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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Jan 10. 2023

공은 이미 내 손을 떠났다

마지막 배주사를 마쳤다

토요일에 생리혈이 조금만 묻어 나오고 그다음 날부터 많이 나와서 언제를 생리시작일로 쳐야 할지 애매했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바로 병원에 방문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내 설명을 듣고 생리 이틀째라고 적었다.

생리혈이 많이 흘러나오는 날을 첫째 날으로 보는 것 같다.


의사 선생님만났다.


배주사(고나도핀) 2개를 받고 약은 두 종류(피어리존정, 파노엘정)를 처방받았다.


피어리존정은 혈당조절제인데 보통 난임병원에서는 나 같은 다낭성난소증후군을 지닌 환자에게 쓴다고 한다. 파노엘정은 과배란을 도와주는 약이다.



일반적으로는 여러 개의 난포에서 우성난포 하나가 자라서 한 달에 한 번 난포에서 난자가 나온다. 하지만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시술로 임신확률을 높일 때에는 약과 주사로 과배란을 시켜서 두 개 이상의 난포가 자라면서 임신 확률을 높여준다.



인공수정 시술을 위한 동의서도 두 장 받았다.

이제 본격적인 인공수정 여정이 시작된다.




인공수정이 결정되고 희망이 커졌다


같은 시간에 놓는 게 좋다는 배주사

같은 시간에 먹는 게 좋다는 호르몬약


어느 것도 힘들지 않았다.

알람을 맞춰놓고 일분도 어긋나지 않게 주사와 약을 스스로에게 투여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노력을 극대화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을 행하는 데 귀찮음과 아픔이 대수일까?

간절히 원했던 소망에 다가가는 한 걸음의 폭이 더 커졌다.

종종걸음으로 걷던 내가 성큼성큼 걸어간다.


다만 약과 주사 때문에 내가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잊지 않게 된다는 사소한 문제가 생긴다.


임신이라고는 정말로 생각하고 싶지 않고 잊고 있다가 아이가 "까꿍"하고 나타났으면 좋겠다.




목요일에 병원에 방문해서 초음파를 봤다.

양쪽 난소에 두 개씩 난포가 약 1.5 cm 크기로 자랐다고 했다.

인공수정 시술일은 그 다음주 화요일 오전으로 정해졌다.


병원에서 간호사에게 배주사를 맞고, 다음날 오후에 집에서 배주사를 놓았다.

배주사는 처음에 처방받았던 고나도핀으로 똑같은 과배란주사였다.


일요일 저녁 8시에 난포 터지는 주사를 놓았다.

인공수정 시술 시간에 맞춰서 맞아야 하는 마지막 배주사를 마쳤다.


이제 내가 할 부분은 끝이 났다.

슬램덩크에서 자유투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공이 매우 천천히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를 향해 가며 경기장은 조용해지고 본인의 숨소리만 난다.

지금 나는 딱 그 순간이다.


공은 이미 내 손을 떠났다.



난임을 겪으며 욕심이 줄었다.


이런저런 욕심을 부렸던 어린 날과는 달리 지금은 다른 생각 없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 딱 하나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임신이 지금 나에게는 바라는 일이 되었다.


생각이 많았던 나는 생각을 없애려고 단순하게 살려고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쉬면 아이가 오겠지.


침대에 누워서 쉬고 또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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