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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Apr 14. 2023

쌍둥이면 더 좋아요

동결이식일이 정해졌다

이 한알의 알약이 무엇이길래!


이걸 먹다 보면 아마도 다이어트가 많이 될 것이다.

저녁에 밥을 먹고 간식까지 야무지게 마치고 그다음 알약을 먹는다.

그 이후론 먹지 않는다.

기껏 혈당이 안 올라가게 낮춰놓고서 또 밥이나 간식을 먹는 건 바보 같아서 야식을 끊었다.


이 알약은 다낭성난소증후군을 앓는 사람이 난임병원에 가면 자주 처방받는 약인 인슐린 저항성 개선제, 혈당약이다.


처음 대학병원 난임센터에서 혈당약을 처방받아서 약국에 처방전을 내밀었을 때가 기억난다.

약사 선생님이 "당뇨병이세요?"라고 물어봤다.

나는 난임센터에서 처방받은 약이라고 대답했지만 살짝 충격을 받기도 했다.

아무래도 혈당약이 난임센터에서 처방받는 약은 난임을 겪는 사람들만 알고 있지 흔히 알려지진 않았나 보다.


지금은 난임병원과 같은 건물에 있는 약국을 다니기 때문에 이곳의 약사님은 난임에 관련한 약과 영양제에 대한 이해심이 더 크다.





난임병원에 가는 길에 개나리가 피어있었다.


봄이 왔구나......


따뜻한 봄 햇살에 서글픈 눈물로 적셔진 마음이 다 마르는 느낌이다.



새로 시작하자.

추운 겨울을 견디며 피어나는 꽃들이 보인다.


작은 꽃몽우리에서도 핑크색 꽃잎이 살짝 비친다.


차갑고 추운 겨울은 이제 끝이 나고 봄이 온다.

꽃이 피고 마음도 따뜻해진다.



작은 민들레와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보인다.

늘 가던 길인데 오늘은 꽃들과 함께한다.




초음파를 봤다.


"배란은 아직 안 되었지날짜는 오늘 정해드릴게요."


커다란 난포가 하나 있는 걸 보니 그 난포 크기에 맞춰서 이식일이 정해진 것 다.


"가는 길에 주사 한 대 맞고 가세요."

확인해 보니 그 주사는 IVF-C 주사였다.


"해동은 두 개를 할 건데 잘 안 되어도 개로 맞춰드릴게요."

저번에 남편과 함께 의사 선생님께 "저희는 쌍둥이면 더 좋아요."라고 말한 걸 기억해 주신 것 같다.

그때는 웃으면서 넘기시는 것 같더니 수정란 두 개를 이식해 주신다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수정란 등급은 여쭤보지 않았다.

이건 마치 인생에 영향을 미칠까 봐 사주를 보기 싫은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모르는 게 약이다.

안 좋은 등급이라고 들으면 혹시라도 잘 안될까 봐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주사실에 들어갔다.


"엉덩이 주사 한 대 놔드릴게요."


"이게 어떤 주사예요?"


"난포 터뜨리는 주사예요. 따끔할 거예요."


맞아 본 엉덩이 주사 중 가장 아팠다.


약국에서 처방전을 내고, 유트로게스탄 질정 두 박스를 샀다.

"유산균 잘 챙겨드시고 손 발을 따뜻하게 하세요."



약사 선생님은 잔소리가 심하다.

나쁜 잔소리 말고, 착한 잔소리.


"아침 꼭 드셔야 해요."

"손 발 따뜻하게 하세요."

매번 갈 때마다 우리 엄마처럼 밥 잘 먹고 몸 따뜻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다.




저녁에 남편과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배가 너무 아파왔다.


난포가 터진듯한데 주사도 가장 아팠고 배 아픈 것도 가장 심하다.

남편과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백합탕이 나왔다.

백합탕이 끓기를 기다리다가 사리도 넣어먹자고 신나게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마치 생리통이 심하게 온 것처럼 아랫배를 묵직한 돌이 누르듯 뭉근한 통증이 계속되었다.

백합탕 국물을 떠먹다가 사리를 넣을 때가 되니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아랫배가 아팠다.

진통제를 살까 말까 고민하다 보니 통증이 약해졌다.


남편은 내가 아픈 걸 눈치채고 빨리 집에 가자고 했다.

안 그래도 병원을 같이 못 가줘서 미안했는데 아프니깐 집에서 쉬자고 했다.

하지만 경의선책거리 산책로를 함께 걷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걷겠다고 우겼다.

아름다운 아경을 배경으로 남편과 손을 잡고 걷고 싶었다.

많이 걷는 게 결국 임신준비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깐 걸었다.

걷다 보니 다시 또 아파졌다.

결국 걷다가 길에서 주저앉았다.


남편은 택시를 불러서 집으로 갔다.

저녁 내내 고통스러워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배란통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파서 IVF-C주사 때문에 그런가 싶었다.


진통제는 복용하지 않았다.

배란을 하고 곧 이식을 하는데 몸 상태를 최선으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괜히 약물을 먹은 다음에 임신 초기에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착상도 안 했는데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웃기기는 하지만 오래 기다렸던 이식이니 이 정도 고통은 참는 게 더 마음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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