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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책 리뷰

이 년 전, 첫 번째 리뷰. 저자 박혜란 (가수 이적 엄마)

by 여행하듯 살고

[우리 아들도 믿는 만큼 자랄까?]라는 글을 세달 전, 방학 시작할 무렵에 썼었다. 그때 나는 '아들이 스스로 잘할 수도 있으니 한번 믿어보자' 하고, 넘쳐나는 방학 시간을 거의 모두 아들에게 맡겨 보았다. 그리고는 두 달이 흘렀다. 당장에 보이는 결과는 처참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오가며 이상을 찾는, 정반합을 보여주는 내 육아 모습이다. 많이들 말하는 것처럼 아들 육아는 딸 육아와 달리 강제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정"을 따라가려다가, "반"을 말하며 그말대로 아들 셋 (가수 '이적' 포함)을 자유롭게 키운 여성학자 박혜란 작가의 본을 따라 보았다.


그녀는 아들들에게 본인들의 공부는 다 맡겼고, 심지어 막내가 고 3 때는 본인의 일을 위해 혼자 중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아이들이 직접 도시락을 싸 다니며, 막내까지 모두가 서울대에 갔고, 그 이후 첫째 아들은 건축과 교수, 둘째 아들은 가수 이적, 셋째 방송국 PD가 되었단다.


아이에게 자유를 주고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면 그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직업이 전부 다는 아니지만, 삶의 큰 부분을 말해주는 건 사실이다. 나도 비슷한 아웃풋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기대로 잔뜩 부풀어서 실행에 들어갔다. 사실 나에게 더 집중하려고 찾은, 아들에게 신경을 덜써도 죄책감 안 가질, 그럴 듯한 핑계였을 지도 모른다. 두 달이 지난 후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과 반 그 중간 어디 즈음에서 강제와 자율을 조화롭게 완성해낼 합 .


정반합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에 의해 정식화된 변증법의 논리 전개를 세 단계로 나눈 것이다. 어떤 주장(정)에서 출발하여 그것과 반대되는 주장(반)이 나타나고, 이 둘의 모순과 갈등을 통해 이전의 두 요소를 모두 포함하면서도 더 높은 수준의 새로운 통찰(합)에 도달하는 과정을 말한다.


불과 세 달과 한 달 전에 비슷한 주제를 가진 두 개의 글을 올려놓고 또 비슷한 글인가? 할 수도 있겠으나, 이유가 있다. 그 책을 바탕으로 한 육아가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장기간 프로젝트를 보여주고 싶어서이다. 2년 전 처음 그 책을 읽고 적어 놓았던 리뷰를 최근에 발견했다. 그때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고, 2년을 돌아보니 성장한 모습도 보인다.


기본 신념은 그 책의 이야기처럼 아들을 믿고 모두 맡기는 것이나 (첫 번째 글​), 두 달 실행을 해 보니 확연히 다른 방향으로 가길래 일단 브레이크를 잡고 조금 방향을 틀었다(두 번째 글​). 다시 한번 우리 아들도 믿는 만큼 자라기를 바라며 글을 써본다. 앞으로 이년 후, 2027년 여름즈음 우리 아들이 믿는 만큼, 또는 밀어주는 만큼? 어떻게 자라나는지는 브런치 북에 종종 업데이트해 보겠다. 아래는 2년 전의 날 것 그대로의 책 리뷰이다. 지난 글 두 편보다는 가장 책 리뷰에 가깝다.




2023.08.31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저자 박혜란. 책 리뷰


아들이랑 차 안에서 박장대소 08/31/2023 목요일 저녁 수영 연습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렇게 심하게 웃은 적이 또 언제였더라ㅋㅋ 아들이 진정했다가도 다시 웃기 시작하면 나도 따라 웃음이 나오고, 참지 못해 계속 웃고ㅋㅋㅋ

내가 읽은 책 내용대로 아이에게 적용하려고 하니, 아이가 바로 반응한다. 웃음을 참지 못한다.


