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비틀린 진심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양안다

by 하리

안개 낀 숲을 걷고 있다.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로 가득한 숲.

안개는 답답하지 않고 숲은 평온하다.

차가운 공기에 살갗이 따가운 것만 같고.

여기가 추운 건지, 마음이 추운 건지 알지 못하고.

그럼에도 영원히 이곳에 있어도 좋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

안개는 더욱 짙어지고 결국 당신은 보이지 않고.


당신이라는 세계였다.

이 세계에는 나만 있다.


뿌연 세상 속에서 앞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짙은 안갯속을 걸어간다.

내 옆에 당신이 있었지.


'옆을 보지 않아도 네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너라

고 부를 수 있는 냄새와 그림자와 숨소리 속에서'(p.26 Save The For Last)


당신은 나의 미래, 나의 바다, 나의 숲

미래를 보고, 바다를 보고, 서로를 보고,

그러나


'이름을 잃고, 장르를 잃고,

목소리를 잃고, 끝내 마음을 잃었다는 착각을 하게 될 거야 (p.28 밝은 성)


그렇게 착각이 아니라 진짜 마음을 잃고, 서로를 잃고.


당신을 이해하고 싶었다.

당신은 늘 어려우니까.


'너의 이해와 나의 이해가 겹치면

나는 네가, 너도 내가, 그런 게 가능할 것만도 같은데'(p.34 평행진입)


당신에게 특별하고 싶었다.

그래서 너의 꿈이 되고 싶었다.

당신을 나의 꿈에 가두고 싶었다.


'너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언젠가 네가 지나간 꿈이 아닌 꿈으로 특별해질 수 있다면

나는 너의 꿈이 되겠다고, 죽고 싶지 않은 이유가 되거나

죽고 싶을 때는 꿈속에서 오랫동안 다른 세계에 머물고

네가 적는 가사의 일부가 되겠다고(p.37 축하해 너의 생일을)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았다.

당신을 잊고 싶지 않았다.


'해변에서 부서지는 것들을 바라본다

포말과 어두운 하늘, 쏟아져 내리다 백사장에 닿아서야 갈라지는 빗방울

너에게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어' (p.43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하지만 이제 나는 무섭다.

사랑하는 것도, 이별하는 것도.

차라리


부서졌으면 좋겠다 너의 목소리와 표정, 마음이 동 시간에

고요하게(p.64 워터프루프)


안녕, 당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슬퍼하기만 할 뿐이다.

그저 인사만 되풀이할 뿐이다.


안녕 안녕, 같은 인사로 만나 같은 인사로 떠나는 일

포옹을 하면 두 손은 서로의 등을 감쌌고 우리는 등을

보이며 헤어지는데 평생 너와 어긋날 거야 난 그렇게 나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어 내가 너와 평행하지 못한다는 게 너무 슬프다 그런 생각을 조금은 들켰으면 했다(p.78 크로스 라이트)


우리가 평생 어긋나더라도

당신은 평생 날 잊지 못할 거야.

잔인하게도 그 마음,

영원할 거야.

비틀린 마음에서 악취가 난다.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