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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최선인 걸까?

나의 아프리카 봉사활동에 대해 고민해 보기

by 미 지

비교적 덜 개발된 마을을 방문해서 투어를 하면서 지역에 필요한 봉사활동을 하는 볼런투어리즘으로 이번 여행을 계획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육봉사활동을 준비하면서 나는 한순간도 이런 고민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마리온, 여덟 살 꼬마 아이가 강하게 다가왔다. 아빠의 부탁으로 윌리가 코벨 미션스쿨까지 데려다주었다는 이 아이는 지금까지 보아 온 아이들하고 약간 달랐다.

지금까지 만난 아이들은 내 물건에 관심을 보이다가도 내가 학교 수업에 써야 할 물건이라고 말하면 곧 포기하는 모습이었는데 이 아이는 나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자기 할 일을 한다. 내 가방 뒤지기, 내 물건 만지기, 벽에 붙여놓은 사진이랑 색종이를 다 떼어서 가지고 가 버리기. 그래도 지킬 건 지킨다. 핸드폰을 마음대로 만지기는 하지만 던지거나 망가뜨리지는 않는다. 가방을 뒤지기는 하지만 물건을 꺼내 가지는 않는다. 고작 벽에 붙어있는 사진을 가져갈 뿐이다. 눈치껏 상황 파악을 하고 딱 허락될 것의 경계를 이해하고 그리고 가져간다. 영리하다. 가방을 뒤지지 말라고 말해도 막무가내로 꺼내놓는 걸 멈추지 않기에 안아서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야 했다. 네가 착한 아이가 되면 여기 올 수 있다고 말하며 내려놓아야 했다.


욕심 많고 영리한 아빠와 엄마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코벨 마을에서 학교 입학 안내장을 돌리러 나가서 작은 가게의 진열대에 올려진 바나나를 샀다. 켄이 다가와 흥정을 하고는 사백 실링으로 바나나 열여섯 개를 샀다. 그중 여덟 개를 두 부녀가 먹고 또 먹고 그랬다. 안쓰러웠다. 배고프겠지. 욕심 많고 갖고 싶은 것 많고 하고 싶은 것 많은데 허락되는 것은 항상 적거나 없으니. 배가 고프겠지...

방학이라 아빠와 지내기 위해 나쿠루에서 이곳으로 와서 처음 만난 동양 아줌마가, 사진도 찍어주고 잘 웃어주던 동양 아줌마가 다른 아이들에게도 색종이를 나누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니 짜증이 났겠지.


나는 여기 아이들을 자꾸 울게 만든다. 색종이, 풍선, 사진으로 홀려놓고 감질나게 한 장, 한 개로 만족하라고 해서. 모르고 살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을 꺼내서 보여주고, 나눠주고, 딱 한 개에서 멈추라고 한다. 계속 그렇게 해 줄 것도 아니면서 웃어주고 친절하게 말해주고. 그러다 조금 피곤해지면 문 닫아버리고 모르는 척한다. 아이들은 더 많이 가져가도 될 것 같으니 더 달라고 하다가 거절받고 부끄러워한다.


이런 역할은 어쩐지 나쁜 역할인 것 같다.

콜라병 하나 때문에 마을이 불행해지던 부시맨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떠올랐다.


이들이 상처받지 않길. 좋은 것만 기억하고 나빴던 일들은 양분 삼아주길. 이미 준 나쁜 것들이 있으니 그것들은 잘 숙성시켜 이들의 삶에 양분이 되어주길.

이후 남은 투어 기간 내내 나는 나 자신에게 속삭이듯 기도를 해야 했다.


마리온의 시점에서 내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될 것 같다.




죠슈아 아저씨의 차를 타고 코벨 지역을 돌아다니는데 아줌마가 바나나를 샀다. 아빠가 도와주어서 많이 샀다. 바나나를 먹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배가 고팠다. 아빠도 배가 고팠나 보다. 나만큼 많이 먹었다.

한참을 밖에 서서 아빠가 일을 끝내기를 기다리는 동안 동양 아줌마는 신기해서 그 아줌마를 보러 나온 코벨 지역 아이들에게 색종이를 나눠주었다. 더 달라는 아이들에게 안된다고 말하면서 아이들에게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날리는 법을 알려주었다. 색종이가 더 갖고 싶은 아이들은 ‘무숭구’ ‘무숭구’ 그러면서 아줌마 주변을 맴돌았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색종이를 더 주지 않았다.

죠슈아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에게는 두 장을 주었다.

차 안에서 나는 깜빡 잠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 아빠와 잠자는 방 옆에 있는 방이 그 동양 아줌마 방인걸 알았다. 벌떡 일어나 그 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줌마의 가방.

바나나, 색종이가 들어있던 가방을 열었다. 옷만 보인다. 아줌마는 자기 물건을 건드리지 말라고 한다.

바나나, 색종이.... 안 보인다. 다른 방에서 알리 아줌마가 부른다. "마리온, 거기서 나와...."

네리샤 말이 풍선도 있다고 한다. 바나나, 색종이, 풍선....

네리샤와 함께 슈퍼마켓에 가서 비스킷을 사 왔다고 했다. 바나나, 색종이, 풍선, 비스킷.....


난 자꾸만 그녀의 방에 들어간다.

노크를 하고. 어떤 때는 노크 없이...

그녀는 나에게 바나나도 색종이도 풍선도 비스킷도 주지 않는다. 그녀의 물건들을 뒤지다가 물건 몇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깜짝 놀라서 옆에 있던 책을 집어던졌다. 그녀가 나를 밖으로 쫓아내려 하기에 벽에 붙어있는 사진과 색종이로 접은 나비를 떼어서 가져와버렸다.





아프리카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 나라.

오겠다고 설친 건 나였으니 내가 느끼는 당황스러움에 대해 이곳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으면 안 되는 거지. 이곳 사람들의 삶에 내가 아픈 흔적을 남기고 그러면 안 되는 거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마음 아파하면 안 되는 거지. 그저 잠시 자신들의 삶 속에 섞여 흐르게 해 준 일에 감사하면 되는 거지.



문 열어주고, 환대해 주고, 보여주고 함께 호흡해 준 모든 순간순간에 감사하면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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