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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모리스쿨과 지역사회에서 배운 것들

터지는 순간 사라지는 한 순간의 기쁨, 풍선.

by 미 지


선생님들은 다들 같은 뉘앙스를 가지게 되나 보다. 긴 막대풍선에 풍선 펌프를 사용해서 바람을 넣고 방울을 꼬아가며 귀가 긴 토끼, 목이 긴 기린, 등이 긴 닥스훈트를 만드는 법을 설명해 줄 때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교육청에서 연수를 받던 장면이랑 다를 바 없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다가와서 풍선 동물 만들기를 배우고 돌아서서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싶은 풍선 모양을 선택하면 하나씩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은 풍선동물보다 모자를 더 많이 좋아했다. 선생님들은 방울을 꼬아 엮어서 컬러풀한 모자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씌워주고 그 아이들 좋아하는 모습에 한없이 기뻐했다.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증명사진 크기로 출력을 해서, 색종이로 접은 셔츠 위에 그 사진을 붙여 나누어주었다. 선생님들이 대단히 창의적이라며 칭찬을 해 주었다. 색종이 접기를 가르쳐달라기에 차근차근 가르쳐주는데, 처음 종이접기를 접해 본 선생님이 중간 즈음 "아이 로스트 마이 웨이"를 외치며 웃었다. 나도 함께 웃었지만, 내심 미안한 마음이 컸다. 이곳의 선생님들에게 그저 "장비 빨"인 나의 교구재들이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이런 물자들을 일찍부터 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이 선생님들은 내가 준비한 활동보다 훨씬 더 훌륭한 교육활동을 하실 수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었다.


활동 마지막 날 학생들이 저마다 큰 율동과 목소리로 불러 준 우렁찬 노래들의 울림은 두고두고 내 귓가를 맴돌고 있다. 물감, 색종이, 풍선 같은 형형색색의 물건 없이도 우리는 이렇게 활기차고 생기 있게 배우고 노래한다고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키모리 스쿨에서 저학년과 유치원 학생들의 수업을 하기로 했다.


고학년 학생들에게는 교실마다 들어가서 인사를 나누었다. 한국에서 홍콩, 아디스아바바를 거쳐 케냐로 들어왔다는 여정을 설명해 주는 동안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한없이 반짝거리고 있다.

학생 한 명이 내 이름을 칠판에 적어주었다. 저렇게 들리는 구나... 내 이름...


한편, 특수교사로서 이 지역의 장애인들이 어떻게 생활을 하고 어떻게 교육을 받고 있는지도 궁금했었다.

십수 년 전, 어느 특수교사 한 분이 '아프리카 초원에는 자폐아가 없다'는 주장을 하셨던 적이 있는데, 그것이 정말일지도 궁금했었다.


내 나름의 생각과 결론으로는, 이곳 시골마을의 생활은 복잡한 도시의 생활과는 아주 다르다.

새벽에 눈뜨고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까지 일상의 변화가 거의 없는 단조로운 생활환경.


내가 만났던 자폐학생들은 일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부적응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이런 단조로운 생활환경에서는 자폐성향이 특별히 문제가 될 정도로 드러날 조건이 없어 보였다.


눈빛과 손아귀의 쥐는 힘이 다르게 전해지는 학생이 있기는 했다. 내가 만나 보았던 자폐학생에게서 익숙하게 느꼈던 기운이 전해져 나도 모르게 와락 부둥켜안아주었던 그 학생도 학교 생활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모두 다 순박한 웃음으로 복잡할 것 없는 학교생활을 누리기만 하면 될 뿐 아닌가 싶어서 더 이상 그 학생에게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죠슈아는 마을 입구에 있는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슈퍼마켓 앞에서 활동지와 집을 왕복하기 위해 택시와 보다보다를 기다릴 때, 죠슈아와 만나기를 기다릴 때 마을의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곤 했다.

하루는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가 켄과 수다스러운 대화를 하면서 나를 슬쩍슬쩍 곁눈질로 쳐다보는 것이 약간 외설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 보였다. 켄이 부자연스러운 미소로 그와 인사를 나누며 차 문을 닫았고 나를 보며 사과를 하려고 했다.


'난 그게 my situation이라고 생각 안 해, 걱정 마!'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때 거부하거나 피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슈퍼마켓 앞에서 켄이 휴대전화 데이터 충전 쿠폰을 구입하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조금 많이 아파 보이는 (술에 취한 듯한) 남자 하나가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을 그냥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켄이 깜짝 놀라 달려와서는 그에게 호통을 치며 쫓아버리고 나를 차에 태우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순박한 시골마을의 한낮에도 피해야 할 사람은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현지인조차도 당황하며 피해야 하는 타입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있었는데, 이 경험은 이후 예정에 없던 나이로비에서의 1주일을 지내는데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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