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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프리카식 이름

킵시기즈 부족의 이름 속에는 태어난 날의 정보가 들어있다.

by 미 지


마을의 올드맨들이 방문해서 공연을 해 준 날.

평소에는 보멧 시내에서 지내는 윌리가 오고, 집 안에 평소보다 많은 식구들이 드나들더니 저녁 무렵에 나를 위한 공연이 준비되고 있었다. 파티음식 같은 건 없다. 오후에 어르신 세 분이 이웃집을 방문하듯 들어오셔서 반짝이를 붙인 모자, 컬러풀한 옷을 가방에서 꺼내 몸에 두르며 한껏 치장을 하시고는 무릎과 팔을 덩실덩실 흔들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모인 사람들이 웃어주자 더 익살맞아지는 율동을 따라 하라면서 내 어깨를 그분들 틈으로 밀어 넣는 식구들의 미소 띤 얼굴들도 사랑스러웠다.


킵시기즈 부족 사람들의 이름에는 태어난 날의 대략적 시간(오전, 오후, 새벽 등)이나 태어날 때의 환경, 성별에 대한 정보가 들어간다고 했다.


이름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이름에는 혈통과 성별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는 것 같다. ('양'씨 가문의 '동'자 돌림을 쓰는 항렬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것 등)

서양의 경우에도 목수 카펜터, 대장장이 스미스 등 직업이 성씨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고, '늑대와 함께 춤을'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인디언 부족의 이름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와 다르지 않게 킵시기즈 부족의 이름에 대한 것 또한 여간 흥미 있는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아프리카는 많은 부족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킵시기즈 부족은 칼렌진족의 한 줄기로써 킵시기스부족, 000 일족, 00 친족, 00 일가, 00 가족 등의 단계로 내려오면서 하나의 마을 공동체가 형성된다고 했다. 그룹, 커뮤니티, 패밀리 등의 단어로 설명을 해 주었는데 상세한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 아쉽지만 내가 이해한 내용대로라면 킵시기즈 부족은 베이직한 형태의 생활공동체를 일구어 케냐의 협곡 주변 고산지대에 살고 있으며, 부족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한 가족으로 여기는 분위기로 볼 때 사람들의 이름을 지을 때는 나름대로 필요한 정보를 그 이름에 담게 된 것 같았다. 아침에 태어난 여자 페니나, 해 질 녘에 태어난 남자 켄 등과 같이 부족의 누군가를 설명할 때 꼭 필요한 정보 말이다.


내 이름의 '양'은 '강하다'라는 뜻이라고 하면서 킵시기즈부족의 이름으로 나타내면 '아침에 태어난 강한 여자 - 양 체 게티크(부정확하지만)' 정도로 부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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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호수의 발원지가 이곳 키모리의 작은 산골짜기에 있단다. 이솝우화에 나오던 당나귀가 풀을 뜯고 짙은 하늘빛과 짙은 숲의 빛 사이로 장엄한 구름이 흘러가는 마을.


바깥 산책을 나가서 티 공장 근처까지 산책을 하다 보면 오후 하굣길의 아이들이 상냥스레 웃으며 나를 따라 걸었다.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하바리~" 하고 손을 흔드는 아이들에게 내가 "무쑤리"하고 스와힐리 인사말로 답을 하면 신기하게 바라보며 더 활짝 웃었다.

손바닥을 스치며 인사를 마치고 지나가면 멀리서 와~ 하는 소리가 들린다.

너 외국인(무숭구)하고 인사했구나... 그런 내용이 틀림없을 그런 소리.


코벨 미션스쿨 근처의 마을에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 골목에 세워졌던 어느 날 내 곁으로 모여든 아이들에게 나는 가방에서 색종이를 꺼내서 종이비행기를 접는 시범을 보여주면서 몇 명에게는 접어서 주고 몇 명에게는 그냥 색종이를 나누어 주며 집집마다 입학안내장을 돌리고 있는 켄을 기다렸다. 더 달라는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한 개씩만 주겠노라고 말하고 돌려보내면서 그렇게 어두워지기 직전까지 거리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때 모여있던 아이들 틈에서 한 아이 손에 들린 마른풀을 꼼꼼하게 뭉친 듯한 물건 하나가 궁금해서 '그게 뭐야?' 하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볼'이라고 대답해 주고서는 거리에 서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발을 굴렀다.


"왓 이즈 댓! 왓 이즈 댓 쉬 새드! 왓 이즈 댓 쉬 새드 투 미!.... 왓 이즈 댓... "


익숙해진 산책길을 지나 죠슈아의 슈퍼마켓 뒷골목에 있는 시장에 나가서 싼 바나나를 사거나, 양배추 반쪽과 양파 두 개와 아보카도 한 개를 사기도 했다. 모두 합해서 30실링을 지불했다고 말하면 죠슈아의 부인 '알리'는 내가 지불한 가격이 비싸다고 고개를 흔들며 손사래를 저었다.


하지만 난 외국인인 걸.. 엄청 싸게 싼 걸... 30실링이면 삼백 원... 아보카도 하나 값도 안 되는...


내가 한국에서는 아보카도 하나에 2달러(200실링) 정도 한다고 말해주니, 그녀는 정말이냐고 화들짝 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동트는 새벽부터 해지는 순간까지

어디를 보나 장엄한 숲과 하늘과 농장의 풍경들.

비와 천둥과 바람소리

여명에 맞추어 노래처럼 들려오는 새소리와 닭울음소리

거리를 걸으며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보내주는 상냥한 인사와 미소.

한 밤부터 새벽까지 하늘을 덮는 별들의 풍경

순간순간이 아까운데 벌써 마지막 주일.

한국 아줌마 방문객에게

문 열어주고, 환대해 주고, 기쁘게 보여주고

그리고 늘 당신들이 가진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으로 대접해 주는

이 아름다운 가정에 감사를 전하며 마지막 주일을 보냈다.





빗물을 받아서 용수로 사용하기 때문에 물탱크가 마당 여기저기에 놓여져 있다. 여기는 그나마 비가 자주 와서 다행인 듯했지만, 마지막 두 주일은 땅 밑으로 난 수로가 고장이 나고 비도 내리지 않아 마실 물도 구하기 어려워졌기에 씻는 일도, 빨래도 미안해서 참고 참으며 지내야 했다.


이 분들에게 나는 '우기에 많은 비로 파헤쳐진 아침 거리를 산책하던 강한 아줌마'로 기억에 남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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