이적 엄마란 얘기에, 아들 셋다 서울대 보낸 아줌마란 소리에, 그런데 본인은 여성 학자로 일했다는 사실에 솔깃해서 박혜란의 책 세 권을 구입했다. 이번 가을에 딸이 7학년, 아들이 5학년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이제는 뭘 좀 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에 대한 행동이었다.


딸이 좋은 학교 가고 싶어 하고,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하니까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지금처럼 아무것도 안 시키고 신경 안 쓰고 있다가는 대충 좋은 학교는 갈 테지만 아이비리그 같은 탑 스쿨은 못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도 제대로 안 해보고 그러면 나중에 아쉬울 것 같은 생각에 여러 정보를 모으려고 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을 모을수록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지금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는데... 만약 누나가 소위말하는 탑 스쿨 가게 되면, 누나한테 지기 싫어하는 아들도 따라서 좋은 학교 갈 수 있을 거란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럼 일단 딸을 도와주기 위해 무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큰 그림을 그려볼 참이었다. 그러면서 여러 교육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나영의 본질육아, 박혜란의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는 게 더 좋은 걸까에 대해 정해진 답이 없는 건 잘 안다. 그래도 더 잘 맞고 좋은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은 드는데, 아직도 그 길이 어떤 건지 확신이 없어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한다.


그래서 사실 별 노력도 없이 탑스쿨을 목표로 하면서도, 아이비리그 셋 보낸 엄마가 어떻게 공부시켰다 하는 등을 담은 책 보다는, [본질육아],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란 책을 먼저 골랐다.


아이들이 모두들 가고 싶어 하는 대학교 가게 되면 육아 교육 이야기로 책을 써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런 생각이 가끔 들었지만, 한편으로 이게 맞나? 이러다 괜히 애들 잡게 되는 게 아닌가?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니 아이들을 딱 옆에 앉혀 억지로 공부시키는 것도 주저했다.


사실은 집에서 학교 외의 공부를 더 시키고 싶다. 하지만 고분고분하지 않은 딸과 아들이 집에서 공부를 해보자고 하자면, 순순히 따라 할 리가 만무해서 시도조차 못하고 있던 터였다. 이런 현실 때문에 결국엔 자기주도학습으로 밖에는 답이 없을 거라는 믿음이 자라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도 마음을 편하게 정하지 못하고 여러 글과 정보만 접한 채 답답한 마음만 키워가던 차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수 '이적' 엄마니까 괜한 친근감에 내 마음은 이미 활짝 열려 있었다. 시니컬한 작가가 자기 단점을 드러내며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름 철학을 가지고 당당하게 얘기하니 재미가 있었다. 중간중간 완전 빵 터지게 하는 대목들도 있어서 재밌게 쭉 잃어나갔다.


그러나 사분의 삼 쯤 읽으니, 일류대학 보내기에 목맨 엄마들, 조기교육에 정신이 나간 아줌마들, 아들만 있어서 딸이 없어 불쌍하게 보는 사람들, 사촌들 간에 교류가 없는 세태 꼬집음 등의 뒤에, 작가가 '나는 안 그런데 오히려 결과가 좋다' 뭐 이런 식의 자기 자랑을 반복하는 것 같아서 조금 지루해졌다.


아들 수영 연습 끝나려면 한 시간 남았다. 다른 일 할걸 들고 오긴 했지만 오늘은 그냥 게으르고 싶다. 일을 안 해도 왠지 책을 읽으면 내가 발전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게으름을 그 자기 계발로 포장한 채 운전석을 젖히고 누워 겨우 눈만 뜨고 눈동자를 굴린다.


내용이 좀 지겨워지는 듯했지만, 막바지에 진짜 여성학자 같은 이야기를 막 쏟아내고 있었다. 아- 이 힘이구나! 깨달음이 왔다. 아무리 이적 엄마라도 그 이유 하나만으로는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릴 리가 없다.


