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계획형 인간이 되고 싶지만

아니어도 괜찮잖아

by 하리


#나의무해한글쓰기



연말에 다이어리를 사들이면서 새해가 다가오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이 산더미 같은 다이어리를 어떻게 하지? 각각 다이어리마다 용도를 정하며 새해를 기다렸다. 새해가 기쁘지도 설레지도 않았다. 극도의 스트레스와 함께 강박이 목을 옥죄는 것만 같았지만 해내고 싶다는 마음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다이어리 용도를 구구절절 적어놓았고 매일 무언가를 써야 했고 읽어야 했고 업로드해야 했다.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스타일이 아닌 나에게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일주일 정도는 여차저차 기록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동안 필사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책을 읽고 필사하는 시간은 좋아한다. 그래서 몇몇 다이어리는 무리 없이 쓰기도 했다. 그러다 나만의 글쓰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글을 쓰는 일은 굉장한 집중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했고 그러다 보니 일상이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다이어리를 쓰고 글을 쓰는 일, 이 모든 기록하는 생활이 즐겁지 않았다.

지금 누구를 위해 이 모든 기록을 하고 있는 거야? 누군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 이렇게 강박적으로 기록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취해있었나? 그게 진짜 나라고 할 수 있나?

나는 매일 압박을 받으며 기록했던 일들을 멈추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 기록하기로 했다.
자꾸만 2%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더욱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것이 욕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계획형 인간이 되고 싶지만 계획형 인간이 될 수 없다. 규격에 딱 맞는 아름다운 표지로 나를 꾸미고 매일, 매주, 매월, 매년 한결같이 꾸준한 인간으로 조립하고 싶었을 뿐이다.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 지적이고 진중한 모습, 감각적이고 확고한 취향을 가진 나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추구하는 나의 모습은 그저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다. 그냥 나는 나일뿐이다. 나는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을 때 해야 즐겁고 행복해지는 인간이었다. 차분할 때도 있겠지만 깔깔 웃으며 즐겁게 수다 떠는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 게 나다. 지적이고 싶어서 책을 읽지만 책 읽는 일로 잘난 척하는 인간을 꼴 보기 싫어하는 것도 나다. 감각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확고한 취향과 나이와 함께 얻은 고집도 두둑한 사람, 그게 나였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내가 추구하는 내가 되기 위해 나는 부단히 애를 쓰며 살았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내가 바라는 완벽한 내가 될 수는 없겠지. 조금 모자란 나도 좋아하다 보면 그 모습도 사랑스러워 보이겠지. 그러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면 되겠지.

혹시 내가 부족하지 않을까, 추구미와 도달미가 전혀 다른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계속하면 된다고, 남들이 별로라고 해도 나 자신만큼 그러지 말자고.

내가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으니까 당신에게 내가 먼저 한다. 가장 먼저 듣는 것은 나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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