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6주 동안 나를 쉬게 해 줄 침대와 게스트룸.
윌리와 켄이 내 방에 모기장을 쳐주었다.
흙벽과 흙바닥으로 다져진 침대의 낡은 이불 위에 올려진 짐들이 아프리카의 향기를 묻히기 시작하고 있다.
방 앞에는 수세식 화장실과 온수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샤워기가 있었다. 온수가 나오는 샤워기는 한 번도 작동된 적이 없고, 부뚜막에서 더운물을 양동이에 받아 와서 거의 물만 묻히는 샤워를 했을 뿐. 게다가 마지막 한 주는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밖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식구들이 먹을 우갈리를 만드는 장작불을 때는 정겨운 시골 부엌. 부뚜막에 올려진 큰 솥에 물을 끓이다가 옥수수가루를 넣어 젓다 보면 빵이나 떡처럼 뭉쳐지게 된다. '우갈리'라고 부르는 그것을 접시에 한 덩어리 푹 담아서 주면 먹는 사람이 맨손으로 그것을 조금씩 떼어 꾹꾹 주물러서 곁들인 반찬과 함께 먹는다. 수저나 포크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먹어야 하기에 식사 전에는 꼭 손을 씻어야 한다.
첫날 저녁 나를 환대해 주던 식구들 중 유독 붙임성 있던 두 아이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집에 일하러 와 있던 사람들이었다. 일자리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서 한 달에 감자 한 포대 정도 임금만 받아도 입주 일꾼이 된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나이로비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는 둘째 딸 글래디스가 분주하게 주방일을 하는 동안 그녀의 어린 아기 따샤가 귀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글래디스와 켄이 내 휴대폰으로 와이파이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심카드와 데이터쿠폰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케냐는 모바일 결제시스템이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은행을 찾아다니기 불편한 지역 여건과 현금을 가지고 다닐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피하기에 아주 유용하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하루 1기가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M-PESA의 사파리콤 데이터쿠폰을 1달러씩 구입해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5기가짜리 번들 쿠폰을 사용하면서 지냈다. 온라인 게임을 하면 순식간에 데이터가 소진되어버렸기때문에 꼭 필요한 연락과 기록 용도로만 아껴서 데이터를 사용했다.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며 시작한 케냐행이었다.
"그런 거 텔레비전에서만 봤는데 네가 간다고 하니 참 잘되었다. 가서 덕 많이 쌓고 와라"
하시던 아버지와 엄마의 응원.
10년 이상 근무한 교사에게 주어지는 무급의 안식년 휴직 기간 동안 기어이 캄보디아와 아프리카행을 택한 나의 억척스러움을 받아주고 기다려 준 남편과 아들, 딸.
역시나 응원해 주고 부러워해 준 가족 친지 동료 동기 친구들.
왜 캄보디아였나?
특수교사가 직업이라는 것은 장애인을 위한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는다는 의미이므로 중증 장애인 시설에서 한 달 정도는 무급의 봉사활동을 하면서 손톱만큼의 부채감을 덜어보고 싶었다.
장애인을 돌보는 일에 나름의 고집스러움이 생겼으니 말이 통하지 않아서 저절로 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고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캄보디아 장애인 시설의 시스템 안에서 온전히 기관과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일만 하면 되는 시간을 보냈다.
왜 아프리카였나?
왜 케냐였나?
한동안 유행처럼, 열병처럼 소외되고 위험하고 낙후된 지역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헌신이 세계를 휩쓸던 시절을 보냈다. 유명 연예인과 종교단체와 자선단체들의 구호활동에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때, 나 또한 기꺼이 그 활동에 공감하며 후원을 하던 사람 중 한 명 이었다.
내 후원의 결과를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은 한조각도 없었지만 어쩐지 내 마음의 정착지점을 보고 싶었다.
