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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과 현실의 경계를 헤매게 만든 세 번째 미움의 대상

by 미 지

니 시아버지는 군인이었다. 육이오 전쟁 때 눈 알 하나를 잃어서 개 눈깔 하나를 의안으로 해 넣었지.

만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순간에 자기편으로 만드는 호방한 성품을 가지고 있으니 어디를 가나 주변에 사람들이 들끓었다.


일곱 남매 중 셋째 딸이었던 나하고 어찌어찌 혼사가 정해졌는데 어느 날 얼굴 한 번 보고 가겠다며 그가 지나던 길에 우리 집엘 들렀다. 뭐 해 줄 게 있나? 밭에 나가 오이 몇 개 따다가 무치고 호박잎 몇 장 따다 장을 지져서 밥 한 끼를 차려 줬지. 신랑 자리가 내가 음식 솜씨도 좋은 데다가 예쁘기까지 하다면서 흡족해했다더라.


결혼식을 치르고, 직업군인인 남편이 부산 어딘가로 발령을 받아 떨어져 있는데 집안 어른들이 그러면 안 된다면서 얼른 보따리를 싸서 신랑 옆으로 가라고 하더라. 짐 보따리 몇 개 들고 남편이 사는 집으로 찾아 들어갔어. 그 집에 어린 딸 하나가 있었는데 내가 젊은 군인과 결혼한 각시라고 하며 방을 차지하고 들어앉으니 사람들이 사뭇 당황스럽게 눈 짓을 주고받더라. 아마도 그 사람 주변머리라면 결혼 안 한 총각이라며 그 집 딸을 후리고도 남았을 위인이란 걸 그때는 몰랐지. 하여간 그렇게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군 제대를 하고는 육이오 전쟁 때 다친 눈 때문에 상이군인으로 인정을 받겠다며 애를 쓰더니 기어이 상이군인이 되었다. 몇 날을 방에 틀어박혀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더니 그 시험도 붙어서 곧바로 강원도 숲을 관리하는 기관의 소장으로 들어가 앉았지. 노가 나는 자리였다. 늘 여기저기서 땔감이며 먹을거리를 가져다주더구나. 니 시아버지는 매번 서울 출장을 갈 때마다 유행하는 옷감이란 옷감은 죄 다 사 왔어. 기차를 타고 같이 서울에 갔다 오기도 했는데 가져온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서 어떤 때는 하루에 일곱 번 옷을 갈아입은 적도 있었다.


그 시절에 골프장이란 데도 가 봤는데 나는 영 재미가 없더구나.

니 시아버지가 밤마다 술집이며 노름판엘 드나들며 마작을 했다고 사람들이 일러줬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어. 집으로는 매일 장작이며 쌀이며 고기가 들어와 쌓아 둘 데가 없을 정도였다.

어느 날인가는 니 시아버지가 뇌물을 받아먹는다는 투서가 들어갔다고 하더구나. 투서를 받았으니 조사를 해야 한다면서 두 사람이 우리 집으로 왔는데 그때 대여섯 살이었던 니 신랑이 밖에서 돌미끄럼을 타고 노느라 옷 엉덩이가 몽땅 해져버린 채로 집엘 돌아왔다. 그걸 보고 조사원 두 사람이 무릎을 치더란다. 뇌물을 그렇게나 많이 받아먹는다는 사람이 제 자식 옷이 저리 해질 정도로 두지는 않았을 테니, 그 투서는 필시 모함이었을 거라며 오히려 미안해하고 위로해 주며 돌아갔다.


애 넷을 낳고 사는 동안 니 시아버지 때문에 속 끓인 건 셀 수도 없다. 니 신랑이 결혼식 전 날 밤에 다른 여자랑 바닷가를 걸었다고? 니 시아버지가 밖에다 뿌린 씨만 해도 한 트럭이 넘을 거다. 아마 바깥에 자식도 숱하게 낳았을 거다.


친정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해 주러 내려오실 때마다 셋째 사위 수완이 어찌나 좋은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두르곤 했지. 내 친정 엄마는 애를 낳고 바로 밭에 나가 밭 일을 해야 했다더라. 땡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 갓 낳은 아기를 바구니에 눕혀 나무 그늘 밑에 놓아두고 밭일을 하고 돌아왔는데 나무 그늘은 벌써 온 데 간데 없이 아기 바구니에는 땡볕이 그대로 내리 꽂히고 있었고 갓난 그 아기는 햇볕에 시뻘겋게 데워져 벌써 죽어있었는데, 그걸 보는 엄마 마음이 오히려 홀가분해졌다고 하더라. 그런 친정 엄마 신세에 비하면야 수완 좋은 남편 만나 애 씀풍씀풍 낳아 굶기지 않고 옷사치 마음껏 부리고 살면서 친척들까지 굶지 않고 살 수 있게 된 내 신세를 매번 칭찬하고는 하셨다.


