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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테 케냐

에테오피아 항공 302편(ET302)

by 미 지

2018년 8월 4일

Jomo Kenyatta 공항에서 내린 다음 가방 검색이 나른하게 오랫동안 이어졌기에 세 남자는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을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할 때 공항 요원이 케냐에 온 이유를 묻기에 나는 내리 깐 눈에 작은 목소리로 고아원과 학교 볼런티어를 위해서라고 대답했지만, 검색요원의 굳은 입술과 어쩐지 자랑스러움이 묻어있는 나의 목소리를 듣는 내 내면의 소리는 동시에 참 부끄러운 말을 하고 있구나 하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공항에서는 환경 문제 때문에 비닐류, 특히 1회용 비닐봉지는 가지고 갈 수 없다며 입국자들의 짐 검색을 꼼꼼하고 지루하게 오랫동안 했다.


인천에서 홍콩, 아디스아바바를 거쳐서 케냐행 비행기를 타는 동안 환승장마다 검은 피부색의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으므로 아프리카를 향하는 초행길의 나는 살짝 당황하고 있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조모 케냐타로 오는 비행기에서는 백인과 황인의 수가 모두 합해 열 손가락을 헤아릴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입국 수속을 하는 제법 긴 시간 동안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의 걸러지지 않는 나를 향한 '뚫어져라!' 시선 덕분에 긴 입국 수속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몰랐는데 밖에서 기다리던 세 사람은 무언가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오전 11시가 채 되지 않아 케냐에 도착했으나 입국수속이 다 끝나고 나니 12시 40분이 지나고 있었다.

드디어 공항 주차장에서 윌리, 켄, 죠셉 세 남자의 픽업을 받았다.

죠셉, 죠슈아, 기드온. 이후 이곳에서 만나게 될 성경 속의 이름들이 살짝 반갑고 나름 위로가 되었다는 뒤늦은 고백을 해 본다.

켄에게서 나는 강한 체취에 잠깐 당황하다가, 이분들에게는 나의 냄새도 어쩌면 낯설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얼른 냄새에 적응하고 표정관리를 시작했다.


내가 머물기로 한 케리코마을까지는 네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드라이빙을 시작하기 전 홈스테이 호스트 죠슈아의 큰사위인 죠셉의 집에 들렀다. 벽걸이 TV와 커다란 생수통과 여러 개의 종이박스가 집 공간의 여백마다 놓여있었다. 아마도 죠셉의 직업과 관련된 물건들을 쌓아둔 것 같았다.


콩과 볶은 야채를 곁들인 밥이 간결하게 플레이팅 된 첫 음식이었다. 우리나라의 데친 나물과 꼭 같은 맛이 나는 야채는 잘게 썬 케일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나이로비 외곽에 있는 평범한 가정집에서 케냐에서의 첫 식사를 마친 뒤 죠셉과 미리카의 배웅을 받으며 켄, 윌리와 함께 집을 나서서 세 시간 정도 더 차를 달려 도착하게 될 곳은 Kericho의 Mogogossik 교차로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있는 키모리마을 죠슈아의 시골 주택이다.




윌리는 무척 점잖으면서 귀여웠다. 상냥한 켄은 어쩐지 잘 교육받은 젊고 예의 바른 상인의 느낌으로 틈날 때마다 새록새록 다듬어져 가는 상인의 면모(때로는 실망스러움을 감추기 힘들었던)를 보여주었기에 50여 일의 동행이 끝날 즈음 난 그에게 '앞으로 넌 유명해질 거고, 부자가 될 거야' 하는 예언을 해버리게 되었다.



이스라엘에서 모잠비크까지 9600킬로미터로 연결되어 있다는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뷰포인트에서 보이는 풍경. 건강한 대지가 끝없이 펼쳐져있었다. 들, 산, 강, 길의 사람들과 동물들, 식물들이 복잡한 설명 필요 없이 그저 어우러져 지내면 되는 곳. 사는 이야기는 어디서나 비슷비슷할 것이기에 감탄도 기대도 접고 6주간의 (태풍으로 인해 홍콩 공항이 폐쇄되는 바람에 1주를 더 묶게 되어 7주가 될) 아프리카 여행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


비행과 낯선 시작이라는 긴장감 탓에 눈길을 끄는 기념품 가게의 기막힌 아프리카 수제 악기를 사는 일은 돌아가는 길에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돌아가는 날엔 또 다른 느낌으로 낯설게 보이게 되어서 결국 그곳에서 살 수 있었던 목재 타악기는 사지 못했다. 한 달 반이 지난 뒤에는 좀 더 안목 있게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게 될 거라는 기대로 구입을 미루었던 것이지만 다시 그 물건들을 보게 되었을 때는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신선함과 조밀한 수공의 흔적에 대한 감동은 이미 없어져버린 채 오랫동안 팔리지 않고 진열되어 있어서 때가 탄 관광지 상품으로만 보였다는 것이 그 낯섦의 정체였다.


날씬하고 큰 키의 남자아이들이 무리 지어 차를 향해 달려와 구운 옥수수를 파는 길을 지나고, 무리 지은 여성들이 차를 향해 달려와 콩 봉지를 내밀며 사달라고 조르는 길을 지나고, 원숭이들이 게으르게 누워 차에서 던져질 먹이를 기다리는 길을 지나고. 윌리가 사 준 구운 옥수수 한 조각을 원숭이들에게 던져주고 그러면서 목적지로 향했다.




