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76.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정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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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차례의 ‘폭언’ 전화, 16번의 협박, 4회에 걸친 폭행. 두 달간 벌어진 직장 내 괴롭힘에 스물다섯 살 청년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협박과 폭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해자는 1심 법원에서 징역 2년 개월을 선고받았는데, “형량이 과하다”며 항소를 하곤 선처를 호소 중이라고 해요. 회사 대표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일어난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고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한 지 올해로 5년째입니다. 예상과 달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내용은 단출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단독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내 조문의 일부로 포함된 까닭입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와 제76조의 3(직장 내 괴롭힘 발생시 조치)에선 각각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의 조치 사항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법 조문만으론 직장 내 괴롭힘이 무엇인지 개념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사용자에게 사실 조사 및 피해근로자 보호 의무를 포괄적으로 부여했다는 점도 현행법의 한계로 꼽히고요. 실제로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조사하는 시늉만 하면서 교묘하게 의무를 회피하거나 되레 악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해요. 가령, 현행법상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을 파고 들어 “해당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다”라며 자의적 판단을 내리는 식이죠.
최근 한 언론사에서 지난 5년간 보도된 직장 내 괴롭힘 주요 사건 이후 피해자의 경로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피해근로자 대부분이 퇴사 또는 이직을 하거나 심각한 경우 사망으로 내몰리고 있었습니다. 문제제기 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조사를 받는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데다, 신고 행위를 빌미로 2차 가해를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탓입니다. 설사 가해자가 직장에서 퇴출됐어도 피해자 스스로 위축되거나 주변의 수군거림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어요.
법조문 너머의 현실은 험난합니다. 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탓인지, 우리나라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최근 3년간 한 번은 사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래서인지 “이제라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괴롭힘’의 정의를 내리는 일부터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거든요. 한쪽에선 직장 내 괴롭힘의 성립 요건에 지속성과 반복성을 추가해서 판단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또다른 한쪽에서는 지속성과 반복성의 개념이 폭언이나 폭행의 ‘횟수’로 좁혀질 경우 직장 내 괴롭힘 판단의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요.
어쩌면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정답’이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직장 내 괴롭힘의 유형은 너무도 다양하니까요. 다만, 관점을 바깥으로 돌려보면 우리가 참조할 만한 사례가 존재합니다. 노르웨이의 직장 내 괴롭힘 정책이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90년대 심각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한 이래 ▲괴롭힘 관련 전문가 양성 ▲괴롭힘 예방 체계 구축 ▲처벌조항 정비에 힘써왔습니다. 노르웨이는 대학 석사학위 과정에 ‘PA(Prevention Advisor•방지조언사)’ 전문 과정을 설치해, 이 과정을 이수한 자에게 사업장 내부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모든 요소를 모니터링 하도록 조치하고 있어요.
사용자가 괴롭힘 행위를 조사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노르웨이 기업은 괴롭힘 사건을 조사하는 안전담당자와 근로환경위원회를 따로 둬야 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노르웨이에선 개인 간의 괴롭힘뿐만 아니라 ‘과다한 업무로 괴로움을 겪는 근로자를 방치하는 행위’도 위법으로 봅니다. 괴롭힘 사실이 인정되면 가해자뿐만 아니라 사용자까지 최대 2년형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죠.
우리나라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과도기에 놓여 있습니다. 적어도 가장 무거운 법적 의무를 지닌 사용자가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직장 내 괴롭힘 예방 체계를 강화하고, 객관적인 사실 조사를 위한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사람 관계가 안전한 일터를 만든다’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취지가 되살아 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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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서유정. 2023. [23개 국가(주)의 직장 내 괴롭힘 정의 및 법령 분석 연구].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동아일보. 24-08-14. [“죄송하면 다냐, 맞고 시작할래”…25세 청년 죽음 내몬 직장상사].
한겨레21. 24-08-06. [이것은 왜 괴롭힘인가 vs 왜 괴롭힘이 아닌가].
뉴시스. 24-07-25. [10명 중 6명 3년 내 ‘직장 내 괴롭힘’ 경험…“갈등 조정 기구 필요”].
서울신문. 24-07-17. [[단독] 배신자 눈총·꿈쩍 않는 조직… 공포의 일터, 내 삶은 사라졌다[빌런 오피스]].
뉴스1. 24-07-11. [스물다섯 청년 죽음 내몬 ‘생지옥 직장 괴롭힘’ …사장은 “몰랐다”].
중앙일보. 19-07-15. [호주 직장 괴롭힘 최고 10년형…노르웨이 과로 방치도 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