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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May 15. 2023

질정을 잊다니!

이식 전 문제 해결완료

주말에는 남편이 있는 서울에 올라와서 지내기로 했다. 주말 내내 지낼 짐을 가득 지고 지하철을 탔다. 배낭과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었다. 핸드폰 캘린더의 오늘 일정을 보는데 "오늘부터 질정"이라고 적혀있었다. 그제야 아침에 질정 넣는 걸 깜박 잊은 것은 물론이고 서울에 질정을 챙겨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급하게 지하철역 근처의 산부인과를 검색했다.

검색창에 ㅇㅇ역 산부인과라고 검색하니 마침 약속장소 바로 근처에 산부인과가 있었다.


산부인과에 들어가니 대기하는 인원이 한 명도 없었다. 지금까지 지방에서 다녔던 산부인과들은 산부인과가 적기 때문에 항상 대기가 많았었기 때문에 신기했다.


"처음 오셨어요?"


간단한 문진표를 작성했다.


"저희 산부인과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검색했어요?"


"네. ㅇㅇ역 산부인과로 검색했어요."


"오늘 어떤 진료를 보실 거예요?"


"처방받은 질정을 놓고 와서 처방전 받으려고요."


"질정은 왜 처방받는 거예요? 산부인과적인 시술을 하셨나요?"


"시험관 시술 중이어서 이식을 앞두고 오늘부터 질정을 넣어야 하는데 깜박 잊고 놓고 왔어요. 주말까지만 서울에 있을 거여서 몇 알만 필요해요."


"이식은 언제 예정이에요?"


"다음 주 월요일이요."


"시험관 처음하세요?"


"아니요. 이번이 두 번째예요."


처방전만 받는다고 했지만 꽤 자세하게 이번달 생리 시작일, 초경나이, 마지막 초음파일 등등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확인하는 사항이 많았다.


대기는 짧았지만 내가 다녀본 산부인과 중에서 상담은 가장 길고, 자세했다.


'처방전 하나 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약이 없다고요? 여기요. 딱-

3초 컷으로 처방전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었다.


"저희 병원에서 다루지 않는 약이면 처방이 나오지 않을 확률도 있어요. 일단 여기에서 기다려주세요."


처방이 나오지 않을 수가 있다고?

시간은 오후 5시가 넘어갔기 때문에 병원 문이 닫으면 오늘치 질정을 넣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다. 기다리면서 핸드폰으로 약국의 위치와 여기에서 가까운 산부인과를 감색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질정 처방을 받지 못한다면 바로 다른 병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똑똑


"안녕하세요."


"네. 질정 8알 처방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상담시간이 길었던 만큼 진료시간은 짧았다.


"ㅇㅇㅇ님. 계산해 드릴게요. 여기 처방전이에요."


"감사합니다."


"병원 오른쪽에 약국이 있어요. 거기 약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없으면 길 건너서 대학병원 쪽으로 가요. 약국이 3개 정도 바로 보일 거예요."


"감사합니다."


"약이 없으면 어떡하죠?"


"약국 다 돌아다녀봐야죠."


"이식하면 무거운 가방 들지 마세요."


"네. 주말에 서울에서 머물 거여서 좀 많이 들고 왔어요. 이식하면 쉬어야죠. 감사합니다."


병원 옆에 있는 약국은 매우 협소해서 5명 정도 손님들이 몰려도 꽉 찰정도였다.


처방전을 내밀고, 질정이 있기를 바랐다.

뒤에 있는 약품보관함에서 약을 찾는 동안 살짝 초조한 기분으로 기다렸다.


"용량이 어떻게 되죠?"


처방전에 "유트로게스탄 질정"이라고만 적혀있고 용량은 나와있지 않았다. 당연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

질정의 용량은 신경 써본 적이 없었다.


"잠시만요. 저번에 처방받은 처방전 사진 보여드릴게요."


핸드폰 사진폴더를 뒤져서 저번에 난임병원에서 처방받은 유트로게스탄 질정 처방전과 사진을 보여드렸다.

용량은 200mg였다.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있다 없다 말도 없이 약국은 손님들이 계속해서 들이닥치고 있었고 물품보관함에서는 약국 직원이 계속해서 질정을 찾고 있었다.


-퍽

"죄송합니다."

작은 약국에 손님이 많아서 서로서로 부딪혔다.


"200 있어요!"

직원의 목소리가 희망차게 들렸다.



유트로게스탄 질정 8알을 받아서 옆 건물의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원래 이곳에서 남편을 기다리려고 했기 때문에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사이렌오더로 '자몽허니블랙티'아이스를 시키고 질정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커피 대신 차를 시켰는데, 나중에 이 메뉴가 홍차여서 카페인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을 깨끗이 씻고 질정을 넣었다. 아침에 넣어야 했는데 한참이나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안 넣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질정을 넣고 자리로 들어오니 음료가 준비되었다는 알람이 떴다. 집에서 질정을 넣을 때는 넣고 나서 30분 정도는 누워서 흡수되길 기다렸었다. 두 번째 이식이라 시험관이 많이 편해졌는지 이식준비도 큰 신경이 안 쓰였나 보다. 혈당약, 엽산, 비타민D는 챙겼는데 질정을 잊다니! 음료를 마시며 남편을 기다린다.


이식 전 조그만 문제가 있었지만 잘 해결되었다.

이식 전에 남편하고 서울에서 알콩달콩 재미있게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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