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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Mar 31. 2024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in 어학당

새로운 베트남어 가족의 시작

어학당 교재의 첫 한 권을 끝내고 다음 단계 수업이 시작되는 첫날이다. 교재 한 권을 끝내는 데는 대략 10개월 정도가 걸리니까, 이번에 시작하는 두 번째 단계의 교재를 끝내면 올해가 다 지나갈 것 같다. 올 초에 베트남어를 잘 배워보자고 연간 목표를 세웠으니까, 앞으로 10개월간 이 결심을 끝까지 지키기로 다시 한번 다짐을 하며 지난주에 두 달 반에 해당하는 이번 학기의 수업료를 납부했다. 수업 등록을 하던 날에 어학당 행정실에서 설명하기로는 아직까지 4명밖에 등록을 하지 않아서 강의가 연기될 수도 있다고 설명하긴 했다. 총 5명이 되어야 수업이 시작된다는데, 나는 알겠다고 하며 행정실을 나왔다. 아마도 수업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지난주까지 들었던 직전의 베트남어 클래스에 합류하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으나, 결국엔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수업을 등록하기 전에 미리 어학당에 전화를 했는데, 행정실에서 설명하기로는 이미 수업이 시작된 지 한 달 이상 지났기에 중간에 합류할 수는 없다고 했다. 행정실의 권유대로 그냥 다음에 시작하는 강의를 기다릴까 싶기도 했지만, 결심이 섰을 때 바로 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그날 오후 직접 행정실에 찾아가 합류할 수 있게 해 달라며 다시 부탁을 하고 책을 주문했더니 행정실 직원은 못 이기는 척 남은 기간의 수업료만 청구하는 종이를 내주었다. 당시에 직접 찾아가지 않았다면 내 베트남어 수업은 두 달이 미뤄졌을 것이고, 어쩌면 중간에 포기한 채 아예 공부를 시작하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르니까 직접 찾아가서 부탁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어학당에서 보낸 수업 지연 안내 메일


아침에 출근해서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어학당에서 보낸 메일이 들어있다. 오늘의 수업이 연기된다는 안내 메일이었다. 업무가 끝나면 바로 어학당으로 가려고 미리 사놓은 교재도 회사에 들고 왔는데, 첫 수업인 오늘 강의가 없어졌다. 언제 시작되는지도 모르고, 그저 수업 시작에 필요한 인원이 찰 때까지 연기된다고만 적혀있다. 지난번 클래스에서 같이 수업을 들었던 6명의 학생들 중에 일본 사람 3명은 수업을 잠시 쉬고 싶다고 했었다. 또 다른 한국 학생 1명은 주간반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했고, 나와 필리핀 사람 엘레나만 신청하겠다고 타오 선생님에게 확답을 했다. 그래서 우리 반은 다른 반과 합쳐질 예정이고, 아쉽지만 타오 선생님은 또 다른 레벨의 클래스로 이동할 거라고 얘기했었다. 그런데 다른 반에서도 이번 단계의 수업을 신청한 사람이 별로 없는가 보다.


저녁에 수업이 없어져서 다른 식사 약속을 잡아놓고서 점심을 막 먹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호치민대 어학당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프엉이라고 본인의 이름을 밝힌 여자가 오늘 저녁의 수업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저녁에 수업이 없어져서 다른 사람과 저녁 식사를 하자고 약속을 잡아놨는데, 다시 수업이 생겼다고 한다. 수업 취소를 알리는 안내 이메일을 보낸 지 반나절만에 다시 연락이 온 것이다. 역시 베트남 답다고 생각을 했다. 전화를 한 프엉이라는 사람은 다섯 번째의 마지막 학생이 지금 막 등록을 해서 수업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급하게 학생들에게 전화를 하는 중이라고 설명을 했다. 통화의 마지막에는 오늘은 수업 첫날인 만큼 꼭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나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조금 전에 잡은 저녁 식사 약속을 다시 취소하고 퇴근 후에 시내의 어학당으로 향했다.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해서 강의실에 불을 켜고, 에어컨도 틀어놓았다. 5분 정도 지난 뒤에, 지난 클래스에서 나와 같은 반이었던 필리핀 사람 엘레나가 들어왔다. 그녀도 오늘 오후에 프엉이라는 여자의 전화를 받고 수업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했다. "새로운 선생님이 프엉이라는 사람인가?" 내가 물었다. "아마 그러니까 그녀가 전화를 했겠지." 엘레나도 확신이 없는 대답을 했다. 엘레나와 뒷줄 가운데에 앉아 직장 얘기를 하고 있는 중에 날씬한 서양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콜롬비아 출신의 까밀로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올 1월까지 수업을 들었는데, 한 달짜리 해외 장기 출장을 다녀와서 재등록을 했다고 한다. 그 뒤로 캐나다 출신의 닉과 홍콩 출신의 마이크까지 우리 반 총 5명 학생이 모두 첫 수업에 출석했다. 보통 어학 수업은 여자들이 많이 듣는데, 우리 반 5명 중에서 여자는 엘레나 한 명밖에 없다. 또 나이는 다들 30~40대 사람들이다. 일을 마치고 들어야 하는 시간대의 수업이라서 중년들밖에 없는가 보다.


