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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May 18. 2023

이제 남은 배아는 없어요

2차 동결이식 후기

이번 2차 동결이식은 남편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1차 이식 때 친구들과 가족한테 말했다가 계속해서 궁금해하면서 물어보는 바람에 실패의 소식을 말해야만 했었다. 이번에는 조용히 이식하고 실패하면 아무 말도 안 하고 성공하면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다.


이식 전날, 남편과 카페에서 베이커리류와 음료를 먹고 있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저번에 넌 괜찮은 듯 말했지만, 연락이 없길래 혹시나 안 좋은 생각 하나 해서 걱정돼서 전화했어."


저번에 친구하고 만났을 때 얘기했던 주제는 시험관시술을 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너 해외출장 갔다고 얘기 들어서 연락 안 했었지. 난 저번 시험관은 실패했지만 괜찮아. 퇴사하고 퇴직금으로 다른 일 하려고 하고 있어."


"퇴사했다고? 아깝게 왜 나갔어. 네가 얼마나 그 일을 좋아했어. 너 커리어는 어떻게 하고?"


"좋아했었지. 근데 나이가 들고, 임신시도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더라. 아무래도 실험실 일은 임신준비하기에는 힘들어서 그만뒀어."


요즘엔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

그게 더 중요해서 직장을 그만둔 아쉬움은 크지는 않다. 고민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다 놓치느니 지금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것. 아이를 가지는 데 더 집중하고 싶었다.


1차 이식일 아침에 이식시간으로부터 1시간 전부터 오줌을 참았었다. 이번엔 한 시간 반 동안 오줌을 참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한 시간 반 전에 마지막오줌을 싸니 30분이 지나고 나서 또 오줌이 마려워졌다. 왜 이식일엔 유난히 더 자주 오줌이 마려운지 모르겠다.

 

오늘 이식하고 푹 쉬려고 했는데 아침에 남편이 빨래를 돌리고 아침운동을 하러 나갔다.


"오늘 전 빨래 안 널거에요. 정말 쉴 거예요."

"응. 내가 다 할게."


어제 남편한테 빨래 미리 해 놓으라고 할 걸 그랬다. 우리 집에서는 집안일을 유연성 있게 하지만 빨래만큼은 온전히 남편한테 맡겨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남편의 셔츠를 다리는 건 내가 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말해뒀다. 남편의 와이셔츠는 몇십 장씩 여분으로 다려놓기 때문에 넉넉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비즈니스캐주얼로 남편이 좋아하는 하늘색 셔츠와 스프라이트 셔츠, 그리고 유니클로 울라이크 감탄팬츠가 드럼세탁기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띠디딕띠디딕

울모드이니만큼 빨래는 금방 끝나서 종료 알림음이 울렸다.

내적갈등이 시작되었다.


"지금 재빨리 다림질할까? 그냥 누워서 더 잘까?"


고민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리미와 다리미판을 꺼내서 셔츠들과 감탄팬츠를 다리기 시작했다. 다리미에는 강하게 스팀을 뿜어내는 버튼도 있었는데 평상시에 스팀모드로 쓰면 은은하게 스팀이 나와서 자연스럽게 다려지기 때문에 굳이 쓰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스피드가 필요할 때이다.


그렇게 30분 안에 셔츠 3개와 팬츠 하나를 다렸다. 

지금까지는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다림질했었는데 역시 데드라인이 있어야지 속도가 빨라지나 보다.


-삐비비빅

다림질을 마치고 뒷정리를 하려니 남편이 들어왔다.

"더 자지. 왜 다렸어."

감동한 표정으로 현관에서 날 바라보는 남편이 귀여웠다.


오늘은 9시 시간 딱 맞춰서 병원에 도착할 것 같다.

8시 59분에 병원에 도착하니 대기인원이 많이 있었다. 나는 접수처에 접수와 함께 동결배아이식동의서를 제출했다. 곧이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나서 혈관인식을 하고 초록 팔찌를 받았다.

