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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May 09. 2023

단 하나의 배아라도 착상한다면

동결이식 2차 시작

"딱 너 같은 딸 낳고 싶다."


남편이 병원까지 데려다준다고 해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더니 남편이 말한다.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남편이 출근길에 태워준다고 해서 편하게 병원에 갔다.


생리는 아무런 조짐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이상한 일이다.

이식 후 잠시나마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봤을 때 생리통 같은 통증이 있었는데 두 줄이 한 줄이 되니 배가 아프지 않았다.

화유(화학적 유산)는 늦은 생리라는 말을 들었다. 생리전증후군도 전혀 없어서 이대로 생리는 늦게 할 것 같았다.


주말에 남편과 여행계획도 잡아놓고 저녁에 분위기 좋은 와인바에서 (와인은 안 마셨지만) 파스타를 먹으면서 데이트를 하고 있을 때였다.


화장실에 갔다가 생리혈이 조금 묻어있는 걸 보게 되었다.


다음날은 임신을 확인하는 2차 피검사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난임 병원에 가기로 되어있었다.

이대로 피검사만 하고 끝날까 봐 병원에 가서 접수할 때 "생리를 시작해서 원장님을 뵙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진료실로 들어갔다.


"피검사 한 이후에 연한 두 줄이 한 줄이 됐고, 생리를 시작했어요."

"생리 양은 많나요?"

"어제 살짝 나오고 오늘부터 많이 나와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했다.

항상 생리할 때 의사 선생님께서는 생리를 처음 시작한 날과 양이 많아진 날을 물으신다.

그렇게 세밀하게 생리주기를 관찰하신다.


"이번달에 이어서 이식할 수 있나요?"

"동결은 원하면 이어서 할 수 있어요."

"원해요."

소변검사 결과를 물어보시고, 초음파를 보니 생리가 맞으니 피검사는 안 하고 가도 된다고 하셨다.

저번 동결이식과 같이 혈당약과 과배란약을 처방받았다.



지난달 동결이식 1차 실패

이번달 동결이식 2차 시작


저번에 난자채취 이후엔 생리도 안 하고 이식을 빨리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는데 이번에는 바로 이식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좋았다.


이제 난임일기가 임신일기 그리고 더 나아가 육아일기가 되길 바란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
-슬램덩크



병원에 방문했다.


"약은 잘 먹었죠?

초음파 볼게요."


초음파를 보니 양쪽으로 제법 큼지막한 난포가 각각 하나씩 보이는 것 같았다.

클로미펜을 거의 1년간 먹으면서 항상 생리 후 14일이 훨씬 넘어서도 난포가 크질 않았었다. 대신 난포 여러 개가 조금씩 커져있었었다. 그런데 지금 다니는 난임병원 의사 선생님께서 처방해 주시는 약인 피어리존정하고 파누엘정이 나하고 잘 맞나 보다.

생리 12일 만에 이렇게 큰 난포 하나씩 양쪽으로 자라다니! 경사였다.

지난번 동결이식 1차에서도 난포가 딱 하나만 크게 자랐었다. 나 같은 '다낭성난소증후군'을 지닌 사람에게는 난포가 하나만 자란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 줄 모른다.


"배란이 잘 되고 있어요. 오늘 배란시키는 주사 맞고 가고 이식은 5월 1일로 할게요. 두 개 넣어드릴게요. 목요일부터 질정 아침저녁으로 쓰세요."


"저 질정 있어요."


"유트로게스탄 질정이요?"


"네. 저번에 안 썼어요."


"그럼 그거 쓰시면 돼요." 하면서 종이에 쓰시는 무언가를 수정테이프로 지우셨다. 아마도 유트로게스탄 질정 처방에 대한 내용인 것 같았다.


오늘은 의사 선생님께서 어디에 사는지도 물어봤다. 왠지 인공수정과 동결이식 실패 이후로 나한테 더 관심을 기울여서 더 신경 써주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긴 료실 들어가서 빨리 임신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으니 기억에 남는 환자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그렇게 어필했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께서 빨리 임신시켜 주려고 노력해 주실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다.


번호표를 뽑고 순서가 되자 주사실로 갔다. 주사실에 낼 핑크색종이에는 IVF-C 주사라고 적혀있었다.



"엉덩이 주사 한 대 맞으실게요."

간호사 선생님은 한팩에 가루와 주사액, 총 두 개의 바이얼병이 든 팩을 2팩 꺼냈다.

주사기 바늘을 고무로 된 입구에 찔러서 주사액을 빨아들인 후 가루로 된 곳에 다시 넣어서 섞은 후 나머지 한 팩도 섞어서 두 개의 주사액을 한 주사기에 넣었다.


"어떤 주사예요?"


"이식하기 전에 맞는 주사예요. 아직 배란된 게 아니어서......"


엉덩이를 대고 눈을 감았다.

따끔-

난포 터지는 주사는 엉덩이 주사 중 가장 아프다.


"계속 문질러주세요."

알코올솜을 문지르면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병원문을 나섰다. 병원문을 나서자마자 통증이 삭- 사라졌다.

마치 영화 '유주얼서스펙트'의 마지막 장면처럼 보통속도로 걸었다.


내 몸도 점점 적응을 하나?

지난번엔 집에 올 때까지 엉덩이가 너무 아팠는데 이젠 금방 괜찮아진다.


이번엔 생리 시작 12일 만에 배란이 될만한 난포 크기가 되어서 난포 터지는 주사를 맞았다. 지금까지 긴 생리주기 때문에 항상 배란도 늦었었다. 이렇게 배란 예정일이 빠른 적은 처음이다. 이 변화가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지금까지 임신이 잘 안 되었었던 건 배란이 늦어서 이미 배아가 착상될 시기에는 자궁벽은 착상시기가 끝나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배란'을 검색하면 "이 현상은 생리 시작 12~14일경에 일어나며 48-50시간 정도 지속된다."라고 쓰여 있다. 시험관을 하면서 보통의 배란주기에 맞춘 1차 동결이식 때는 약하지만 착상수치를 보긴 했었다. 배란을 생리시작 12~14일쯤에 맞춘다면 착상 가능성이 올라갈 것 같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


난포 터지는 주사를 맞은 다음날, 배란통이 오기 시작했다. 난포 터지는 주사를 맞으면 다음날이나 다다음날정도에 배란통이 오곤 했다. 단 하나의 배아라도 착상을 한다면 너무 감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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