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집행기관

by 맑은돌

지난주에 T 지방법원의 여자 집행관 응안(Ngan)이 돈을 인출하겠다고 얘기한 화요일이 되었다. 오늘은 법원의 집행기관에 가서 어제 접수한 재심 청구서의 접수증을 전달해야 한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매니저들, 그리고 짱(Trang) 변호사와 회사에서 아침 회의를 하기로 했다. 회사에 도착해서 바라본 하늘에는 우리 공장 부지를 다 덮고도 남을 만큼 커다랗고 뚱뚱한 구름이 겹쳐져 있었다. 윤곽은 날카롭고, 중심부로 갈수록 회색이 진해졌다.


아침 회의를 마치고 총무 매니저 로안(Loan), 통역 직원 투(Thu), 그리고 게이트 로펌의 짱(Trang) 변호사와 함께 회사 근처에 있는 집행기관을 찾았다. 우리는 어제 최고 인민 법원에 접수한 재심 신청서의 접수증을 들고 방문했다. 여자 집행관 응안(Ngan)이 우리를 집행기관의 기관장 방으로 안내하였다.


기관장 방은 노란색의 3층짜리 집행기관 건물의 2층에 있는데, 5평 남짓 되어 보인다. 커다란 나무 책상 앞의 작은 응접 테이블 가운데에 나이 든 남자 기관장이 앉아있다. 하얀색 반팔 와이셔츠를 입은 50대 초반 정도로 되어 보이는 뚱뚱한 남자 기관장은 왼손에 커다란 금반지를 끼고 계속 오른손의 손가락으로 금반지를 빙빙 돌리며 만지작 거리고 있다. 흰색의 와이셔츠 왼쪽 가슴에 달린 작은 주머니에 진청색의 담뱃갑이 들어있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보인다.


"어제 우리는 최고 인민 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제출했고, 법원에서의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승낙여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져서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자금의 집행을 유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측 변호사 짱(Trang)이 먼저 말을 꺼낸다.


"네, 지금 접수증 확인했어요. 그런데, 이거 접수했다는 서류만 가지고 집행을 연기할 수 있는 사유가 되는지 모르겠네요. 확실히 하려면 조금 더 진전된 서류를 보내주세요." 남자 기관장은 살구색 제복을 입고 의자 옆에 서있는 여자 집행관 응안(Ngan)과 이야기를 나눈 뒤에 우리에게 대답했다.


"진전된 서류도 금방 나올 겁니다. 조금 기다려주세요. 이번 주 중으로 그 사기 친 직원들에 대한 형사 고소 서류를 비롯해 다른 서류들도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측 변호사 짱(trang)이 얘기하고 있는데, 짱(Trang)은 우리를 상대하고 있는 법원 공무원들의 위압적인 모습에 당황한 것 같다. 어쩌면 조금 겁먹은 것 같은 표정이다.


"자, 알겠어요. 재심이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도 이번 주까지는 기다려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신 김에 이 서류에 사인 하나만 해주시죠." 집행기관의 기관장은 집행관 응안(Ngan)에게 전달받은 서류 한 장을 우리에게 내보이는데, 통역 직원 투(Thu)에게 내용을 물어보니 '회사는 집행에 동의한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지난 주말부터 연락했던 영사관의 경찰 영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이 경찰 영사가 연락처를 보내 준 한 한국 법무법인의 변호사에게 연락을 했다. 시내에서 로펌을 운영하고 있는 이 변호사에게 현재 집행기관에서의 상황을 설명했더니, 본인이 지금 미팅 중이라 길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일단 서명하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며 이따 통화하겠다고 한다.


"저는 서명 못하겠습니다." 집행기관장에게 대답했다.

"그냥 형식적인 서류예요. 부담 갖지 말고 서명하시면 됩니다." 집행기관장이 금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한다. 집행기관장은 우리 회사의 매니저들에게 이 서류가 일반적인 업무 과정 중에 있어야 하는 별 것 아닌 서류라고 계속 설명하고 있다.


내가 통화하는 사이에 잠깐 방을 나갔던 여자 집행관 응안(Ngan)이 살구색의 법원 제복을 입은 남자 공무원 5명을 데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이 집행기관장의 사무실 문 앞에 병풍처럼 섰다. 길이 막혔다. "서명하지 않으면, 내일 당장 회사에 압류딱지 붙일 수 있습니다. 서명하세요." 응안(Ngan)은 강한 어조로 나에게 지시하듯 말했다.


"법인장님 그냥 서명하시죠. 그냥 일반적인 서류라고 설명합니다." 통역 직원 투(Thu)가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얘기했다.


