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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Apr 28. 2023

난생 처음 본 두 줄

동결이식 후 증상과 감정 기록

이식 당일은 누워서 잠만 잤다.

이식일 저녁엔 아랫배가 아파와서 착상통이기를 바랐다.

이식 다음날에는 남편이 KTX를 타고 깜짝 방문을 했다. 남편과 함께 외식도 하고 카페도 갔다.

이식일에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던 게 많이 답답했었는지 밖에서 노니깐 재미있었다.


이식 후 아침과 저녁에 질정을 넣고 있는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점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인공수정 또 채취 때는 질정을 넣기가 곤혹스럽고 힘들었었다. 하지만 이식하고 나서는 쉽게 질정이 들어갔다. 처음에는 '경험이 쌓이면서 질정 넣는 스킬이 늘었나?' 했지만 이식 넷째 날부터는 확신이 들었다. 질정이 들어가는 쪽이 촉촉해져서 질정이 쏙 들어간다. 배란기도 아닌데 이식 후부터 계속 아랫부분에서 점액이 나오는 것 같다.


둘째 날 낮에 계속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이러다가 생리하는 거 아니야?'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생리할 것 같은 통증이 잠깐 있었다. 그리고 거의 무증상이었는데 저녁에 왼쪽 아랫배가 콕콕거리더니 전체적으로 꽈악 아랫배를 쥐는 느낌이 났다.

이게 착상하는 통증이면 좋겠다.

둘째 날 늦은 밤에 양팔과 허벅지가 간지러워서 나도 모르게 긁고 있었다. 웬 알레르기 증상이지?


셋째 날, 오전에 생리통처럼 아랫배가 아파서 혹시 생리하려나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매운 음식이 당겨서 아귀찜을 배달시켜 먹었다. 밤에 속이 쓰려서 조금 후회되기도 했다. 남편이 밤에 KTX로 온다고 해서 역에 픽업해서 운전하러 갔다. 집에 들어와서 질정을 넣고 누우니 오른쪽 골반 옆쪽이 잠깐 아리다가 왼쪽 골반 아래쪽은 더 길게 같은 통증이 있었다. 착상통이었으면 좋겠다. 오전에 겪었던 생리통 같은 통증보다는 더 임신에 가까울듯한 기분 좋은 통증이었다.


넷째 날, 생리할 것처럼 아랫배가 쥐어짜듯이 살살 아프다. 임신을 안 해본 입장에서는 생리하기 전의 배아픔이어서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저녁에 혹시나 하고 임신테스트기를 했더니 한 줄이 나왔다. 배는 생리통처럼 아프다. 괜히 임신테스트기를 했다. 한 줄이 나오니 생리할 것만 같아서 불안해졌다. 내일은 안 하고 모레 테스트기를 해 봐야겠다. 임신이었으면 좋겠다.


다섯째 날, 내내 생리통이 느껴졌다. 임신테스트기 하는 걸 참고 이식 7일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섯째 날, 꿈을 꿨다. 배아를 이식하러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내 실수로 배아이식을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배아이식을 하려면 특정 어금니의 DNA를 채취해서 추출시켜야 하는데 내가 다른 어금니를 사용해서 추출물에서 나의 DNA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해동시킨 배아는 다시 동결시킬 건데 그 와중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눈을 뜨니 새벽이었다.

그제야 '아! 나 이미 이식 끝났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다.


임신테스트기를 했더니 선명한 한 줄이었다.


"착상되고 자궁이 커지려고 배가 아프긴 개뿔! 다 생리통이었어!!!! 생리를 그렇게 했는데 왜 착각했어!"


혹시나 착상통일까 하면서 설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불안하고 절망스러운 마음에 차라리 태몽이라도 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편 옆에서 다시 잤다. 꿈에서 흰 암소가 다가오길래 길을 비켜주려고 계단 위로 올라가니 흰 암소가 날 따라서 계단을 올라오더니 점점 내 몸 위로 올라와서 어깨를 짚었다. 불길한 꿈보다는 낫다.


내일까지만 임신테스트기를 해보고 마음의 포기는 빨리 해야겠다.


