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 엄마가, 아직 우리가 한 집에서 같이 살 때였으니까 10년도 넘었을 때였다. 니들 엄마가 복숭아를 여간 좋아하지 않았던? 어느 날 먹었던 복숭아가 어찌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니들 엄마가 그 씨앗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옥상에 있는 화분에 던져두었더랬다. 그게 이번 봄에 싹을 틔우더니 어마어마하게 자라고 있더구나."
어린 시절, 늦은 여름의 어느 맑았던 밤이었다. 긴 여름 해가 드디어 지고 늦게 모인 식구들이 이웃에 살던 고모들까지 함께 모여 저녁을 먹고 난 후 마당으로 길게 전깃줄을 드리워서 엉성하게 켜 진 전구불 하나에 의지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밤이었다. 아직 어렸던 우리 남매 셋과 나이가 엇비슷했던 고종 사촌 셋, 고모 내외와 아직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고 있던 고모 둘과 이모까지 열서넛의 대가족이 모여 화기애애했던 한여름 밤의 수다는 좀처럼 마무리될 기색이 없었다. 때마침 집 밖 골목에서 행상으로 복숭아를 팔던 이웃이 다 못 팔고 돌아온 복숭아를 엄마는 놓치지 않고 달려 나가서 싸게 살 수 있었다. 복숭아 한 바구니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집안으로 들어온 엄마는 수돗물을 틀어놓고 싹싹 씻어서 소쿠리째 마당에 있던 평상 위에 올려놓았다.
설풋한 어둠, 더위 끝의 선선한 바람, 모기향 냄새 사이로 달짝지근한 복숭아 향기가 짙게 올라오면서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여름의 추억을 예고하던 순간이었다. 때맞추어 흔하던 정전이 되어버렸으니 부랴부랴 마루 끝에 상시 대비용으로 준비해 둔 양초를 켜면서 저마다 복숭아 하나씩을 손에 집어 들고 커다랗게 한 입을 베어 물기 직전에, 평소에도 늘 장난스럽고 유쾌한 말로 가족들을 웃게 만들고는 하던 큰고모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거 알아? 복숭아는 말이야, 불을 끄고 먹어야 하는 거야! 맞춤 맞게 불도 나갔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어서 우리 여섯 명의 어린이들이 어스름 불빛 사이로 큰고모 얼굴의 눈을 찾아 뚫어져라 보고 있을 때, 엄마가 그 옆에서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거들었다.
"맞고 말고! 맛있는 복숭아는 원래 벌레가 제일 먼저 맛을 알아보거든. 복숭아를 먹다가 벌레 몇 마리가 나오면 징그러운지 알아? 반 마리야, 반 마리... 하하하"
우리 여섯 어린아이들은 도무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농약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배추를 다듬을 때에도 애벌레가 툭툭 튀어 나오고, 파를 다듬을 때도 와다다 모습을 드러내는 벌레들 때문에 엄마와 고모들이 식재료를 다듬다가 화들짝 놀라서 '어머니!' 소리를 치며 한 길은 뛰어 나갔다가 다시 부엌으로 돌아오곤 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그날 밤 먹은 복숭아는 아마 내 기억에 가장 맛있고 향기로웠다. 어둠 속에서 한 잎 베어 문 복숭아 과육과 씨앗 사이로 벌레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왁자지껄 수다를 떨며 먹었던 그 복숭아의 추억이 두고두고 내가 복숭아를 좋아하는 이유가 되었다.
아마, 엄마도 그러했으리라.
밖에 나가면 아직까지는 '새댁'으로 불리던, 가난한 동네일망정 새로 지은 집을 장만해서 시댁 동생들과 친정 동생까지 함께 모여 사는 서울살이를 시작한, 아직 세상이 아름다웠던 시절의 우리 엄마.
그 엄마가 그 맛있는 복숭아를 먹고 나서 나온 그 씨앗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옥상으로 가져가 화분에 던져둘 때 엄마의 기억에도 나의 기억과 같은 수십 년 전의 그 여름밤이 있었을 것이었다.
"그중 제일 튼튼한 아이로 가지고 왔다. 텃밭 구석에 한 번 심어보자꾸나!"
