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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자버 Jun 04. 2022

부지런한 널 사랑하는거지 어떻게 나까지 부지런해지겠어?

갈월동 반달집 비혼 동거 기록

설쌤은 반달집에서 살기 전, 무려 3년을 후암동 작업실 창고 방에서 생활한 사람이다. 침실도 샤워 시설도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은 1.5평 남짓의 창고 방. 설쌤은 버려진 데크를 쌓아 침대로 쓰고, 오천 원짜리 동네 목욕탕에서 밀린 샤워를 해결했다. 어쩌면 생활이라기보다는 생존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렸달까. 빨래는 잔뜩 쌓아뒀다 남양주 본가까지 가서 했으니 이 얼마나 지독한 사람인가. 후암동 베어그릴스가 따로 없을 지경. 그 당시 내가 “힘들지 않아?” 하고 걱정스레 물어보면 설쌤은 “괜찮아, 조금만 더 부지런하게 살면 아무 문제없어!” 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게 무슨 신통한 묘안이라도 되는 양. 결국 몸으로 때우겠단 말이잖아! 물론 설쌤도 마냥 좋아서 창고 방에서 지내던 건 아니었다. 여건만 된다면 더 나은 거처를 찾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그냥 좀 더 부지런하면 된다’는 설쌤의 말 자체엔 때가 묻어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하는 일의 눈가리개용 합리화가 없었다는 뜻이다. 어차피 해야 할 노동이라면 아무 거리낌 없이 해치우는 사람. 나는 설쌤의 그런 생활력과 부지런함이 구차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설쌤을 더 사랑스럽게 만들면 만들었지. 하지만 명확히 선을 긋자면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부지런한 당신을 사랑하는 거지 어떻게 나까지 부지런해지겠어? 하하하.


“자버야, 우리 아예 세탁기 없이 살아보는 건 어때?”

귀를 의심했다. 사람 사는 집에 세탁기를 들이지 말자니? 그건 너무 구질구질하잖아! “그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에요.” 나는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말했다. 반달집을 준비하면서 처음 생긴 마찰이었다. ‘세탁기 없이 3년이나 산 너나 그렇게 살라지,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이미 화가 났지만 떠올릴수록 더욱 화가 치미는 게 있다면 이 다툼의 시초가 된 설쌤의 불만 사항이었다. 얼른 ‘생필품’인 빨래 건조대를 사자는 나의 말에 설쌤은 “그런데 집 안에 빨래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으면 너무 너저분하고 스트레스받아. 건조기에 건조하면 훨씬 좋을 텐데.”라고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 건조기는 고사하고 세탁기 둘 곳도 마땅찮아 죽겠는 이 작은 집에! 설쌤의 의견을 정리하자면, 건조기를 두지 못할 바에 빨래가 널브러지는 게 싫으니 빨래는 빨래방에서 해결하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물질적인 부족함을 내 시간과 노동력으로 때우는 일, 가난의 동사형이 있다면 사전풀이가 딱 저렇지 싶다. 가난은 지긋지긋했다. 아니면 감성으로 덕지덕지 도배한 반달집도 결국엔 작고 초라한 서울의 월세방이란 사실을 직시하기 싫었던 걸까?


사실 세탁기 이슈가 있기 전에, 냉장고 사이즈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었다. 부엌 수납장 너비에 맞춰 아담한 냉장고를 사자는 설쌤과 수납장 앞으로 냉장고 라인이 툭 튀어나와도 최대한 큰 사이즈의 냉장고를 사고 싶다는 나의 의견이 달랐다. 다른 가구면 몰라, 냉장고 같은 필수 가전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삶은 급격히 구차해진다고! 그렇지만 이 이슈에서는 내가 한발 물러섰다. 어차피 요리도 잘 해 먹지 않거니와, 수납장과 냉장고 라인을 깔끔하게 맞추고 싶어 하는 설쌤의 의지가 무척 컸기 때문이다. 다만 실용적인 것보다 보이는 것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설쌤의 생활철학이 내심 걱정거리로 남아있긴 했다. 내 스누피 책을 장식용 오브제로 쓰려고 했던 과거의 전력을 포함해서 말이다. 다음에 또 이런 이슈가 있으면 절대 물러서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동거에 있어서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소중한 가치를 어물쩍 덮어두고 싶진 않았다.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나는 세탁기 없이 절대  살아. 빨래방을 가려거든  혼자 .”

감히 내가 부지런해질까 보냐, 으름장이란 것을 놓아보았다. 내게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설마하니 그러겠다고 대답하겠어? 하는 심보로 내 눈은 이글거렸다. ‘드디어 시작이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니와 함께한 자취 7년의 역사, 다시 말해 다툼의 역사를 잘 아는 터라 나는 싸움 냄새를 잘 맡는다. 언젠가 부딪히고 싸울 일, 이렇게 시작하는구나. 그래 한 번 싸워보자. 싸워봐야 해결하는 방법도 익히는 거지. 두근두근, 과연 설쌤은 내 제안 혹은 선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와라!


“자버 생각이 그렇다면 빨래는 나 혼자 할게요.”

어라? 이게 아닌데. 조금 더 다투다가 못 이기는 듯 세탁기 쇼핑을 하게 되는 그런 그림이어야 마땅한데…. 예상치 못한 설쌤의 담백한 대답으로 전투 태세는 급하게 마무리되었다. 몇 해 전,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아무 문제 없다던 그 말의 순도 높은 정직함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대답이었다. 싸우지 않고 마무리되어 다행이긴 했지만 김새는 상황에 묘하게 실망스럽기도 했다. ‘두고 보자. 얼마 못 가 지치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NO 세탁기 라이프가 시작됐다. 한 달, 석 달, 반년 시간이 흘렀고 설쌤은 묵묵히 빨래방을 다녀오곤 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쁜 날도, 노는 날도 예외는 없었다. 차라리 생색이라도 내면 내 마음이 편할 텐데, 그 묵묵함과 꾸준함이 되려 나를 쿡쿡 찔러 몇 번 빨래방에 동행하기도 하고 빨래 개는 일이라도 거들곤 했다. 하지만 나는 거드는 정도지 빨래는 설쌤이 전담한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도 설쌤의 부지런함은 순도 100% 진짜였고 꾸준히 쌓인 시간이 그 사실을 증명해버렸다.


빨래를 개는 사람과 그냥 개기는 사람


“음, 아니. 거짓말일 거야.”

그래도 나는  부지런함을 부정하련다. 반달집에서 세탁기의 빈자리는 내게 콤플렉스다. 15센티미터 정도 모자란 냉장고 사이즈도 덤으로 콤플렉스다. 본인은 괜찮다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빨래하러 가는 설쌤을 보면 마음이 축축해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무너진다. 나는  느낌을 부정할 수가 없다. 만약 반달집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는 날이 온다면, 그건 아마  비좁음 때문일 거라고 일찌감치 짐작해 두었다. 동거하는  사람 사이에 다툼이 없다고 해서 다름이 없는  아니다. 삶이란  어찌 됐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속성이 강해서 반달집에서의 동거도 어느 영역에선 동상이몽인 채로       굴러가고 있다. 우린 커다란 냉장고와 건조 기능까지 겸한 세탁기가 있는 삶으로  굴러갈  있을까? 그런데 문득 수많은 선택지 중에 우리가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살게 되는 그림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달라도 함께 가자. 방법을 찾을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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