저녁에 남편에게 말했다.

"빠르면 임테기 오늘 두 줄 나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한 줄이에요.

내일이나 모레도 한 줄이 나오면 임신 가능성 엄청 떨어지는 거예요."


남편은 두 눈을 꼭 감고 내 두 손을 본인의 두 손으로 꼭 잡은 채로 기도를 했다.


"우리에게 자녀를 주셔서 우리 ㅇㅇ가 마음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나는 그때 감동받아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남편은 내가 더 이상 마음고생 안 하고 마음이 힘들지 않길 바라는 기도를 했다.


가끔씩은 죄스러워진다.

5일 배양 2개나 이식했는데도 임신이 안되면...

다 떠먹여 줬는데도 임신이 안 되면...

그런 불안한 마음을 언제나 잠재워주는 건 남편이다.

남편이 잘 때는 그 숨소리를 들으면서 서서히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남편이 깼을 때는 남편의 사려 깊은 말 한마디에 요동치던 내 마음이 진정이 된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운은 마음이 넓고 따뜻한 남편을 만난 것이다.

시험관 시술을 겪으면서 가장 힘들다는 멘탈관리는 남편 덕을 많이 보고 있다.

남편 곁에 있으면 한 번도 힘든 적이 없었다.

혼자 있을 때 가끔 찾아오는 부정적인 생각은 남편 곁으로 가서 없애버린다.

이렇게 날 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위안이 된다.

비록 시험관을 하게 되었고, 비록 실패도 할지라도, 언제나 날 사랑하고 지지하는 든든한 남편 덕에 결혼 이후에 겪는 모든 일이 함께하는 의미 깊은 여정처럼 느껴진다.


주말 아침에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갈릭크림치즈와플이 먹고 싶다고 했다.

좀 있다가 산책을 나갔던 남편은 내가 원했던 와플을 사 왔다.

"이렇게 특정하게 먹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좋은 증상 아니야?"

"아닐 거예요..."

남편이 테이크아웃으로 가져온 커피도 조금 마셨다.

임신이 아닐 거 같아서 '막 나가라'였다.


저녁에는 남편과 벚꽃구경을 가기로 했다.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외식을 하고 걸어서 벚꽃축제를 하는 곳으로 갔다. 평지가 아닌 언덕에 있었다. 동산에 벚꽃이 피어있어서 오르막길이 힘들었고, 너무 운동을 심하게 하면 착상에 안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임신이 아닐 거 같아서 그냥 걸어버렸다. 남편과 추억을 쌓는 게 좋았다. 산에는 다 있는 필수코스, 운동기구들이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리 돌리기만 했다. 그렇게 벚꽃을 구경하고 내려갔다. 나무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내려다가 갑자기 허리가 '찌릿'하고 아팠다.


'이제 생리통 증상에 허리까지 추가됐나?' 

보통 생리할 때 배만 아팠기 때문에 허리가 잠깐 아프자 '너 가지가지하는구나.'라고 내 몸한테 속으로 뭐라고 했다.


"계단이 너무 길어요. 완만한 길 없어요?"


"조금만 더 가면 돼."


계단이 지름길이어서 금방 골목길이 나오면서 하산했다.

골목길을 걷다가 남편이 생각보다 집까지 가깝다면서 집까지 걸어가자고 했다.


지하철역으로는 두 정거장 정도의 거리였다.

평상시였으면 기분 좋게 걸었겠지만 마음 한 구석에 찝찝한 느낌이 남아있었다.

'착상기라면 조심해야 하나?'

하지만 "좋아요."라고 하고 걸었다. 


봄바람에 꽃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야경과 밤공기가 따뜻하면서도 시원했다.

이때만 해도 임신은 조금 자포자기였던 것 같다.

자꾸 생리통이 오니 기대를 안 할 수밖에 없었다.


일곱째 날, 여전히 생리통 통증이다. 정말이지 생리할 것 같다. 

데자뷔처럼 느껴지는 기분이다. 인공수정 후에도 생리할 것 같은 통증이 혹시라도 임신극초기 증상인지 기대하다가 극심한 실망감을 맛봤었다.