<엄마 없이도 괘씸하게 잘만 살더라> 챕터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젊은 엄마, 자신의 선배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작가 자신이 막내 고 3 때 중국에 가르치러 간 이야기에를 연결시키는 것에서 글맛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책을 다 읽어가면서도 저자가 책에서 이야기했던 내용, 아들들이 또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놀렸던 것과 같은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유전자가 다르잖아. 엄마아빠 둘 다 서울대였으니 애들이 똑똑하고 잘했겠지. 그리고 어느 정도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도와주기도 했겠지.


그런 식으로 의심을 쭉 해왔는데, 이 부분 보면서 인정했다. 책 한 권 내내 자랑처럼 이야기했던 행동들이 세게 보이게 포장한 게 아니라 진정성이 있었다. 그 사실 하나로 진정성이 다 증명되는 듯했다.


이야기의 구성은 또 어떻고. 이제 마흔 즈음이니 간접 경험으로 많이 듣고 보아온, 젊은 친구의 죽음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두둥- 막내 고 3 때, 자신의 일을 위해 쿨하게 집을 떠나버린 엄마, 저자 자신의 이야기와 매끄럽게 연결시킨다. 이미 아빠는 사업차 외국에 떠나 있으니 대학생 아들 둘, 고 3 아들 이렇게 아이들 셋만 남기고 간 것이다. 당연히 아이들, 딸 셋도 아닌 아들 셋이, 스스로 알아서 밥이며 빨래며 학교 생활을 다 했다고 한다.



아들 나올 때 즈음 갑자기 든 생각을 아들한테 지금 공표할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이제 엄마는 아들이랑 누나한테 한글책 시간 정해 놓고 읽으라고 안 할 거다!’라고 말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집에서 한글 가르치기 위해 정해준 동화책을 읽던지, 기탄 한글 문제를 풀던지가 강력한 룰이 었었는데, 그걸 시키느라 매일 곤욕을 치른다. 매일매일, 이제 한글 하자 얘기를 몇 번은 해야 시작할까 말 까한다. 20분 읽기인데 그 시간에 화장실 갔다가 누나랑 얘기했다가 온갖 딴 짓은 다 한다. 아무튼 한글 시키기가 어렵지만 어찌 부모의 모국어를 포기하나.


이런 상황에서 이제 학교 공부에 보충이 필요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writing이나 ELA(영어) 공부를 집에서도 더 미루지 말고 시켜야지 하고 고민하던 찰나였다. 그런데 박혜란 작가가 했던 모습을 보니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은 공부 싫어하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단다. 억지로라도 시켜 놓으면 나중에 고마워한다며, 강하게 밀고 나간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한글을 시켜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시키려면 진짜 이렇게 꼭 시켜야 하나?라는 생각이 항상 따라왔다.


그래, 그렇게 구걸하듯 시켜서 뭐가 남겠나. 매일 서로 기분만 상한다. 나는 아들을 위해 귀찮음을 무릅쓰고 노력하는 것이지만, 정작 아들은 엄마 때문에 억지로 한다고 생각하는데. 최악의 경우는 한글은 남지도 않고 나랑 아들 사이만 나빠질 수도 있는데.


한번 말하면 주워 담을 수 없으니, 다시 신중하게 생각해 보자. 책 읽고 마음이 붕붕 떠서 그런 거 아닌가? 말 뱉어 놓고 일주일도 안 돼서 그림만 그리고 레고랑 노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 그 말 취소한다고, 다시 한글 읽으러 오라고... 괜히 자존심만 구기고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 아닐까?


다시 생각해 봐도 일단 집에서 공부해라, 오늘 정해진 요만큼은 해라하고 내가 매일 일일이 체크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대신 본인이 체크할 수 있도록 리스트 만들 과 체크하는 방법들 가르쳐 주고 툴을 제공하는 것 정도는 도와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래서 충동적으로 섣불리 얘기했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고는 확신이 생겨서 아들이 연습 마치고 차에 타자마자 물어봤다.