어느 날 밤 부뚜막에 앉아있는데 심장이 조이고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손발이 떨리기 시작하더라. 이런 게 죽는 거구나 싶었어. 이웃집 사람이 나를 얼른 방에 옮기고 니 시아버지를 찾아가 이야기를 해서 서울에 있는 병원에 몇 달 입원해 있다가 왔다. 협심증이라고 하더라. 나는 몸도 작고 얼굴도 고와서 가는 데마다 마을 최고 미인이라고 대우를 받았다. 협심증 진단까지 받았으니 집안일을 해 줄 사람도 필요해져서 사촌 조카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집안일을 하게 했다. 두 세명 내가 데리고 있다가 혼수를 거나하게 장만해서 시집을 보내주곤 했다. 사실, 그 아이들이 집안일을 해 주는 데 이상하게 매번 짜증이 나더라.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내가 짜증을 좀 많이 부리긴 했어. 다들 시집가고 난 다음에는 나하고 연을 끊어버리더라. 내가 그렇게나 혼수를 거나하게 해 주었는데 사람 참 믿을 거 없더라.


큰아들이 군대에 가서 상급자 하고 불화하다가 어느 밤에 그만 총기 사고가 일어났다고 했다. 아직 군대에 연줄이 남아있던 니 시아버지가 다급하게 그 아들을 군 병원에 입원시키고 몇 달을 병 구완을 하며 지냈다. 다리 하나를 잃고 제대를 했어. 다행히 상이군인으로 인정을 받아서 연금을 받게 되었다. 그 아들이 마음을 못 잡고 술을 먹고 돌아다니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오면 온 집안을 들쑤셔 놓고는 했어. 곤히 자는 니 신랑을 발로 차서 깨워서는 읍내에 있는 만화방에 가서 만화책을 빌려오라고 고함을 치곤 했어. 그러면 착한 니 신랑은 단잠을 자다 일어나서는 두 말도 하지 않고 옷을 챙겨 입고 멀리 떨어진 읍내까지 밤길을 걸어가 만화책을 빌려오곤 했다.

그 아들이 오토바이를 사야겠다고 소동을 부려서 고집을 꺾지 못하고 사 주었는데 말이다, 그게 결국 그 아들 목숨을 가져가고 말았다. 교통사고가 나서 그 아들은 세상을 떴고 그 아들이 받던 연금을 부모인 내가 받고 있다.


정년퇴직을 하고 나선 지역 의원에 출마하겠다며 여기저기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느라 바쁘던 니 시아버지는 툭하면 모임에 기부금을 내기도 하고 툭하면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해서 은행에 빚을 조금 만들더구나. 칠순 잔치를 치르고 두 달 있다가 폐암 진단을 받고, 또 두 달 있다가 세상을 떴지. 그건 너도 알잖니. 나는 몸이 약하니 니 남편과 니 남편 동생과 내가 데리고 살던 내 딸이 낳은 아들 손주가 돌아가며 니 시아버지 병 구완을 했잖니. 그 아이들이 못 오는 날엔 니가 갓난 니 딸을 데리고 시아버지 병실에서 밤을 새기도 했고 말이다.

그때 그 병원 미ㅊ 간호사ㄴ*이, 나를 보고 '계모세요?' 하고 물었다며?


니 시아버지 가시던 날 말이다, 서울 보훈병원에서 강원도 우리 동네 병원으로 가시라고 한 것이 더 이상 병원에서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망선고랑 다르지 않은 거였다더라. 하여튼 고향으로 가기 위해 구급차로 옮겨 타느라 산소호흡기를 잠깐 떼어서 옮겨야 했는데, 그때 니 시아버지가 나를 보며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뭔지 아니?

"막대기 있으면 때려주고 싶다"

그게 그 천하의 나그네가 나한테 한 마지막 말이었다. 그 돌아가는 구급차 안에서 니 시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으니까 말이다.


니 신랑이 일곱 살 적 일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던 니 신랑이 기찻길에서도 멈추지 않고 자전거를 탄 채 달리다가 그만 기차하고 부딪혔다고 했다. 머리를 다쳐 병원에 실려가서 한 달을 넘게 입원을 했는데 병원 의사가 아마 못 깨어날 거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더구나. 나는 집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선 늘 하던 화장을 곱게 하고 예쁜 옷을 꺼내 입고 병원에 가서 누워있는 니 신랑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는데, 이웃집 아저씨가 '그 엄마, 계모지?' 했다고 하더라.