 


"채취가 늦어지고 있어서 이식도 늦어질 거예요. 대기하고 계시면 돼요."


"네."


나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사람 엄청 많아요. 이식 시간 미뤄진데요."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더 빨리 태워줄걸 그랬나 봐."

"아니에요. 이식시간 자체가 미뤄진 거여서 오히려 시간 맞춰오긴 잘했어요. 더 빨리 왔으면 더 많이 기다렸어야 했어요."


"못 기다려줘서 미안해."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남편은 회사에 가야 했는데 나를 기다렸다가 간다고 했었다. 그래서 오래 기다려야 해서 안 된다고 설득했다.


남편이 기다리고 있으면 수액 맞는 시간조차도 길게 느껴진다. 오히려 없으면 맘 편히 수액 맞고 베드에서 쉬다가 집에 갈 수 있다. 남편이 있으면 대기하는 남편이 보고 싶어서 난자채취 때처럼 빨리 나와버릴 수도 있다. 나의 시험관 시술이 남편의 일정에, 나아가 우리 부부의 삶에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편은 계속해서 본인의 일을 하고, 일상을 보내는 게 더 좋다.


"ㅇㅇㅇ님, ㅇㅇㅇ님,ㅇㅇㅇ님,ㅇㅇㅇ님,ㅇㅇㅇ님 들어오세요. 지금 들어가시면 11시 30분이나 12시가 돼야지 나오실 수 있을 거예요."

9시 40분이 되어서야 이식하는 사람들 이름을 불렀다.

슬리퍼로 갈아 신고 탈의실에 가서 바지와 팬티를 벗고 가운을 입었다. 대기실에서는 여러 명이 앉아있었기 때문에 다리를 오므리고 있었다. 오늘 총 이식하는 사람은 5명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3명이 하얀색 수면양말을 신고 있었다. 왠지 그 모습을 보니 나의 준비성이 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수면양말 신고 올걸.'


밖은 따뜻한데 하체에 아무것도 안 입어서 그런지 쌀쌀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기분 탓일 수도 있다. 밖의 날씨와 상관없이 난임 시술을 받을 때마다 춥다. 마음이 추운 건지도 모르겠다.



"이식 후 10분 후부터 화장실 가실 수 있어요. 움직이는 건 착상하고 관련 없으니까 움직이셔도 돼요."


"수정란이 잘 착상될 수 있게 수액을 놔드릴 거예요. 그런데 이 수액은 콩에 알레르기가 있으면 안 돼요. 알레르기 있으신 분 있나요?"


"이식이 다 끝나면 진료실 앞에 앉아계세요. 원장님 진료 보시고 가야 해요."


ㅇㅇㅇ님 오세요

드디어 이식이 시작되었다. 내 차례를 기다리며 긴장되는 마음은 대기실에 틀어놓은 티브이를 보면서 달랬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첫 번째 들어간 사람의 이식이 끝나고 두 번째 이식할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ㅇㅇㅇ님.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대기실 문 밖에 나가서 다음 순서에 배아이식을 받기로 예정된 사람을 찾아왔다. 아무래도 배아이식이 처음이어서 허둥지둥했나 보다. 한 번이라도 이식을 해봤다면 이식 전에 다 모여서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것을 알았을 테니.

 "옷 갈아입으세요." 간호사 선생님은 그분을 탈의실로 안내했다.

그분은 계속해서 "너무 쉬가 마려운데요."라고 말하면서 화장실을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미 그분의 이식 순서가 지나고도 한참 지났기 때문에 간호사 선생님은  "참으시는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서둘러서 시술실로 데려갔다.


그분은 이식을 하고 5분도 안 되어서 나와서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이 급할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식을 위해서 오줌을 너무 오래 참는 것도 힘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차례차례 대기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불리면 차례대로 시술실에 가서 이식을 받았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팔목에 찬 초록띠에 있는 바코드를 인식하고 시술 베드에 누웠다.


