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복숭아, 이은규
이은규 시인의 다정한 호칭이라는 시집을 좋아한다. 어떤 시집이 좋아지면 그 시인의 시집을 찾아서 보게 되는데 시인의 신간시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사게 된다.
<무해한 복숭아>
무해하는 말도, 복숭아도 좋아하는 나로선 제목부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시인의 시집은 늘 다정하면서 무해하다. 딱딱하지도 날카롭지도 않고 부드럽고 아름답다.
아름다움도 삶도 사랑도 마무리도 어렵기만 해서 마음이 뾰족해지지만 뒷모습을 상상하며 달콤했을 저녁의 공기를 상상한다. 굳건하게 앞만 보고 살아가고 싶은데 나는 언제는 뒤를 돌아보느라 자꾸만 걸음이 느려지고 작은 돌부리에도 휘청이고 만다. 내가 사랑했던 계절은 언제였을까? 뒤돌아보면 당신의 얼굴이 보여야 할 텐데 왜 뒷모습만 보이는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고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워진 한 사람의 이름을 가만히 바라볼 뿐.
■ 그러나 나는 도무지 어렵기만 해요 아름다움도 삶도 사
랑도 마무리도, 웬일인지 그런 단어들을 떠올리면 괜히 마
음이 뾰족해집니다
(..)
우리 상상해볼까요 둥근 탁자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그 사이 달콤했을 저녁의 공기를
(..)
그러나 나는 아직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한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고, 몰랐으면 좋겠고
_ 밤의 물체 주머니
마주하며 함께 보냈던 식탁 위의 시간. 한 사람만 결석한, 지워진 안부를 수소문한다. 지워져 버린 당신을 떠올리려 해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시간은 여전히 나의 사진첩에 숨겨져 있지만 애써 찾아내지 않았다. 지나친 슬픔은 해롭지만 해 질 녘이 되면 슬퍼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겠다. 그리워서 슬퍼하는 것인지, 사랑을 잃어버린 게 슬픈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슬퍼하는 나 자신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이 한심해지고 만다.
■ 아직 해 질 녘 창가와
탁자와 우유와 나무 포크와
노을과 카스텔라와 설탕 알갱이가 있습니다만
이름이 지워진 안부를 수소문 중입니다
한 사람만 결석한 한 사람의 생일
모든 기억은 습기에 취약하고
지나친 슬픔은 몸에 해롭습니다만
하루 한 번 일용할 양식인 카스텔라를 굽습니다
창가, 해 질 녘 증후군
_ 카스텔라의 건축
당신이 보냈던 봄날을 떠올린다. 화창한 봄날의 벚꽃도, 까만 밤 벚꽃도, 이미 바람에 흩날려 초록 잎만 남은 벚꽃나무도 모든 벚꽃이 아름다웠다. 당신과 함께여서,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했기 때문에. 계절이 흐르는 대로 우리도 흘러갈 줄 알았다. 따뜻한 봄바람을 타고서.
■ 봄밤
거짓말처럼 벚꽃이 아름다웠다
가능한 일일까
_ 당인리 발전소
남겨진 한 사람이 있다. 지나간 기억들, 남겨진 한 사람, 부재, 상실, 슬픔, 이별의 이야기들이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슴을 콕콕 쑤신다. 누군가의 부재는 아프다. 누군가를 상실한다는 것은 슬프다. 아프고 슬픈 마음들이 쏟아진다. 한 사람의 마음만 계속되는 것, 납작해진 마음이 뭉클 물러지는 것, 이미 고장 난 것, 우리의 소풍에 당신만 결석하는지, 왜 오늘 마음이 무너지는지, 마음이 쿵 떨어져 지구만큼 아픈지. 텅 빈 동공에 풍경이 차올라 눈물을 쏟게 하는지.
시 한 편 한 편, 마음속에 꾹꾹 눌러쓴다.
시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시를 읽고서 당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