“아들아, 아들 인생은 아들 거지? 엄마 거도 아니고 다른 누구 것도 아니고. 그니까 아들이 하고 싶은 거, 해야 할 건 아들이 알아서 해야 하지? 그니까 이제부터는 엄마가 한글 공부하는 거 체크 안 할게. 네가 하고 싶어서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도와줄 거야. 그런데 하루에 20분 정해놓고 체크하고... 이제, 이런 건 안 할 거야!”


다짐한 대로 선포했더니, 아니 웬걸?
기대와 다른 반응이 나온다.


“아싸", “진짜?” 뭐 이런 반응이 나 올 줄 알았는데 일단 아들의 대답이 없다.

그리곤 뭐냐는 표정과 함께 몸을 비비 꼰다. 그리곤 지금 그말 취소하고 그만하라는 식으로 “엄~~~~~마~~” 하면서 막 웃는다. 박장대소.


예상밖의 반응에 나도 잠시 어리 둥절 하다가,

그래 이거였구나! 하고 깨닫음이 온다.


Reverse psycology를 의도한 게 아니다. 왜냐면 그걸 목표로 저런 선언을 했으면 아이가 직감적으로 알 수밖에 없다. 정말 네가 좋은 대학 가든 안 가든 상관없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네가 선택하고 대신 책임도 네가 지는 거다라는 소신이 마음 깊숙이 있으니까 아이도 느끼나 보다. 그래서 아 엄마가 그냥 지금처럼 하라는 거 하고 말라는 거 말고 별 생각 안 하고 사는 게 편하구나라고 계산할 필요도 없이 즉각 받아들인 거 같다.


어쨌건 나의 목표는 아이들이 원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목표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자기 생활에 만족하며 독립적으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아이들이 자라는 이상으로 내가 자라는 것이다. 나도 이제 마흔밖에 안 되었으니까.


그리고 사실 대학이 목표가 아니다. 학생때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서 나중에 후회할 일 없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독립할 수 있을 만큼 벌고, 여행 좀 다닐 수 있는 만큼 벌면 더 좋고, 그 일로 하루하루 행복하고 보람 느끼며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목표다. 대학은 안 가도 좋다. 본인이 소신이 있어 스타트 업을 하거나, 어떤 비즈니스를 제대로 시작한다면 그것도 손뼉 쳐 줄 일이다.


이제, 아이들 걱정이 아니라 내 걱정을 할 때다.

나는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이 년 전에 저랬었구나, 완전히 다 잊어버렸다. 그래, 집에서 한국어 공부 좀 시키다가 포기했었지. 완벽하게 이중언어를 잘하면 좋겠지만 아이들의 의지는 별로 없고, 내가 시켜서 하는 것이니 계속 끌고 나가는 게 힘들었다. 어느 정도 노력해 보고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계속 밀고 나가는 게 득 보다 실이 많을 것 같으면 당연히 멈추어야 한다. 작전상 후퇴.


나는 여태껏 그래 왔던 것처럼 계속 아이들에게 한국말만 쓸 테고, 아이들이 한국말 듣기 말하기는 기본으로 다 된다. 읽고 쓰기가 문제인데, 성인이 되어서 마음만 먹으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테다. 자연스러운 언어 습득 방식이다. 내가 영어를 배운 것과 정 반대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포기해 가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어쨌건 시간과 우리가 가진 에너지는 한정되어있어서, 선택 후 집중을 해야 한다. 후회는 없다. 아쉬워도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 뒤, 2년 동안 발전해 온 모습을 되짚어 보았다. 저 리뷰를 쓸 무렵 아들은 아침에 스스로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스쿨버스 타는 곳까지 자전거 타고 혼자 가야 했다. 아들은 초딩, 딸은 중당이라 나가는 시간이 달랐다. 딸 학교는 스쿨버스가 없고, 거리가 멀어서 일찍 데려다주어야 했고, 남편은 이미 출근한 뒤라 도와줄 수가 없었다. 만 10살 아들은 반 강제로 혼자서 알아서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 스스로 학교 갈 준비를 마친 후, 시간 맞춰 혼자서 스쿨버스 타러 나가야 한다.


