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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와 매일 영상 통화를 합니다

이런 부모님 또 없습니다

by 초원의 빛 강성화
넌 어찌나 말이 없던지.
꼭 주워 온 아이 같았잖아.


마흔을 앞둔 어느 날 엄마가 꺼낸 말에 웃음이 났습니다. 얼마나 말을 안 했으면 그렇게까지 표현을 할까 싶어서.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20대까지도 유난히 말이 없던 막내딸이었던 건 분명했으니까요.


그랬던 딸이 언제부턴가 엄마 앞에선 기꺼이 수다쟁이가 되었습니다. 주워 온 것이 아니라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꽉 채운 확실한 핏줄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같은 사람이 정말 맞나 싶을 만큼, 말이 없었던 그 시간들을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


자식들 다 키우고 허전해할 엄마를 생각해 거의 매일 통화한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이젠 아닙니다. 저를 위해서입니다. 엄마의 모든 것을 알고 싶고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일이기에.




3년 전 엄마의 유방암 판정 소식을 듣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좀처럼 중심을 잃지 않았던 제 마음은 사정없이 흔들렸습니다. 엄마의 모습, 엄마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더 눈과 마음에 담아야겠단 생각뿐이었습니다.


여든이 넘은 나이. 힘들고 긴 수술과 항암 및 방사선 치료 과정을 모두 견뎌 낸 엄마가 너무나도 고맙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그랬습니다. 힘들다, 아프다 내색하지 않았던 엄마는 암과의 싸움에서도 여전했습니다.


당신 손으로 직접 밥을 지어먹고 이전과 같은 일상생활이 가능해진 것만으로도 감사한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건강하셨던 아버지의 차례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엄마처럼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마음은 더 바빠졌습니다.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사계절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힘들고 지친 하루의 끝에도 변함없는 나무처럼 환하게 날 향해 웃어주는 저 모습을 볼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하루하루가 소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엄마에게 매일 사랑한다는 말을 합니다. 전화 통화를 마칠 때마다 제 모습은 아주 요란합니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연인에게만 가능한 말과 행동들. "엄마 사랑해용~ 알러뷰~"는 기본이고, 손으로 큰 하트와 작은 하트를, 마지막은 손가락 하트 뽀뽀로 마무리합니다. 막내의 재롱에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손뽀뽀로 답해 줍니다.


엄마, 항상 조심조심해야 해.
버스 타지 말고 택시 타고 다니고,
좋은 음식, 좋은 옷만 입어.
이제 아버지도 없고 엄마 밖에 없잖아.
우리 엄마 아끼고 또 아껴야 해.


그런데 이런 말도 다 소용없습니다. 평생을 5남매 키우느라 고생했으면 이제 그만해도 될 것을. 고향집에만 가면 종종 모녀의 설거지 쟁탈전(?)이 일어나곤 합니다. 설거지하다가 잠시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그새를 틈타 여든넷의 노모는 고무장갑을 끼고 싱크대 앞에 서있습니다.


엄마, 뭐 하고 있어.
내가 하면 되는데.
딸 뒀다 뭐 해.
얼른 들어가 쉬고 있어.


잠시 후 엄마의 한 마디에 코끝이 찡해집니다.


아끼느라고.
나도 우리 딸 아끼느라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 마음이 아니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입니다. 곧 오십을 바라보는 딸이지만 엄마의 눈에는 여전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어린 딸로 느껴졌을 터. 설거지를 하다가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습니다. 아낀다는 말이 그토록 따뜻하고 아름다운 말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지난 주말 고향에 갔을 때 엄마가 아버지 얘길 하셨습니다. 다른 집은 나이 들어 일하기 힘드니 주말에 자식들 오면 한다고 기다리는데 아버지는 반대였다고 합니다. 자식들이 고생할까 봐 오기 전에 당신이 더 부지런히 움직이셨다고.


평생 농부로 사셨던 아버지는 응급실에 가시기 전 89세의 나이에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땅과 함께였습니다. 엄마와 거실에서 대화하는 사이 슬며시 나가 들깨 추수를 하셨던 아버지는 우리가 나오자 할 거 없다 손을 저으며 얼른 들어가라고 하셨지요.


빈 손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 어려운 살림에도 아버지 당신은 다른 집에서 일해도 엄마는 단 한 번을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도 아끼느라고, 귀한 아내와 자식 아끼느라고 그러셨을 것입니다. 가시는 날까지 단 한 번도 사랑한단 말을 들어보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그렇듯 매 순간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표현하셨단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과수원집 5남매 중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나 다 함께 가족 여행 한번 가본 적이 없는 풍요롭지 못했던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때 그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던 부모님 덕분에 중년이 된 지금까지 어린 시절 받지 못했던 용돈까지 몰아서 받고 있습니다.


모진 세월을 견디며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당신들의 삶. 최근 화제작 '폭싹 속았수다' 속 애순과 관식 같은 부모는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들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부모가 되어서야 알게 되는 부모님의 마음. 부모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 존경의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어 이 한 문장으로 대신해 봅니다.


이런 부모님 또 없습니다~♡


< 아버지의 마지막 추수...세상에 이런 부모님 또 없습니다~♡>



written by 초원의 빛

illustrated by 순종

그림 속 사귐 - Daum 카페 : '그림 속 사귐'에서 순종님의 다양한 그림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Always be happy!*^_____________^*




* 오늘의 추천곡 *


에피톤 프로젝트의 '봄날, 벚꽃 그리고 너 '

https://youtu.be/48QW6bVmTaI?si=ULlfdHS_lBh6de5t


박지윤 님의 '봄눈'

https://youtu.be/XjBt7qEe8Q4?si=k1igglZFCQJAP31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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