니 시아버지도 세상을 뜨고 이제 신경 쓸 것 없이 남편 연금과 아들 연금을 내가 받아서 마음 편히 돈 쓸 일만 남았는데 내가 그만 위암에 걸리고 말았다. 암이 말이다, 무슨 하찮은 병이 아니지 않나? 내가 그 암환자란 말이다. 나 같은 사람은 천년만년을 살아야 하는 걸 너는 모르느냐? 니 남편은 어떻게든 나를 살려보겠다며 큰 병원에 용한 의사를 백방으로 알아보며 다니고 있다.

너는 나한테 어떻게 해 주려느냐?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며느리들이 예전 같지가 않아서 옛날에는 없던 일이 생기고 있다. 세상이 미쳤어."

"며느리들이? 예전에? 어떻게 했는데?"

"옛날에는 시부모가 병에 걸리면 며느리가 허벅지 살을 떼어 삶아 먹여 병을 낫게 했잖아. 책도 안 읽냐? 너는? 며느리들이 예전 같지가 않아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한때는 남편의 그런 말들이 그저 속상한 마음에 농담인 듯 과장인 듯 그냥 하는 말이라고 믿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알았다. 이 남자와 그의 어머니는 정말로 당신이 암에 걸려서 낫지 못하는 이유가 '며느리'가 옛날에 하던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을.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권해도 그들은 알려진 부작용을 감당하기 싫으니 독한 항암치료 없이 암을 낫게 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병원에서도 더 이상의 치료를 할 수가 없으니 그만 오시라한 다음이었다.


나는 기어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자, 잘 알겠어. 이제 내가 '네 엄마'가 암에 걸린 것을 낫게 하려면 '며느리'의 허벅지 살이 필요하다 하니 지금 당장 내 허벅지 살을 도려내서 삶아 드리겠어. 그런데 말이지, 내 허벅지 살을 먹고도 네 엄마가 돌아가신다면 말이지, 그때는 '네'가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그는 고개를 숙이며 눈에 빛을 가렸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옛날에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오래 살지는 않았구나...."




사르트르는 평소에 "인간은 스스로 자기의 존재를 결정한다. 인간은 신과 상관없이 존재한다. 인간은, 자기가 죽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인지하는 것이 죽음이고, 죽음과 그 뒤에 대해서는 인간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일종의 사건에 불과한 죽음으로부터 인간은 자유로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사르트르는 노년에 폐수종이라는 병에 걸렸다. 그는 자신이 곧 맞이하게 될 죽음을 상당히 두려워했기에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린 의사에게 욕을 하면서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그의 이런 발악은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병원 측은 인생의 철학을 정립한 노학자이기에 담담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줄 알았는데, 보통 사람보다 더 크게 반항하는 사르트르의 모습에 몹시 당황했고 그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면회를 제한하며 그 모습이 밖으로 알려지지 않도록 했단다. 얼마 후에 사르트르는 죽었고 죽음 앞에서 보인 그의 반응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매우 실망하고 의아해했다. 인간의 선한 의지와 자긍심을 주창한 대철학자가 누구나 겪는 죽음을 그토록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한 지방 신문 기자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심판의 하나님을 만날 사실이 사르트르를 공포로 몰아넣어 그로 죽음을 그토록 거부하게 했다”라고 말했다.

사실은, 죽음을 대하는 위대한 철학자인 사르트르의 모습이 나로서도 의아하기 그지없었다.

나이가 들어 중병에 걸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 틀림이 없겠지만 그 죽음을 피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어딘가에 분명히 있는데 그 방법을 찾아오지 못하는 '며느리'를 두었다는 사실로 인해 시어머니와 그의 아들이 불행해하고 있는 바보스러운 그 상황 앞에서 나는 또 한참을 길을 잃을 뻔했다. 그 원망이 진짜인지, 그 해결법이 진짜라고 정말로 믿고 있는 건지 여러 번을 묻고 싶었으나 '옛날에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오래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말을 커다란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내뱉는 그의 음성을 들으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여기까지!라고 선언해도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가.






나는 한 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각각의 감각 공유 시스템에 오류가 생긴 복제인간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상상 속에 세상 모든 사람들을 포함시키는 엄청난 장난은 내 몫이 아니었다. 마르셀 에메처럼 육만 칠천의 복제인간을 다루는 것도 내 능력 한참 밖의 일이므로 그저 나는 나와 나의 어머니와 나의 시어머니에서 출발하는 세 사람의 고장 난 감각 공유 스위치를 찾아보고 싶어졌기에 나도, 나의 어머니도, 나의 시어머니도 나는 '사빈 씨'라고 불러보기로 했다.


그렇게 불러보기 시작한 다음, 조금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알 수 있었다.


단지 삶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사르트르가 죽음 앞에서 그랬던 것 처럼 나의 어머니도, 나의 시어머니도, 나 조차도 사랑하고 있는 것이 '삶' 자체라는 것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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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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