처음 보는 학생들끼리 이름을 소개하고 나서 약간 어색해하고 있는 중에, 익숙한 젊은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갑자기 유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교실 앞쪽의 문이 활짝 열리고, 커다란 꽃이 여러 개 프린트된 원피스를 입은 타오 선생님이 들어왔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 반의 선생님 타오입니다." 타오 선생님은 반가운 표정인 나와 엘레나에게 한번 더 눈짓을 하며 모두에게 인사했다. "모두 반갑습니다. 나는 이 클래스의 선생님이 됐다고 몇 시간 전에 통보받았어요. 원래 다른 반이라고 했는데, 행정실에서 바꿨나 봐요." 나와 엘레나는 웃으며 타오 선생님과 인사했다. 엘레나는 나에게 다행이라고 작게 말했다. 타오 선생님은 학생들을 압박하지 않아서 좋았는데 다시 타오와 수업을 하게 되었다며 좋아했고,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미안한데, 아까 갑자기 연락받은 거라서, 그래서 오늘 수업할 책이 없어요. 하하하." 학생들은 다 새로운 클래스의 새 책을 펼쳐놓고 앉아있는데, 타오 선생님은 책이 없다. 역시 부담이 없는 선생님인 것 같다. 내 책을 빌려주려고 책을 건넸더니 필요 없다고 한다. "오늘은 이번 클래스의 첫 수업이니까 서로 자기소개하고, 베트남 음식과 관련한 베트남어 수업을 진행해 봅시다." 


필리핀 사람 엘레나와 캐나다 사람 닉은 호치민에서 영어 교사로 일을 하고 있었다. 엘레나는 1년, 닉은 7년간 베트남에 살고 있다고 했고, 닉은 곧 결혼할 베트남 여자친구와 동거 중이라는 소개도 추가했다. 홍콩 사람 마이크는 로지스틱 회사를 운영한다. 베트남에 온 지는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베트남에서 계속 사업을 해볼 생각으로 언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또 콜롬비아에서 온 까밀로는 호치민에 있는 일본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는데, 그래서 최근 1개월 동안 일본으로 출장도 다녀왔다고 했다. 그리고 나까지 총 5명의 학생이 모였다. 


타오 선생님은 우리 반의 단톡방을 만들겠다고 Zalo(잘로, 베트남의 카카오톡과 비슷한 앱)의 QR코드를 보여달라고 했는데, 다들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QR코드를 어떻게 보여줘야 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나와 콜롬비아 출신의 까밀로는 타오 선생님에게 QR코드를 바로 보여줘서 선생님이 카메라로 인식할 수 있게 해 줬는데, 엘레나와 마이크는 전화기에 뜬 본인의 전화번호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닉은 종이에 전화번호를 적어서 선생님께 내밀었다. 선생님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학생들의 전화번호를 사진 찍어서 가져갔다.


수업이 끝나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단톡방이 만들어졌다면서 선생님까지 모두 여섯 명이 모인 채팅방에 타오 선생님이 인사를 올렸고, 학생들은 반갑다며 다시 한 마디씩 인사를 했다. 선생님이 만든 이 채팅방의 이름은 '베트남어 가족(Gia đình tiếng Việt)'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젝트 팀의 채팅방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곤 회사 프로젝트가 아닌, 나 개인의 성장을 위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오랫동안 진행했던 계획들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최근 100일간 술 끊었던 것, 그리고 마라톤 대회를 준비했던 것이 생각나긴 했다. 그리고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이제 베트남어 가족이 생겼으니, 이들과 함께 또 다른 나의 프로젝트를 진행시켜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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