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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Jan 03. 2023

소원은 아이가 오는 것

줄곧 엄마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연말에 미술관을 방문했다. 

소원을 적는 이벤트에 우리가 적었던 건 '아이가 오는 것'이었다. 

나는 결혼 이후로 줄곧 엄마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원하는 데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바로 그게 '엄마가 되는 일'이었다.






일반 산부인과에서 과배란약을 먹으며 임신을 준비했지만 임신이 단 한 번도 되지 않았다. 나는 난임병원이 없는 곳에 살면서 장거리 출퇴근을 했었다. 과배란약을 받고 배란초음파를 보는 것조차도 연가를 쓰거나 토요일을 이용해야 할 정도로 병원을 다니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회사를 휴직하고, 난임병원이 있는 큰 도시로 이사를 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난임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난임병원에는 대학병원 난임검사결과지와 나팔관조영술 결과지를 가지고 방문했다.

결혼초에 대학병원에서 산전검사를 했었지만, 타지방에 살면서 더 먼 곳으로 출퇴근을 하느라 병원예약을 잡는 게 쉽지 않아서 제대로 진료받지는 못했었다.



"시험관 하고 싶어요"


"검사 수치를 보니까 나쁘지 않아서 인공수정 한번 하고 합시다. 인공수정은 한 번도 안 해봤잖아요."

내 산전검사 기록을 먼저 보셨던 의사 선생님께서 제안하셨다.


결혼하고 나서 일 년도 안 되어서 난임검사를 받았지만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있는 것 말고는 특별히 나쁜 결과가 아니어서 첫 병원에서도 배란일만 맞춰서 시도해 보자고 말하며, 시험관시술은 아직 이르다고 했었다. 


바로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고 싶었지만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설득돼서 인공수정을 먼저 하기로 했다.

과배란 약만 내내 먹다가 임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더 적극적인 처치인 '인공수정'만 해도 잘 될 것만 같았다.


산전 검사지가 있기 때문에 피검사만 다시 하고, 정액검사도 추가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 방문은 생리하고 나서 2~3일째이다.


내가 먼저 피검사를 했다.

난임병원은 대기가 매우 길다는 말에 미리 병원에 가 있었는데 진료가 빨리 끝나서 남편을 기다렸다.



시험관 시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병원에 간 첫날,

나는 남편에게 참 미안했다.

물론 둘 다 아이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더 바라고 내가 더 조급한 마음이 클 것이다. 

생물학적 나이로 노산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초조함이 커져서 시험관 시술을 하기로 결정한 건 나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6개월 이내의 정액검사 결과가 필요하기 때문에, 남편도 정액검사를 하러 병원에 방문하기로 했다. 

난 간절히 임신을 원해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지만, 남자로서 어두운 방 안에 들어가서 정액검사를 한다는 게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병원에 가는 게 설레기도 했다. 아이만 가질 수 있다면 뭔들 못하겠는가. 더군다나 민간요법도 아닌 확실한 과학적 방법이라면.


미안하다는 말이 입 밖으로는 차마 나오지 않았다. 

내가 말해버리면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 모든 게 미안한 일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건 아이한테 미안한 일이니까 나 혼자만 간직하고 끝내면 될 감정이었다.


남편이 와서 말했다.

"난임이 축복이야. 이렇게 같이 이렇게 있을 수 있고, 네가 쉴 수 있잖아."


남편이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 따뜻한 말속에는 날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내가 미래에 태어날 아이를 위해 내 마음을 위하지 않았을 때 남편은 날 우선으로 생각해 줬다. 


그때는 말 못 했지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달에는 자연임신을 시도해야겠지만, 초조하지는 않다. 

다음 달에 바로 인공수정을 시도할 수 있기에 조금 마음이 놓인다.


남편과 함께 병원을 나가는 데 햇빛은 뜨거운데 바람이 차가운 게 느껴졌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가을이 짧음을 안다.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돌아올 거다.


내년이 오기 전에 임신하고 싶다.


우리 아기는 추운 겨울에 생기면 분명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을 거다. 

우리 아기가 가을에 생기면 감수성이 풍부해서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우리 아이가 올해 생기면 올해 크리스마스엔 아이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놓고 싶다.

뱃속의 아이와 남편과 함께 작은 크리스마스 홈파티를 열고 싶다.


미술관에서 진행했던 크리스마스 이벤트에 남편이 적은 소원.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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