베드 아래쪽에는 파란색 수건이 접어져 있었다

"여기에 엉덩이 대시고요 진료받듯이 양 발은 이쪽 끝에 대시면 돼요."

한 번 이식을 해봤다고 능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배아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셔서 핸드폰을 맡겼다.


"세 개 해동시켰습니다."


'세 개요?'

세 개를 이식하려나 하고 모니터를 보니 이식할 배아는 2개였다.



"두 개만 이식할 거예요. 하나는 ~~~~~."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되었다고 설명해 주셨는데 내 귀에는 마지막 말인 "이제 남은 배아는 없어요." 밖에 들리지 않았다.


일단 이식 먼저 하고 나중에 여쭤볼 생각으로 "네."라고 대답했다.


내가 대답하고 나서 바로 남자 연구원이 'ㅇㅇㅇ님 배아 두 개가 해동되었다'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배아 해동 때문에 내가 마지막 순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개중 하나가 상태가 안 좋아서 하나를 더 꺼내서 해동하는 과정을 거치느라 순서를 마지막으로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시술은 시작되었다.


"힘 빼세요."


의례적으로 하는 말인지 아니면 내가 힘을 많이 주는 편인지 모르겠다. 시술할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힘을 빼라'라고 말하신다.


본격적인 시술이 시작되면 옆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은 내 다리를 잡아서 고정시킨다. 딱히 벨트로 고정하지 않아도 아랫 허벅지 쪽을 잡으면 '아. 움직이면 안 되는구나.'라고 의식하게 된다.


다행히도 이식은 저번보다는 덜 아팠다. 그저 기다란 쇠가 들어가는 느낌이 나면서 끝났다. 배아를 넣은 거지만 물이 들어온 듯한 기분이 났다.


시술받은 베드에 누운 채로 회복실로 옮겨졌다. 마지막 순서였지만 회복실의 가운데쯤 되는 자리에 베드를 밀어주셨다. 이제 수액을 맞을 차례이다.

"주먹을 꼭 쥐어보세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세요."

주삿바늘을 찌를 자리를 꼼꼼히 고르는 모습이 무서워서 눈을 감았다가 살짝 실눈을 떴다. 주삿바늘을 꽂자마자 힘을 뺄 생각이었다.


걱정이 무색하게 한 번에 주삿바늘이 팔에 찔러졌다. 콩주사를 맞고 있다. 회복실에 베드들이 많이 있었는데 한 명이 돌아다니면서 다 맞은 수액을 빼내고 있었다.


"수액 빼드릴게요."


내가 콩주사를 맞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벌써 수액을 다 맞은 사람도 있었다. 이식 마지막 순서여서 수액 역시 가장 늦게 맞게 되었다.



누워서 수액을 맞으면 베개를 주고, 폭신한 이불을 덮어준다. 한 잠자도 되는 상황이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하얀색 액이 뚝뚝뚝 떨어지면서 몸 안에 들어가는 걸 본다. 어느덧 나 빼고는 다들 수액을 맞았는데 간호사 선생님은 회복실의 불을 끄고 나가셨다.


'이대로 수액이 끝나면 핏줄 속에 공기방울이 들어가는 거 아니야? 보고 있다가 끝나가면 말해야겠다.'


어느덧 수액은 다 떨어져서 연결관 안에 있는 흰색 액체도 줄어가고 있었다. 그때 타이밍 좋게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수액을 빼주셨다.


12시쯤 옷을 갈아입고 진료실 앞에서 대기했다.


"아까 얘기해 드린 데로 3개 해동했어요. 하나는 잘 안 자라서. 그래서 남은 건 없습니다."


"저 질정 다 썼어요."


"질정 처방해 드릴게요. 일상생활 하시면 돼요."


"아스피린 처방받았었던가요?"

"아니요"

"아스피린 처방해 드릴 테니까 피검사하는 날까지 하루에 한 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지난번 이식과는 달리 아스피린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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