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제게 유난히 길고 추웠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에 밤을 지새우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던 날도 많았습니다.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아버지가 두 달여 동안 병상에 계시다 2월 16일에 하늘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고령이지만 평소 지병도 없으셨고 모두가 100세까지도 사실 거라고 말할 정도로 정정하셨던 아버지. 12월 말, 기적적으로 모든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와 일주일이나 늦어도 이주일 후면 퇴원 가능하다고 해서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아버지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담당의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던 날. 미세먼지 없던 하늘도 푸르던 한낮이었는데 순간 폭우가 내리는 한밤에 우산도 없이 홀로 서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 몸에서, 내 입에서 이런 울음소리가 나올 수도 있구나.. 처음으로 느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경험해야 하는 일이란 걸 머리로는 잘 알지만 가슴은 머리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사랑하는 아버지를 보내야 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아버지를 잃은 어린아이처럼 마음의 중심을 잡는 일은 너무나 어렵기만 했습니다.
얼굴은 엄마를 닮았지만 다른 건 아버지를 많이 닮았습니다. 체격, 체질, 성격, 식성, 손재주까지. 제 몸속에 흐르고 있는 아버지의 피. 저란 존재를 있게 해 준 사랑하는 이를 보내야 하는 과정은 그동안 경험했던 그 어떤 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1월부터 주말마다 아버지를 보러 갔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안고, 거동이 불편한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마음을 표현하는 일.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사랑한다, 감사하다, 존경한다. 아버지가 내 아버지라 정말 행복하다,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너무나 감사하다, 다음 세상에도 아버지 딸로 태어나고 싶다, 아버지는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살아오셨다, 아버지는 멋지고 훌륭한 분이시다, 아버지는 최고의 아버지였고 최고의 남편이었다,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를 향한 제 마음을 아낌없이 모두 표현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려고..
< 손가락과 손톱도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
병상에 계신 아버지를 뵙고 엄마가 있는 집으로 들어서는데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저 넓은 마당에 깔린 블록들은 아버지가 84세에 직접 작업하신 것입니다. 그 연세에 어떻게 저렇게 해놓으셨을까 볼 때마다 감탄을 하곤 했는데...
< 아버지는 금손이셨습니다 >
안방으로 들어선 순간 저는 또다시 금세 눈물이 고였습니다. 아버지가 즐겨 기대고 계셨던 쿠션 앞 엄마의 핸드폰 밑에 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내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겠구나. 62년을 함께 살았던 엄마의 아픔과 슬픔에 비하면...
그렇게 우리 가족들은 서로의 존재와 부재, 그리고 사랑을 확인하며 각자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 동반자, 62년 동안의 동행 >
지난 몇 달 동안 죽음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마음이 어지러워 기댈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일적인 것을 제외하고 사적인 만남을 가지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삶과 죽음에 대해 가장 많이, 가장 진지하게 생각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 삶 속에 들어 있는 죽음, 죽음 속에 들어 있는 삶>
슬픔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제게 건넨 지인들의 따뜻한 마음과 말 한마디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일 때문에 방문했다가 아버지는 좀 어떠시냐 물어 하루 세 번 수혈을 해야 한다는 대답에 갑자기 급하게 서랍을 뒤지던 그. 그가 꺼낸 것은 바로 헌혈증서 한 장이었습니다. 정중히 사양하자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어 미안하다던 그의 마음에 가슴이 알싸해졌습니다.
< 그 마음 잊지 않을게요>
장례를 치르고 며칠 후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보고 올 때마다 온몸이 너무 아팠다고. 아버지의 고통이 오빠의 몸 뼛속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너무 힘들어 두통이 심했다고. 그것은 아마 자식들을 향한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빠의 아픔이 담겨 있는 말에 순간 복통을 호소하는 아버지를 위해 한 시간 이상 배를 만지는 오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오빠가 배를 만져 주면 거짓말처럼 다 나았다고. 오빠의 간절함이 담긴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습니다.
<아버지, 오빠의 마음 느끼셨죠?>
아버지가 얼른 건강해져 다시 엄마 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는 어느새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평안하게 하늘로 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총기가 있으셨기에 하루하루 죽음으로 향하는 당신의 몸을 지켜보는 일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임을 알기에..
< 이제는 편히 쉬고 계시죠? >
그렇게 아버지는 온 가족의 사랑과 존경과 감사를 온몸으로 받으며 하늘로 가셨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3일 내내 날씨가 얼마나 좋던지. 추위가 잠시 물러간 봄날 같은 날들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장지에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 한잠 자고 일어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그 이후로 며칠 동안 계속 비가 내렸고, 비 온 후 다시 추워졌습니다. 아버지는 가시는 날까지 그렇게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 또한 아버지가 주고 가신 선물이었습니다.
< 아버지 정말 고마워요 >
< 아버지 가는 길 보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어요. 외롭지 않으셨죠? >
아버지, 편히 쉬고 계시죠? 아버지는 비록 제 곁에 없지만 제 가슴엔 영원히 살아계실 거예요. 아버지, 정말 고마웠어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