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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Jun 29. 2024

048. 장마 시작

우울의 시간을 즐겨야지

주절주절
말을 낮은 목소리로 계속하는 모양.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능소화 꽃이 툭툭 떨어진다

잔잔한 팝송이 흐르고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설거지하는 물 흐르는 소리
가만히 창밖을 바라본다

물얼룩으로 더러운 창
폭우가 쏟아져야 창이 깨끗해질까
낡은 붉은 벽돌의 양옥집
그 앞으로 보이는 분홍색 꽃은 뭐지?
장미인가?
딸랑, 풍경소리
손님이 들어온다
뽀득뽀득 발걸음소리
올라오지 마

사각사각 필사하다 말고
가만히 가만히
장마가 온다는데
폭우가 쏟아지려나
비는 좋아하는데
눅눅한 건 싫어
눅눅한 공기
습도 99%
끈적끈적
냄새를 견딜 수 없어

비가 내리면
마음속 어딘가 무너지는 방이 있다
넌 왜 그렇게 항상 우울한데?
지긋지긋해

툭툭 계속 떨어지는 능소화
바닥은 능소화 무덤이 되고
나의 여름은 떨어지는 일뿐

좋은 말만 해
(믿지는 않지만)
해결책을 원한 건 아니야
(그냥 그렇다고)
자책은 나 혼자로 충분하니까
(지적은 하지 마)

오늘은 우울하고
내일은 기쁠 거야
내일은 기쁘지만
모래는 슬플 거야
제정신이 아니라고?
어떻게 알았지?
제정신으로 살았다면
진작에 죽어버렸을걸?

정신 나간 소리나 하고
그게 나야
부러진 조언을 하고
그것도 나야
다정하고 따뜻해 보였니?
좋아하니까 그랬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길 바라니?
그래놓고
은근히 돌려 말하는 사람이
누구야.
(나야)


비가 그치지 않는다.
말 돌리기는 나의 특기.
대답 없음이 대답이지.

주절주절
내 머릿속을 네가 알아?
징글징글
나도 나를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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