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감히 사랑한다고

한여름 손잡기, 권누리

by 하리


#시인의말

너를 다시 만나면 네가 있는 우주에서 깨어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 함께 있는 동안에 다 웃고, 다 울고. 너무 환한 우주 복판을 천천히 걸어 다니며, 따뜻한 밀크티와 단단한 복숭아 조각을 나눠 먹으며, 노래도 하고 춤도 추겠다고 다짐했어.



시인의 말이 좋으면 시집을 실패하는 법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제목과 표지 역시 한 몫한다. '한여름 손잡기' 라니, 한여름에 끈적끈적 더운 날 손을 잡다는 건 사랑이 동반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 아닌가. 게다가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표지가 아름답다. 김지민 작가의 <물보라>라는 작품이다.


여름과 바다, 그리고 시. 읽지 않고도 이 시집이 좋아져 버렸다.


시집 안에는 여름이 가득했고 빛이 있었다.

빛이 내게 왔고 빛은 사랑이 되었다.

역시 사랑에 제법 재능이 있으시네요?


미안해하는 나를 상상하면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니?

물으면 나는 잘 모르겠고요
하지만 사랑에는 제법 재능이 있습니다
#하트*어택


빛은 물결처럼 들이치고 죽음도 깨울 수 있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니면 무언지. 하지만 아프고 싶지 않아도 자주 슬펐고

다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지.

그것도 사랑.

세계의 모든 이분법과 불온한 신뢰와 성실한 불신으로 만들어진 세상은

너무나 투명해서,

그래서 단단한 그 마음을 숲에 유기해 둔 걸까.


블라인드를 바닥까지 길게 내려도
물결처럼 들이치는 빛
이런 눈부심은 지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죽음도
깨울 수 있겠지
#여름모빌


우리는 아프고 싶지 않은 사람들 치고
너무 자주 슬펐지
다치치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어?
#이밖에알아내지못한모든죄



반사와 난반사의 기록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너희는 세계의 모든 이분법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
각하는구나 너희의 불온한 신뢰와 성실한 불신으로 만들
어진 세상은 너무 투명하고 견고해서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었지
원피스의 밑단이 우리 몸 어디를 가만가만 스칠 때
불어오는 바람
목적지를 위한 결정은 저 멀리 유리 숲에 유기해 두었어
요 버려두고 온 단단한 마음이 여기에서도 아주 잘 보이
고요
우리도 모르는 우리의 오답을 어떻게 아니?
#도로시커버리지


최악을 향해 가더라도, 그곳에는 우리가 있고 최악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더 나빠질 것도 없으므로.

그러니 사랑은 사랑이라고.

감히 사랑한다고 말했다.

감히.


그리하여 감히 당신을 사랑하여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줄 알았으나

당신의 부재로 인해 최악을 경험한다.


함부로 먹은 마음은 이렇게 나를 나락을 떨어뜨리고

그럼에도 감히 말했던 사랑은 어쩌자고 떨어지지 않는지




그래도 최악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구나 그렇게 말했을 때
누군가,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이야기했고, 아니야, 우리는
이미 최악으로 와 있잖아,
그런데 여기보다 더 먼 곳이 있으면 어쩌지
#나를사랑하는나의신




나는 언제나 감히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언젠가 감히 사랑한다고 말했다
#전시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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