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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Apr 20. 2023

자면서 착상이 됐으면 좋겠다

시험관 동결이식 후기

전날부터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새벽 내내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긴장했나 보다.


배아가 착상할 위치가 콕콕 아파오는 것 같다.

모든 게 다 착각이라는 건 알지만 이건 생리통도 배란통도 아니고 이식을 앞두고 혼자 겪는 이상한 증상이다.


오늘 10시까지 동결배아를 이식하러 병원에 가야 한다.

나는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마치고 용산역에서 KTX를 탔다.

KTX에서도 이것저것 해보려고 책과 노트북을 꺼내봤지만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전날부터 병원이 있는 지역에 가 있으라고 했다. 

내가 아침잠이 많아서 일찍 일어나는 걸 힘들어할 걸 알고 제안한 거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이식하면 며칠 못 보는데, 오늘 밤까지 떨어질 수는 없어요."

동결이식 당시 우리 부부는 두 지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었다.


하루라도 더 만날 수 있다면 만나야 한다.

일분이라도 더 남편을 볼 수 있다면 봐야 한다.

남편을 못 만났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남편을 바라볼 수 있는 현재의 일분일초가 애틋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남편은 이미 일어나 있었고 나를 꼭 안아줬다.


"오늘 가기로 하긴 잘했다."


이 포옹 한 번을 위해서 오늘 새벽 잠깐이라도 남편과 함께했나 보다.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포옹이었다.

아무런 말이 없어도 익숙한 남편의 체취에 마음이 안정되고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


"내가 같이 가야 하는데......"

남편은 난임병원 갈 때마다 연가를 내고 같이 가려고 한다.

지금 본사에서 교육받는 중인 남편이 평일에 연가를 내면 교육 과정에 지장이 많을 것 같아서 계속해서 남편을 말렸다.


"이식은 하나도 안 힘들데요. 혼자 가도 된데요."


날 걱정하며 따라오려는 남편을 단념시키기 위해서 동생을 불렀다.


"동생이 온다고 했어요. 걱정 말고 일 열심히 해요."


"ㅇㅇ가 와준다니 다행이야."


병원에 가고, 난임 시술을 받는 건 혼자 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난임병원에 부부가 함께 오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남편이 주말에는 항상 같이 와 주고, 평일에도 최대한 함께 가주려고 한다. 난임병원의 시술이 심리적으로 힘들어서 배우자가 함께 가 주면 의지가 되어서 좋다. 하지만 난 난임병원을 다니기 전이 더 힘들었고, 병원을 다니니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졌다. 


"난임 따위가 우리의 일상을 방해할 순 없지!"

남편이 씩씩하게 회사 잘 가고, 잘 자고, 잘 먹으며 일상생활을 잘해주는 게 더 좋다.

이딴 난임 때문에 남편이 회사도 못 가고, 걱정했으면 내가 더 미안하고 힘들었을 것 같다.


긍정적인 기운으로 무장하고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맨다.

달리는 KTX에 몸을 싣는다.

불안은 뒤로 하고 잘 될 거라는 막연한 확신만 가지고 길을 떠난다.


무언가 꿈을 많이 꾼 거 같은데 일어나 보니 잘은 기억나지 않는다.

병원 가는 KTX 안, 핸드폰으로 오늘의 심경을 담아본다.




KTX를 타고 아침 일찍 도착해서, 샤워를 마치고 간단하게 집정리를 했다.

이식 후에 며칠간 침대에 누워서 요양할 거여서 부엌의 배수구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다 채워지지 않은 쓰레기봉지를 꽉 묶어서 집을 나섰다.


'이식하고 쉬면서 쓰레기 냄새가 나면 안 되지.'

쾌적하게 쉬기 위한 밑작업이다.


오늘 오전 10시가 이식시간이다.

보통 이식시간 한 시간 전부터 오줌을 참는다고 한다.

오줌이 차 있어야 초음파가 잘 보인다고 한다.

8시 50분에 이식 전 마지막 오줌이라고 생각하고 쌌는데, 8시 59분에 한번 더 쌌다.

9시가 넘어가면 이제 오줌을 못 싼다는 생각에 자꾸 더 오줌이 마려운 것 같다.


"오줌이 차 있어야지 배아를 좋은 위치에 잘 이식할 수 있다. 하지만 이식 후에는? 너무 오줌을 참다가 이식하고 나서 오줌을 바로 싸기보단 누워서 한 시간 정도는 안정을 취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한 시간 정도면 어느 정도 오줌도 차 오르고 이식하고 나서 바로 오줌을 싸고 싶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해서 지하철 꼬리칸에 탔다.

그래도 출근시간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병원에 9시 30분쯤 도착했다.

오전의 난임병원 대기실에는 역시나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 잡아주세요."


접수하자마자 미리 등록해 놨었던 손등 혈관의 패턴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난자채취 때 한 번 해봤는데 몇 달 지나서 어떻게 잡는지를 잊어버렸다.


'손목 아래를 대는 거였나? 위를 대는 거였나?'


간호사 선생님은 내 등을 슬쩍 잡고 살포시 혈관인식기계에 가져갔다.

그제야 내 몸은 '어떻게 혈관을 인식시켰었는지' 기억했다.

 

혈관인식이 끝나고 바로 초록띠를 팔목에 채워줬다. 

팔목에 찬 초록띠에는 QR코드와 내 이름, 배우자 이름이 적혀있다.

시술실 들어가기 전에도 팔찌에 있는 이름과 QR코드를 확인하기 때문에 배아나 난자가 바뀔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대기하고 계세요. 12시쯤 끝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혈관인식을 마치고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렸다.


"12시쯤 끝난데. 다 끝나고 내가 스벅으로 갈게."

