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L시인을 만났다. 시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자 나를 시의 세계로 입문시킨 사람이다.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건 아주 오래전 시인의 산문집을 통해서였다. 산문집을 읽고서 시인을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10년 전 시인을 만날 기회가 생겼고 그때 시인의 시집을 처음으로 읽게 되었다. 시는 어려웠지만 어떤 문장을 마음에 들어와 쓰다듬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고 울리기도 했다. 그렇게 시라는 세계를 만났다.
10년이 흐르는 동안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이 나왔고 함께 만났던 언니들과는 못 본 지 오래되었다. 그때 알게 된 사람 중에는 자신의 이름을 책을 낸 사람도 있었고 책을 기획한 사람도 있었으며 자신의 작품으로 전시를 한 사람도 있었다. 10년이란 세월 속에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가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10년 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나는 15년 이상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 사이 시를 전혀 모르던 애송이에서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아이 수준은 된 것 같다. 어려워도 시를 계속 읽고 쓰면서 시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를 마음에 품고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는 시를 생각하면 나를 떠올리기도 하니까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릴 때보다 지난 10년간 책을 꾸준하게 많이 읽었고 읽고 나면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가볍게 한, 두 문장 쓰던 시절을 지나 매일 한 장씩, 많게는 세네 장씩 빼곡히 필사하며 매일을 보내고 있다. 그저 막연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일기조차 쓰지 않으면서 마음만 컸던 시절이었다. 10년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나의 생각조각을 모으기 시작했고 리뷰뿐만 아니라 짤막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다 보니 이제는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10년 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이별하면서 마음은 여기저기 생채기가 났지만 마음 어딘가에는 빛이 들어오기도 했다.
10년이란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는데 되돌아보니 금세 지나가버렸다. 그래서 아쉬운 순간이 자꾸만 떠오른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야 했다. 더 멀리 떠나야 했다. 더 깊이 사랑했어야 했다. 늘 걱정과 두려움이 많았던 나는 무언가를 거침없이 하기보다 물러서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사람이 어려웠던 나는 마음을 어찌해야 몰라 도망가기 바빴다. 사람을 미워했던 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 했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나의 삶을 좀 더 아끼고 사랑했어야 했다. 삶이 무너지고 사랑을 잃고 나서 진부하게도 그게 소중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후회는 언제나 늦고 다짐은 금세 흩어졌다. 여전히 매일 후회하고 다짐하며 삶을 끌고 나가고 있다. 지난 10년이 나에게 후회뿐이라 하더라도 후회를 딛고 다시 다짐하면서 그렇게 살아나가야지. 다시 10년이 지났을 땐 후회하지 않도록. 그땐 내 곁에 사랑이 가득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