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월동 반달집 비혼 동거 기록
행복에 겨워 죽겠을 때, 가장 불안하다. 보통의 사람 심리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다. 타인이 되어 본 적이 없는지라. 이제 좀 편안해지겠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쉴라치면 항상 어디선가 매서운 따귀 한 찰이 뺨에 떨어져 퍼뜩 정신을 차리게 된다. 내 삶의 패턴이 항상 그런 식이었다. 정상으로 가는 오르막에서 일찌감치 내리막 생각을 해두지 않으면 언제고 선로를 이탈해 산산조각 날지도 모르는 삶. 점잖게 말하자면 새옹지마의 삶이려나. 그래서 좋을 때 미친듯이 좋아하고 슬플 때 끝장난듯 슬퍼하는, 그때그때에 충실한 삶을 동경한다. 언제나 현재에 머물러 있는 삶은 새옹지마의 반대니까 마지옹새의 삶이라고 하면 되려나. 내 손에 쥐어진 달콤한 사탕을 누군가 빼앗아갈까, 땅에 떨어지진 않을까, 지나가던 새가 똥을 지리진 않을까 전전긍긍하지 않은 채 쪽쪽 빨아먹고 느긋하게 핥아먹다 침에 불어터진 막대가 힘없이 끊어질 때까지 먹는 삶, 살아보고 싶다.
먹고 싶은 사탕이 참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설쌤과의 동거생활은 입에 넣어보기도 전에 알았다. 무척 달고 탐스러울 것이라는 사실을. '당장은 좋을거야, 당장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스스로를 단속했다. 아니나 다를까 몇년 간 꾹꾹 억눌러온 설쌤의 요리 및 살림 욕구가 마구 터져나왔고, 안 그래도 마음껏 예쁘게 꾸며놓은 공간과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입도 즐겁고 눈도 즐거운 하루하루가 펼쳐졌다. 피곤한 퇴근길, 오르막 어귀에서부터 반달집이 보이면 마음이 녹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설쌤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나는 그날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저녁을 준비하는 설쌤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었다. 저녁을 다 먹고 창 밖을 바라보면 깜빡깜빡 빛나는 해방촌 언덕이 어찌나 매혹적인지. 그 반짝거리는 리듬에 장단 맞춰 술잔을 기울이게 됐다. 별거 아닌 주제로 열을 올리며 토론하다가도 결국엔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모습, 가고 싶은 곳들을 꼽아보다 꾸벅꾸벅 지쳐 골아떨어지곤 했다. 마음 벅차고 살도 포동포동 차오르는 행복한 하루하루였다.
설쌤과 동거한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 마음의 대문을 활짝 열고 온갖 부정적인 기운이 깃들기를 기다렸다. '자, 이제 사탕을 빼앗아가렴. 충분히 달콤했어.' 설레는 매일이 시큰둥한 일상이 되고, 별거 아닌 말이 참을 수 없는 공격이 되는 처참한 현실이여, 오라!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게 다 괜찮았다. 겸손함을 덜고 얘기하자면, 괜찮은 것 이상으로 괜찮았다. 종종 아픈 말로 서로를 쑤셔대며 싸웠던 우리 사이에 다툼이 사라졌다. 늘 정면에서 역풍을 맞느라 한 걸음 내딛는 것도 힘겨웠던 나의 등 뒤로 기분 좋은 순풍이 솔솔 불어오는 듯 했다. '어쩌면 이 사탕, 막대만 남도록 다 먹어치울 수 있겠는데?' 기분 좋은 예감으로 가슴이 콩닥거렸다. 아, 그래도 살면서 이런 복 하나는 내게 오는구나. 얼떨떨한 기분으로 행복을 쭙쭙 핥아먹었다.
'어쩌면 우리 결혼해도 괜찮을지 몰라.‘
미쳤다. 내가 결혼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거의 신혼과 다름없는 일상 아니겠는가. 딱히 결혼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동거는 아니었지만 계속 우리의 행복한 정도를 결혼이라는 줄자로 재보고 있었다. 숨 막힐듯 꽉 끼거나 볼품없이 헐렁할 줄 알았던 결혼의 치수는 의외로 우리 몸에 알맞게 딱 떨어지는듯 했다. 그 발견이 너무나 달고, 달고, 달았다. 설쌤에게 지지 않으려 사납게 짖어대던 자존심이 꼬리를 내리고 온순해졌다. 어느 상황에서든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예리하게 돋아있던 안테나도 무뎌졌다. '저 사람을 믿어도 된다'는 눈물겨운 팩트가 이불처럼 포근하게 나의 불안감을 감싸 안았다. 나의 성질은 시간이 갈수록 더 뭉뚱그려지고 으깨지고 보드라워져갔다. '나'에서 조금 더 완벽한 '우리'가 되기 위해서. 나를 바쳐도 아깝지 않을 이름, 우리.