"아니야. 회사 자금 인출에 동의하라는 서명을 내가 왜 해?"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통역 직원 투(Thu)와 우리 매니저들, 그리고 짱(Trang) 변호사까지 모두 놀라는 눈치로 집행기관의 기관장과 여자 집행관의 반응을 살펴본다.


"지금 서명 않으면, 내일 당장 회사 문 닫아버릴 거예요. 내일부터 회사 운영 못합니다. 우리는 회사 문 걸어 잠그고 압류딱지 붙일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제복을 입은 남자 직원들과 나란히 서있는 여자 집행관 응안(Ngan) 이 큰 소리를 낸다. 통역 직원 투(Thu)는 이를 나에게 통역하며 떨고 있다. 목소리에는 겁이 묻었다. 특히 총무 매니저 로안(Loan)은 회사 문을 닫는다는 말에 잔뜩 긴장한 것 같다. 머리를 감싼 채 책상 바닥을 내려보고 있다. 우리 회사의 변호사 짱(Trang)은 아무런 조언도 없이 그저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기만 한다.


나는 일어났다. 그리고 문 앞에 서있는 그 제복 입은 사람들을 밀치고 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들은 멈칫했지만, 나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경찰 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다시 걸었다. 여전히 받지 않는다. 숨이 가빠온다.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허. 그게 그렇게 급하게 집행할만한 게 아닌데, 그쪽 법원 직원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변호사가 전화로 얘기한다.

"그렇습니까? 저는 그냥 나가면 되는 거죠? 지금 변호사님 말씀 듣고 그냥 나왔습니다." 내가 흥분하여 말했다. 숨이 가빠진다.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뛰듯이 내려와 집행기관의 정문인 철문 앞에 있는 내 카니발 자동차로 빠르게 걷고 있다.

"네. 그거 서명하면, 회사가 동의했다고 하면서 바로 인출해갈 수도 있어요. 서명하지 마세요." 한국 변호사가 조언을 해줬다.

"네. 조언 감사합니다."


난 통역 직원에게 그냥 빨리 나오라며 전화를 걸었다. "내가 지금 다른 한국 변호사에게 연락해 보니까 이거 서명하면 안 된대. 그냥 다 같이 빨리 나와! 나 여기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 흥분한 나는 집행기관 밖으로 나와 차 앞에 서있고, 나머지 사람들과 변호사도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곧 내려왔다.


"로안(Loan)은 어디에 있어?" 총무 매니저 로안(Loan)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집행기관의 정문 밖에서 투(Thu)에게 물었다.

"아직 안에서 못 나왔습니다. 제일 안쪽에 앉아 있어서 집행기관장한테 잡힌 것 같아요." 통역 직원 투(Thu)가 대답한다.


정문 밖에서 총무 매니저 로안(Loan)에게 문자를 보낸 뒤 초조하게 기다렸다. 10분 정도 후에 로안(Loan)은 밖으로 나와서 그들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고, 다음 주 월요일까지 인출을 연기하는 조건으로 뒷돈을 좀 달라고 한다는 말을 전한다.


"뭐? 얼마를 달래? 묶인 걸 풀어주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 연기해 주는 대가로 돈을 달라는 거야?"

"베트남돈으로 1천5백만 동(75만 원)을 달라고 얘기합니다." 총무 매니저가 말한다. 그녀는 이 사건에 대한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고, 그래서 그런지 주말 내내 여러 변호사들을 알아보고, 또 인맥을 활용해서 각 법원과 공안에 연줄을 대기도 하며 많은 노력을 하는 중이다.

"미쳤네. 회사에 가서 얘기해 보자." 나는 일단 이 집행기관에서 빨리 나가자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법인장님. 아까 그 서류에 사인하라고 협박해서, 협박을 못 버티고... 제가 서명했습니다." 총무 매니저 로안(Loan)이 영어로 나에게 말한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린다.

"뭐?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그걸 왜 사인해!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영어를 잘하는 로안(Loan)에게 나는 영어로 크게 소리 질렀다.


차에 앉아 흥분을 가라앉히는 사이, 그동안 계속 카톡으로 연락하던 경찰 영사에게 문자가 왔다.

[오늘 제가 교도소에 있는 교민들 면회 가는 날이라서 전화기 확인을 잘 못했습니다.]

나도 답장을 보냈다.

[영사님, 저 지금 집행기관에 왔다가 협박을 당했습니다. 저를 방에 가두려고 했어요. 교민이 협박당하면 영사관이 개입할 수 있지 않나요?]


답장이 없다.


나는 경찰 영사가 소개해 준 한국 로펌의 변호사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시내로 이동한다. 비가 내릴 듯한 하늘 아래, 나는 다시 호치민으로 향했다. 구름은 여전히 낮게 깔려 있었다.

keyword
이전 08화구름이 무너지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