작은 시골집의 작은 마당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서서 아버지 집에서 가져온 곡괭이로 땅을 파면서 아버지는 계속 엄마와 엄마의 복숭아 이야기를 했다.
"십 년이 넘었어, 십 년이. 니들 엄마가 그날 그 복숭아를 얼마나 맛있어했는지... 그게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싹이 틀 줄 누가 알았겠니?"
없는 힘을 다 끌어올려서 겨우겨우 30센티 남짓 복숭아나무뿌리를 심을 만큼의 구덩이를 파 낸 구십 살의 아버지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곡괭이를 땅에 내려놓았다.
나는 구덩이에 물을 한 대야 붓고 난 다음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화분 흙까지 듬뿍 떠올려서 꼼꼼하게 신문지에 말아 촉촉하게 물을 뿌리고 나서 비닐봉지로 여러 번 덧쌓은 복숭아나무 모종을 조심스럽게 꺼내서 그 구덩이 위에 올리고 흙을 채워가며 심기를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나무를 심은 땅을 꾹꾹 밟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잘 살지 모르겠지만, 잘 살아난다면 서너 해쯤 뒤에 좋은 복숭아 대목을 골라다가 접을 붙여줘야 할 거다. 이대로는 개복숭아밖에 안 되니까 말이다."
"그래야 하는 거겠죠? 그렇지만 저는... 그냥 둘래요. 자기 마음대로 쑥쑥 눈치 보지 말고 자라서 자기가 맺을 수 있는 열매를 맺으면 될 것도 같아서요..."
난 말끝을 흐렸고, 아버지 역시 그러했다.
좋은 열매로 엄마에게 왔던 복숭아. 그 좋은 복숭아 씨앗을 땅에 심는다면 역시 좋은 복숭아나무가 되어 자라도 좋을 텐데 왜 그 좋은 열매로 온 복숭아의 씨앗은 태생의 개복숭아 유전자로 되돌아가버리고 마는 걸까? 상처를 내어 접을 붙여 생장점과 성장점이 제대로 이식 완료되어선 좋은 열매의 복숭아로 남아 대대손손 이어가도 좋을 것만 같은데 도대체 왜 그 세월과 노력들을 다 수포로 돌려버리고 씨앗으로 남은 복숭아의 유전자는 접붙이기 이전, 원류 그대로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버려서는 새로 싹을 틔워 좋은 나무로 자라기 위해 똑같은 고통과 똑같은 인고의 시간들이 필요해지게 해 버리는 걸까?
세상이 아직 아름다웠던 시절의 엄마와의 기억으로 도돌이표를 찍고 여러 번을 돌아갔다 오곤 한다.
그 시절, 미숙하지만 아름다웠던 그 상태 그대로 세상에 접붙이기를 시도했던 그날 밤 열서너 명의 내 기억 속 사람들은 모두 그 아름다웠던 세상에 접붙여 살아가기에 실패해 버린 것이었을까?
요행히 그 행복의 순간에 접붙이기가 성공했다 치자. 여전히 그 좋은 열매의 대물림은 불가능한 상태로 대대손손 이어져내려 가게 되었을까? 선대부터의 유전자가 늘 그런 방식으로 반복해 왔던 익숙한 롤백을 해 버리면서 말이다.
'개복숭아로 태어나 평생을 개복숭아로 살다가 미련 없이 가는 것도 괜찮은 일 일 것 같아요. 아끼지 않고 시간을 살고, 눈치 보지 않고 공간을 넓히고, 하고 싶은 만큼 양껏 살면서 작고, 떫고, 볼품없을 개복숭아 열매일망정 해마다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어보려고요. 아버지와 엄마가 심어서 이 땅에 옮겨 준 이 나무의 모습 그대로요.'
나는 가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개복숭아 나무 앞에 서 있고는 한다.
여름 한 철만의 시간만으로도 엄청난 기세로 무성하게 자라 오르고 여러 개의 곁가지를 만들어낸 나무. 그 줄기 몇 가닥을 전정가위로 잘라내면서. 그래도 어쩌면 괜찮은 대목을 골라 접붙이기를 시도해 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은 아닐까 생각도 하면서. 코끝이 매운 산 자락 아래 칼바람 부는 텃밭 사이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