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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Oct 21. 2024

109. 시인들의 메아리

시 낭독 퍼포먼스

오늘의 단어채집


메아리

명사 울려 퍼져 가던 소리가 산이나 절벽 같은 데에 부딪쳐 되울려오는 소리.


<메아리 조각, 소리 풍경 사이에서>

_ 김리윤, 김소연, 김선오, 이제니, 하미나, 임솔아



비엔날레 전시 때문에 사방이 차로 가득하다.

빙글빙글 돌다가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간신히 빈틈을 발견하고 책더미를 품에 안고 달린다.

어린아이의 함성을 응원가 삼아 달려간 곳은 어둠 속.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너를 개라고 불러도 될까.(전망들_한 마리 하나 한 개, 김리윤)


그래. 나는 빛을 따라 어둠 속으로 들어온 한 마리 개.

**볼 수 없는 것과 보이는 것이 없음을 구분할 수 없(전망들_한 마리 하나 한 개, 김리윤)

으니까.


캄캄한 공간에서 허둥지둥 이리저리 보는 것보다 들리는 것에 어지러워.

자꾸만 개를 부르는 빠르고 낮은 목소리.

흔들리는 눈빛, 바닥에 앉는다.

목소리가 멈추고

다시 목소리가 들린다. 하늘에서.



**반복한다.

빗소리가

반복된다.

영원히 회전하는 물기둥이 있다.(영원과 에러, 김선오)


전시장에 비가 내린다. 빗소리가 들린다.

너의 뒷모습이 보인다. 반복되는 모습.

볼 수 없는데 보이는 장면들.

물기둥처럼 나를 휩쓸고 간다.


낭독을 할 때마다 공간이 뒤틀린다.

시인은 어디에나 있다. 목소리만 들려온다.

실체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일어나 목소리를 따라간다.


**빛이 일렁이기에

숲으로 갔다(부서진 시간을 부수는, 김선오)


빛 사이에 당신이 있다.

빛 사이를 거닐며 빛의 틈에서


**어둠이 와도 나보다는 어두울 리 없는

밤에 발을 내딛는다(식량을 거래하기에 앞서, 김소연)





분명 없었는데,

뒤돌아보니 당신이 있다.

처음 본 당신의 목소리에 눈물이 난다.


**버릴 수 있는 것들만 버려왔으니까 오늘부터는 버릴 수 없는 것들을 버려야 한단다(우수수, 김소연)


언니, 나는 버리지 못할 거 같아요.

이미 부서지고 망가지고 더러워졌는데

너무 꼭 쥐고 있어서 퍼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여기에 있자

그래 그냥 그러자

그래야겠다(동굴, 김소연)


그래요 여기에 있을게요.

어둠 속이라도 괜찮잖아요.


**너는 쓴다. 피로와 열패감 속에서.

나는 읽는다. 절망과 비통함 속에서.(발화 연습 문장, 이제니)


그러니까 내가 쓰는 것은

무겁게 짓누르는 이 열패감을 견디는 것은

당신 덕분이다. 당신이 내 글을 읽어줬으므로.



**아무것도 안 하는 방법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방법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있었다.(음소거, 임솔아)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상처를 치유하기도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고

아무것도 안 하기도 하지.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한 명의 목소리.

두 명의 목소리.

여섯 명의 목소리.

천둥처럼 들리는 **그러니까 너는 여전히 아직도(발화 연습 문장, 이제니)

귓가를 울리는 수많은 문장

눈을 감는다.

당신이 보인다.

눈을 뜬다.

시인의 등이 보인다.

다시 눈을 감는다.

눈물이 흘러나오지 못하게.

서서히 멀어지는 등.


**한 사람의 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기면 어떻게 되는 걸까?(글쓰기 수업, 하미나)


실체를 찾아 애썼으나

목소리만 들렸던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 않으냐고.


목소리만으로 귀가 먹먹하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시인들.

너무 많은 문장은 목소리를 타고 파도처럼 밀려와


**뒤집어쓴 것은 물줄기가 아니라 목소리입니다(발화 연습 문장, 이제니)


메아리치는 목소리가 발끝에 매달려 따라온다.

이 밤이 끝나가도록.


♪ 광주 비엔날레의 독일 파빌리온 두물마을 오픈 스테이지인 <메아리 조각, 소리 풍경 사이에서> 시 낭독회에 다녀왔다. 여섯 명의 시인이 퍼포머로 참여하는 시 낭독 퍼포먼스였다. 낭독 퍼포먼스는 처음이었는데 어두운 실내에서 진행된 낭독은 시인들이 어디에 있는지 친절히 알려주지 않고 목소리로 등장했다. 모두 까만 옷을 입고 있었고 나타나는 곳은 제각각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낭독하기도 했고 움직이면서 낭독하기도 했으며 혼자서 하는 낭독과 같이 하는 낭독이 있었다. 도돌이표처럼, 메아리치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고 마음이 일렁였다. 관객 또한 의자에 앉아서, 바닥에 앉아서 들을 수 있었다. 의자도 바라보는 방향이 다 달랐고 시인들의 위치도 계속 달라졌으므로 관객 역시 퍼포먼스의 일부가 되었다. 색다른 느낌의 낭독회였다. 어둠 속이었지만 빛이 났고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이래서 내가 시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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