스타벅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여동생한테 카톡을 보냈다.

동생은 병원에서 날 기다리고 싶어 했지만 미혼인 동생을 굳이 난임병원 대기실에서 몇 시간 동안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명의 이름을 호명했다. 나는 공교롭게도 시술실과 멀리 떨어진 의자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내 이름을 불렀는지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10시 되기 전에 부른 몇 명의 이름 중에서 내 이름도 있을 것 같았다.


이름을 부른 간호사 선생님에게 혹시 내 이름도 불렀는지 여쭤보니 "들어오세요."라고 했다.

탈의실에서 하의탈의 후 가운을 입고 대기실에 앉았다. 

오늘 배아를 이식하는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각자 거리를 유지한 채 핸드폰 또는 티브이를 봤다.


대기실에서 이름이 불리면 시술실로 이동했다.

내 이름이 불려서 나도 시술실로 갔다.


베드가 있고 난자 채취할 때 앉았었던 의자가 있었다.


"엉덩이를 이쪽에 대고 누워주세요."


베드의 아래쪽에 누워서 양 발은 베드의 모서리 끝쪽으로 대고 다리를 벌렸다.


"핸드폰 주시면 배아 사진 찍어줄게요."


"감사합니다."


커다란 모니터에 두 개의 배아가 있었다.

오늘 내 몸 안에 들어갈 남편과 나의 결합물인 '5일 배양한 배아'이다.



쇠와 물이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마취를 안 하다니!'

차가운 쇠와 차가운 물이 아래에 가득 차오르는 것 같아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참을만하긴 했지만 솔직히 아랫배가 내내 아팠다. 

관에 물이 들어오는듯한 느낌은 '나팔관조영술'했던 기억도 되살렸다.


'인공수정이 더 아픈가? 이게 더 아픈가?'

머릿속에서 인공수정 때도 뭐가 들어가는 통증이 있어서 아팠던 기억이 중첩되었다.

'인공수정 때보단 조금 덜 아픈 것 같아.'


눈을 떴을 때는 모니터에 있던 배아 사진이 사라져 있었다.


시술이 다 끝났다.

"위로 올라가 주세요."

베드에서 상체만 위쪽으로 올라가서 베드에 온전히 누웠다.

채취실에서 회복실은 문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문이 열리고 내가 누워있는 베드째 회복실로 옮겨졌다. 채취실과 가장 가까운 자리였다. 난자채취 때도 같은 자리에서 쉬었기 때문에 제2의 집처럼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악!"

혈관에 바늘이 들어간다.

바늘이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냥 좀 이식할 때 아팠을 땐 꾹 참고 있다가 긴장이 좀 풀린 이제 와서 그때의 통증이 소리로 나오는 것 같았다. 이식할 때도 잘 참다가 지금 신음소리를 낸 게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상에 도움이 되는 콩주사를 수액으로 맞았다.

나는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따르고 있었지만 내 다음에 시술을 받고 왼쪽에서 쉬시는 분은 질문이 굉장히 많아서 덕분에 나도 정보를 얻었다.


"이게 그 유명한 콩주사예요?"


"네."


대기실에서 콩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조사했었다. 같이 기다렸던 사람 중 한 명은 외국인이었는지 콩 알레르기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그분의 남편에게 물어봤다. 오늘 이식한 사람들 모두가 콩 알레르기가 없었다.


나는 베드에 누워서 콩주사를 다 맞았다.

나중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콩주사는 면역력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면역력이 너무 높으면 때로는 배아를 외부물질로 인식해서 착상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높으면 좋은 면역력을 일부러 낮추다니 참 아이러니 하다.


내가 누운 곳 바로 맞은편에는 시계가 있어서 시계를 보니 한 사람당 시술시간은 10분 정도 되었다. '눈 질끈 감았더니 끝나긴 했지만 그게 10분이었구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콩주사를 다 맞고도 한참 누워있었다.

함께 대기했던 모두 다 이식이 끝난 것 같다. 더 이상 베드가 회복실로 들어오지 않는다.


"화장실 가셔도 돼요."

간호사 선생님은 회복실에서 오늘 배아를 이식한 모두에게 말했다.

이식하기 전에는 오줌 참기가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이식하고서 화장실을 갈 수 있는데도 막상 화장실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점심시간이 넘은 시간에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았다.


"두 개 다 잘 해동되어서 둘 다 넣었고, 3개 남았어요."


배아 등급은 중간 이상이고 배아 상태도 좋다고 하셨다.


병원을 나서서 집에 가는 길에는 흐드러지게 벚꽃이 피어있었다.

꽃향기를 맡으며 걸었다.


집에 가서 여동생과 점심을 먹자마자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식은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어있었다.

서로 '임신이 쉽지 않다'라고 한탄 섞인 대화를 나누던 고등학교 동창한테 임신했다는 카톡이 와 있었다.

축하한다는 답장과 함께 나는 시험관 진행 중이고 오늘 이식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는 임신이 안 되었을 때 본인 탓인 것만 같아서 많이 힘들었었다고 했다.

위로와 공감을 해주는 친구의 연락이 고마웠다.

나중에 키즈카페에서 애들과 함께 만나자는 희망찬 글을 끝으로 카톡대화를 마쳤다.


저녁을 먹고 이른 시간에 또 잠이 들었다.

하루종일 잠을 많이 잤다.


다음날 일어나서 놀랄 정도였다.

'하루종일 한 게 이식하고 잔 것밖에 없네?'


암곰은 수정 후에 겨울잠을 자고, 겨울잠을 자면서 착상과 출산을 한다고 한다.

나도 암곰처럼 자면서 착상이 잘 이루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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