카페에서 원샷만 넣어달라고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먹었다.


카페에서 이것저것 하다가 나도 모르게 시험관 다음 차수를 대비해서 혼인관계증명서를 떼려고 무인증명서발급기 위치를 검색하고 있었다. 이번 주 수요일에 남편과 외식하기로 해서 그 식당 근처에 무인증명서발급기가 있나 검색하다가 안 나오길래 식당과 집의 중간에 있는 구청에서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심지어 다음 차수에 두 개를 넣었는데도 안 되면?

그다음에 5일 배양 남은 하나를 넣으면 가능성이 떨어지니까 채취를 다시 해서 5일 배양 두 개를 넣을까? 임신이 또 미뤄지겠지만 배아를 하나만 넣는 것보단 나을 거야. 그리고 둘째도 가져야 하니까 배아는 많으면 좋지.


세종이 소득에 상관없이 난임을 지원해 준다는데 차라리 세종으로 이사를 갈까?

계속해서 이식하고 채취하면 월세보다 더 나오겠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에 집중해서 아무 생각을 안 하려고 했다.

이 상황에서 하는 생각마다 다 부정적인 미래를 대비하는 내용이었다.


사람이 하는 걱정 대부분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더니 딱 내가 그런 상태이다.

아직 임신유무를 확인하는 피검사도 하기 전인데 다음 달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미리 생각하고 있다.


여덟째날, 남편과 여행을 와서 재밌게 놀다가 호텔에서 잠이 들었다가 부산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인 거 같은데 남편은 지금 출근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도저히 일어날 자신이 없어서 따로 가겠다고 했다. 잠결에 내 입은 변명을 말하고 있었다.


"제가 아침에 질정을 넣어야 하는데 질정을 넣으면 삼십 분 이상은 누워있어야 되거든요. 출근 늦으면 안 되니까 먼저 가세요."


숙소 근처에 역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고, 기차역에서 집을 가면 수월해서 좀 늦게 체크아웃하려고 했다.


샤워하고 나온 남편이 침대에 엎드려서 폰 하는 걸 보자 잠이 조금씩 깼다.

몸을 일으키니 아래로 분비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질정을 넣어서 그런가? 아니면 생리하려고 이러나?' 분비물이 살짝씩 나오는 건 괜찮아도 이렇게 많은 양이 밖에서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을 깨니 남편과 헤어지기 싫어져서 가방에 있던 임신테스트기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어차피 임신이 안 된 거 같으니 한 줄이 나온다면 아침저녁으로 넣어야 하는 질정을 오늘 끊고 아침 일찍 남편을 따라서 함께 차를 타고 가려고 했다.


이미 그제부터 임신은 포기했기 때문에 아침잠이 덜 깬 채로 임신테스트기를 했는데 희미한 줄이 보였다. 

지금까지 선명한 한 줄만 보아왔기 때문에 더 가까이 들여다봤는데 너무 희미해서 확실치가 많았다.


'설마 두 줄인가?'


임테기를 들고 화장실을 뛰쳐나왔다.


"이것 좀 봐주세요. 두 줄이에요?"


남편은 나의 임테기를 보고 "두 줄이야."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희미하게라도 한 번도 두 줄 나온 적 없었잖아."


"맞아요."


"아무 말 없어서 안된 줄 알았어."


믿기지 않아서 얼떨떨했다.

금방이라도 생리할 것처럼 배가 아픈데 두 줄일 수가 있나?


남편이 말했다.

"지금은 더 진해졌어."


"저 질정 넣고, 쉬고 갈게요. 차 오래 타면 안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쉬고 와."


푹 쉬자.

이틀 후면 피검이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게 확실해진다.

현실인지 믿기지 않고 너무 감사하다.

눈물이 또르르 떨어진다.


저녁에 두 줄을 확인해서 그런지 누웠더니 배에 통증이 느껴졌다.

내 배가 둥근 바구니라면,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밀어내며 바구니의 크기를 키우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기가 자랄 자궁의 크기를 키우는 통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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