인천공항에서 홍콩까지는 비상구 옆자리를 배정받아 편안하게 비행을 시작했다. 옆자리에 앉은 씩씩한 아가씨는 환승을 위해 잠깐 거쳐가는 홍콩 입국심사표에 정기 편인지 부정기편인지 체크를 못하고 있는 나를 도와주며 부정기편은 강제출국 같은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일 때 체크하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내 목적지가 케냐라는 걸 알고는 깜짝 놀라며 작가인지 물으면서 자기가 이제까지 본 사람 중 가장 멀리 가는 사람이라고 감탄스럽게 말해주었다.


홍콩에서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한 후 두 시간 정도 환승을 기다리다가 케냐행 비행기 탑승 시작 알림과 거의 동시에 첫 순서로 탑승을 했다.


좌석 위와 포켓 속에 담요와 어메니티, 이어폰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뒤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소란함과 어메니티 사냥 장면을 볼 수 있었던 신비로웠던 에티오피아항공 302편(ET302).


이듬해 2019년 3월 10일 이 비행기의 추락사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8월이었으니까 이 항공편이 보잉 737 기종으로 바뀌기 전이긴 해도 같은 편명으로 아디스아바바와 케냐를 오가던 항공기였기에 추락과 사망 소식은 너무 충격적이었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삼가 고인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케냐행 항공기 탑승 후 나의 지정 좌석에 앉아 뒤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탑승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느낌이 조금 낯설었다. 내 옆 한 칸 옆으로 남자 한 명이 앉아있었다. 잠시 뒤 여자 한 명이 와서 자기 자리라고 말했다. 남자는 얼른 일어서서 다른 곳으로 갔다. 그런데 여기저기 그런 사람들이 보이는 것이었다. 자리를 잘 못 찾는 건 아마 비행기를 처음 타 보는 거라서 그런 건가? 싶었는데... 사람들이 탑승을 다 하고 크루들이 분주하게 기내를 돌아다니면서 출발 전 승객들 자리 정돈을 도와주는 중에 여기저기서 '담요가 없다' 거나 '이어폰이 없다'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 이게 무슨 일일까? 내가 들어오면서 찍은 사진엔 모든 자리마다 담요와 어메니티가 놓여 있었는데..... 하다가... 좀 전의 그 광경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자리를 잘 못 찾는 게 아니라 그분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두툼한 그들의 재킷 주머니에 담요와 어메니티를 담았던 거였다.


아프리카의 어떤 골프장에서는 캐디가 플레이어의 지갑을 흔적 없이 가져가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한 남자 캐디가 플레이어의 골프채를 바지 사이에 감추고 시치미를 떼다 들켜서 죽도록 맞는 걸 보았다는 어느 골퍼의 경험담이 떠올랐다.


여기저기서 담요와 어메니티가 없다고 하면 크루들은 또 아무 말 없이 그들에게 새 담요와 어메니티를 가져다주었다. 아마 나도 늦게 탑승을 했더라면 담요와 어메니티 같은 걸 부실하게 제공하는 항공사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들에게 어메니티 사냥꾼이라는 이름을 붙여버렸다.


죠슈아의 집에 도착해서 그 많은 식구들의 까맣게 빛나는 눈을 보는 순간, 난 그 어메니티 사냥꾼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모든 물자는 귀하고, 없는 것이 불행이 되지는 않지만 그것을 보면 좋아할 식구들의 눈빛이 가슴속에 있는데, 손 뻗치면 닿는 곳에 있는 칫솔, 치약, 담요, 슬리퍼. 또 달라고 하면 말없이 가져다주는 그 물건들을 챙길 수 있을 만큼 챙겨다 주는 그 '사냥꾼들'의 마음을 응원하게 되어버렸다. 그들의 마음만!




아프리카를 여행하기 전 몇 개의 사이트에서 아프리카 여행 시의 주의사항과 마음가짐에 대해 참고할 것들을 찾아 읽었었다.


This is Africa!


한 사이트에서 이 말에 대해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당신이 보기에 상당히 비위생적이고 불편하다. 그곳에서 당신은 때로 신뢰하기 힘든 사람들 또는 상황들로 인해 위험에 빠지기도 하는 등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에 맞닥뜨릴 때 쓰는 말이 그것이다.

This is Africa!


그러나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아프리카로 와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어떤 상황에도 그들의 삶을 깎아내리지 말아라.


아이들이 어릴 때 TV에서 '소피야 어쩌면 좋으냐'라는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재미있는 내용 전개에 호기심이 생겨서 당시 3부작으로 출간되어 있던 책을 사서 읽었다. '소공녀'나 '소공자'와 비슷한 스토리라인이었지만 서술이 조금 새로워서 재미있게 읽던 중 '미개인'을 '개화'시키기 위한 전쟁으로 주인공 소피의 아빠가 참전하고 있는 식민지 전쟁을 표현하는 부분이 책을 읽는 나의 마음을 긁었다. 읽고 나서 바로 버린 책이 바로 그 3부작이었다.

그래서 나는 '소피야 어쩌면 좋으냐'를 읽었을 때의 당황감을 기억하면서 아프리카에서 맞닥뜨리게 될 어떠한 당황스러운 장면도 '삶의 가장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형태'로 해석해 보기로, 그래서 This is Africa! 뒤에는 언제나 How wonderful! 을 붙여보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차 안에서 스와힐리어 몇 가지를 배웠다.


하바리(반가워~)

무쑤리 (나도 반가워~)

하쿠나마타타 (문제없어)

아산테 (고마워)


입안에서 통통 튀는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단어들을 배우는 중 '아산테'라는 말을 발음할 때는 어쩐지 우아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Asante Kenya!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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