그렇게 아들 혼자 가는 첫날, 아들 아침밥 차려놓고, 도시락과 물병은 가방에 넣어 놓고 나왔다. 아들이 나가야 하는 시간 5분 전에 에코에 알람 맞추어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할수 있는 만큼은 완벽하게 했다고 생각하고, 딸을 학교에 가능길 운전하는 도중에 하나 빠뜨린 게 기억났다. 거라지 문 꼭 닫고 가라는 말을 안 했다. 아들은 가끔 현관문도 열어놓고 그냥 갈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보니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차고 문 활짝 열어놓고 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잘 닫아 놓고 자전거를 타고 늦지 않게 스쿨버스 타러 나갔다.


그렇게 일 년 내내 아들 스스로 잘 알아서 했다.


다음 해는 누나랑 같은 학교를 가게 되어서 다시 긴장을 풀고 살았다. 확실히 눈에 보였다. 10살 때 스스로 잘하던걸, 11살 때는 오히려 퇴행하기도 했다. 아침에 학교갈 준비 빨리하라고 잔소리를 하게 되는 부분도 생겼다. 이런 사실을 기억하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냥 아이가 좀 불편함을 감수하고 스스로 하게 내버려 둔다. 아이들 교육을 하면서 나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건강하고 독립적인 어른으로 자라날 수있게하는 것이다.



가수 이적이 어느 프로그램에서 어렸을 때를 회상하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비가 갑자기 오는 날에 친구 엄마들은 학교 앞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렸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라고. 이적의 말투에서 그것에 대한 원망은 전혀 없어 보였다. 엄마가 일이 있으니 당연히 다 챙기기 힘들었다고 엄마 삶 존중하는 모습 멋있다.


다른 인터뷰에서 이적 엄마 박혜란 작가는, 주변 엄마들이 자기를 아이들 잘 돌보재 않는 '나쁜 엄마'라고 이야기했던 것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소리에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일을 꿋꿋하게 하며, 덕분에 아들들을 더 독립적으로 잘 키워낸 것이라고 삶으로 보여 주었다. 모진 말을 다 이겨내며, 좋은 본보기를 만들어 준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들이 작년에 중학교 시작하면서 숙제를 한 번씩 빠뜨려 점수가 깎이는 걸 보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덜렁대며 잘 까먹고, 물건 잃어버리고 다니는 아들은 꼭 나를 닮았다. 이제 마흔 넘어, 나는 겨우 그 부족한 모습을 보충하려는 여러 장치들을 마련해 놓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인생 선배로 아직은 내가 좀 더 아들 부족한 부분을 챙겨야 하나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혼자서 터득해 나가야 진짜 자기 기술이 될 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아깝게 놓친 숙제들 때문인지 결국 중학교 첫 학년에 한 과목을 89.3으로 B를 받게 되었다. 시험은 93점을 받은 것 보면 숙제 때문이었다. 연말에 학교에서 모든과목, All A를 받은 학생에게만 상을 준다. 한 과목 때문에, 그것도 1점만 더 있었으면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 나도 속상했다. 그래, 숙제 챙기는 걸 더 도와주었어야 했나 후회도 했다.


하지만 중학교 두 번째 학년 시작하고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아들이 혼자서 하게 내버려 둔다. 지금 내가 도와주기 시작하면 고등학교 때도 도와주어야 하고, 대학교 때까지 작은 거 하나 일일이 신경 써야 할지 모른다. 서로 피곤해지고, 그 과정에서 어쩌면 내가 '기회'를 빼앗아 버린 게 될 수도 있다.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기회, 본인 삶을 혼자 잘 가꾸어가는 연습할 기회를.


작년에 All A를 받지 못해 가장 서운한 건 나보다 아들이었다. 아들도 그 삶의 주인은 자기라는 걸 배우는 중이다. 더 미루지 않고 아들을 믿고는 맡긴다.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연습하도록.



* <우리 아들도 믿는 만큼 자랄까?> (https://)

** <육아전쟁, 믿는 만큼 자라는 아들?> (https://brunch.co.kr/@like-a-traveler/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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