한 때 세계를 휩쓸던 '아름다웠던' 마음들이 흐르고 흘러서 도달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면 어떤 곳일까? 그게 궁금했다.
그래도 아직도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분쟁지역이나 위험지역 또는 지극히 빈곤한 지역은 피해서 혼자만의 아프리카를 보고 싶었기에 비교적 안전이 보장되는 경로를 통해서 케냐에서의 교육봉사 활동을 준비했다.
수렵채집민들의 '공격' 유전자는 이 시기 이 땅에서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나 같은 유약하고 나이 든 중년 후반의 여성도 훌쩍 아프리카 산골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시대.
공격하고 빼앗고 영토 확장하던 시기에 빛나던 사람들의 설자리에 나 같은 사람의 경험 확장을 위해 배려하고 안내하고, 때로는 인내하며 공격 본능은 슬쩍 숨겨 넣을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총 균 쇠'와 '호모 사피엔스'를 읽고 이 땅 아프리카, 아프리카 사람들, 나의 가족, 역사 속의 사람들을 번갈아 떠올려가며 사람들의 흔적과 숨결을 느껴볼 기대에 부풀었던 아프리카 둘째 날 아침.
고산지대의 케리코 마을은 초가을 정도의 선선한 날씨였다. 밤늦은 시간에 밖에 있으려면 오리털외투가 필요할 정도였고, 비 오는 날에는 전기방석을 꺼내 침대에 깔아놓고 추운 몸을 녹이기도 하고 그랬다.
2018년 8월 한국의 여름은 섭씨 30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라 하니까 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문부터 집 뒤편 너른 마당에 차나무가 심겨있고, 소 우리도 있고, 케일과 바나나가 심긴 밭이 있다. 식사 준비를 할 때면 케일 잎을 따다가 잘게 썰어 볶아서 옥수수가루로 만든 우갈리나 밥과 함께 먹는다. 녹색바나나도 익혀서 밥과 곁들여 먹는데 찐 고구마 맛이 난다. 밥과 빨래, 청소를 담당하는 여자 일꾼 한 명과 농장일을 하는 남자 일꾼 한 명을 포함해서 여러 명이 집안에 모였다 흩어졌다 하고 있었다.
킵시기스족 공동체, 죠슈아 가족은 이 지역에 있는 학교 운영을 담당하며 비교적 규모 있는 살림을 하는 편이었다. 새벽에 농장 일꾼이 젖소에게서 우유를 짜 오면 차 잎과 함께 끓여 밀크티를 만들고 곡식 가루를 끓여 포리지를 만들었다. 죠슈아 부인이 나에게 '소는 몇 마리 키우는가?' 묻기에 소는 키우지 않는다고 답했을 때 그녀는 나에게 세상 측은한 표정을 지어 보였더랬다. 소를 키우지 않으면 밀크티는 꿈도 못 꾸고 포리지는 맹물로 끓여야 하니, 참 딱하긴 할 일 같았다.
간밤에 부뚜막에 있던 고양이와 인사를 했고, 이튿날 막 새끼를 낳은 순한 누렁이와 인사를 했다.
케냐에서 무얼 할까? 출발 전 주어진 '다섯 가지 하고픈 일을 정해 보기' 미션에 대한 나의 답은
"모두 다 하쿠나 마타타"였다.
숨쉬기
물 마시기
흔한 과일 먹기
흔한 동물 보기
말 안 통해도 농담하며 웃기
실수하기
감동하기
서늘하게 두려워도 하고
알싸하게 아파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날 때도
울 때도 있고
실망도 하겠지만
결론은 늘 따뜻한 행복으로...
하쿠나 마타타
건강하고 풍요로운 커뮤니티를 꿈꾸는 사람들과 어울려 같은 꿈을 꾸는 나를 전하고, 내 세계 밖의 세상 그 무심한 감탄스러움을 담아 오기.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돌아보니 나는 두 번째 날 아침에 모든 미션을 깨끗이 완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