로 이 벽란도와 매우 가까운 지역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두 포구는 중국의 산둥반도로 들어가는 항로였다. 


  그런데 고려 후기, 즉 중국의 상황이 송이 금(여진족이 세운 나라)에 의해 양자강 지역으로 쫓겨 가서 남송이 된 후, 중국과의 교역로는 서해안의 연안류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흑산도 인근 해역을 거쳐 항저우로 가는 남중국 뱃길이 중심이 되었다. 그 당시 중국인들이 매우 좋아했다는 고려청자를 가득 싣고 가던 배가 험한 바다 풍랑에 자주 침몰한 지역이 바로 그곳이고, 지금까지 이른바 ‘보물선’으로 해저에 존재하고 있으며, 국가의 허가를 받고 해저 유물을 발굴하는 기업이나 불법적인 도굴꾼들이 도자기들을 건져 올리는 일이 간간 뉴스에 나오는 곳 또한 그 주변이다. 이렇게 고려 후기에는 실질적인 교역로는 바로 남중국 뱃길이었고, 조선에 들어서서는 일체 뱃길을 막았기에 이후로는 바닷길을 이용한 교역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렇게 백령도는 산둥반도로 가는 길이었다면, 울돌목 쪽은 상하이 항저우 등의 남중국으로 가는 뱃길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수로 만 리'라는 조선과 중국의 거리감을 생각해보면 산둥반도 쪽보다는 항저우로 가는 뱃길 어느 쯤엔 가로 인당수를 설정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나름 상상을 해본다. 혹 이 지역을 잘 아시거나 이 부분을 전공하신 분들이 계셔서 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냐고 꾸짖을 수도 있으나, 상상은 상상일 뿐, 믿거나 말거나이니 그냥 재미로 쿨하게 넘어가 주시길. 다만 생각의 나래를 저 먼바다까지 펼쳐 보고 싶었을 뿐이오니.   


  재미있는 것은 최근에는 연세대에서 임당수가 부안군 격포 근처 위도 부근의 임수도 근처라고 주장하기도 했단다. 근데 생각해보면 대단히 논리적으로 이 또한 가능성이 크다. 조선은 임진란을 겪은 후 경제 상황의 변동이 매우 컸다. 육로로는 압록강 일대의 국경무역지대에서의 무역이 활발했는가 하면, 바닷길을 통해서도 중국의 상인들이 드나들었으리라 짐작된다. 특히 강경 일대는 현재에는 기껏해야 젓갈로 유명한 정도이지만 당시로는  내륙과 해안지대를 연결하는 유통망의 중심지로서 조선 후기 경제에 있어 매우 중요도가 높았던 곳이다. 강경, 부안 등이 바로 또 다른 인당수라 주장하는 위도, 임수도 근처이고 보면 이 역시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니 오히려 당시의 현실을 바탕으로 추론해보면 가장 가능성 있는 지역일 수도 있다. 이 역시도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이미 고려 중기에도 송의 사신이었던 서긍이 저장성 영파(닝보) 항에서 출발하여 남중국 뱃길을 거쳐 고군산열도를 거쳐 벽란도로 들어왔다고 한다. 이렇게 다녀간 그가〈고려도경〉을 지어서 안 그래도 자료가 부족한 고려 사회의 속살들을 많이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를 남겼던 것으로 보아, 생각보다는 훨씬 빈번하게 남중국의 뱃길들을 우리가 역사적으로 많이 이용했던 것 같다. 


  역사는 책 속에만 존재하는, 곰팡내 나는 묵은 지식이 아니다. 언제든 우리의 현실에 살아 숨 쉬는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는 것이다. 당항성을 대신하는 인천, 임수도를 대신하는 군장(군산과 장항) 지역, 울돌목 근처의 목포 등은 모두 빵빵하고 멋있는 큰 배로 거친 바닷물을 가로지르며 다니는 우리의 대외 전진기지이고 보면, 이들 지역이 그 옛날 인당수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제는 처녀 공양을 하지 않을 정도의 기술을 장착하고서 말이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이런 상상은 허구와 예술로 승화되면 완전 따봉일 것이고, 이 상상력에 탐구를 탑재하면 좀 재미는 없으나 학문의 영역이 될 것이니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작은 재미라도 있으면 땡큐이고, 결과까지 엄밀하다면 의문의 1승이 되니 이 아니 좋을까 싶은 마음에 오늘도 한 줄, 나의 생각을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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