"그래 남자친구랑은 잘 지내고 있니?“
간만에 엄마에게서 안부 문자가 왔다. '잘 지내는 정도가 아니라 살면서 이렇게까지 하루하루가 만족스러운 적이 없었는데?' 어디보자,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엄마가 알 수 있을까? 왠지 뻐기는 마음이 되어서는 엄마에게 우리의 해피 동거 라이프에 대해 있는 대로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무도 다그친 적 없는데, 은근히 엄마에게 내 선택이 얼마나 현명하고 옳았는지를 당당하게 보여주고 인정 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나보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에 확신에 확신을 더해줄 한마디를 보탰다. "얼마나 좋냐면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엄마에겐 처음으로 꺼낸 결혼 얘기였다. 엄마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다. 조금 갑작스러웠으려나? 하지만 도착한 엄마의 답장에 나는 가슴이 냉해졌다.
“둘의 행복함에 빠져서 너의 내면을 볼 수 있는 고독한 시간의 소중함을 잃지는 마.”
화가 났다. 엄마는 왜 축하는 커녕 어줍짢은 조언을...? 정작 본인은 둘이 함께 사는 즐거움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사람 아닌가? 결국 몇 마디 가시 돋친 말로 투닥거리다 엄마와의 대화가 끝나버렸다. 엄마가 모르는 나의 삶에 대해 함부로 조언하지 말라는 단언과 함께. 속상했다. 나는 나의 소중한 것을 꺼내 보이며 자랑했을 뿐인데. 아니 좀 상처 받은 건가? 그런데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볼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말이 머리에서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여기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는 내용인데, 왜이렇게 걸리는 걸까 그 말이. 엄마가 찬물을 끼얹은 바람에 반달집을 바라보는 마음의 온도가 미세하게 낮아져있었다. ‘제기랄, 영향 받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정말 만에 하나 엄마 말대로 내가 단꿈에 젖어 나를 잃어버렸다면, 잃어버린 나는 어디에 숨어있으며 그건 나의 어떤 부분일까? 대여섯 살 쯤 됐을 때인가, 엄마에게 물어본 적 있다. "엄마, 엄마는 내가 엄마 딸이어서 내가 좋지?" 그러자 엄마가 길게 생각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니, 엄마는 자버가 자버여서 좋아.”
엄마는 처음부터 내가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애인이 아닌 나 자신으로 살길 바랐다. 그 말 한마디에 이 세상을 뚫고 나아갈 힘을 얻었고, 실로 그 힘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뒤적뒤적, 더듬더듬. 다행히 나는 아직 여기에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약간의 분노를 느끼는 나는 반달집에 존재하고 있다. 안심한 나는 좀더 경계를 풀고 엄마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래, 그 말도 맞다. 어쩌면 10년 넘게 혼자 살며 혼자를 길러온 사람이 한 말이니까 더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대로 반달집의 달달한 일상을 즐길 수 있었다. 엄마의 치명적인 맹점이 보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까. 둘의 행복함에 빠져도 여전히 혼자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린 억지로 하나로 '뭉뚱그린 우리'가 아니라 너와 내가 알알이 살아있는 '뭉쳐진 우리'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린 각자가 하나의 보름달이 되고자 하는 두 개의 반달이다. 이 집에서는 누구 하나를 위해 누구 하나가 자신의 존재감을 무뎌지게 하거나 자신의 색을 희미하게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엄마의 안부 문자는 땅에 떨어진 사탕을 3초가 지나기 전에 후다닥 주워올린 일 정도로 해석하기로 했다. 나는 사탕을 물에 잘 씻어서 입에 다시 물었다. 하지만 덕분에 결혼 충동은 좀 가셨다. 우리가 서로 결혼 하기에 나쁘지 않은 상대라는 걸 확인한 걸로 충분하다. 결혼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데, 관습적으로 결혼을 떠올리는 이유에는 어쩌면 내가 엄마에게 그러했듯 남들에게 떳떳하게 인정 받고 싶은 욕구가 들어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찌 타인의 시선에서 100% 완벽하게 자유로운 채로 살겠냐만은. 아직은 나에서 '너와 나'까지 확장된 지금의 동거 생활로 충분하다. 내가 나이고, 너가 너일 수 있는 '우리'이기만 하다면 문제는 없을거다. 쩝, 다행히 입에 문 사탕은 여전히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