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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자버 May 06. 2022

아니, 책을 왜 거기다 둬?

갈월동 반달집 비혼 동거 기록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해본  있을 것이다. 우린 서로 닮아서 끌린 걸까, 아니면 서로 달라서 끌린 걸까? ‘우린 역시 닮은 곳이 많아서 좋아.’라던지 ‘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톡톡 튀는 당신이 좋아.’라는 나름의 결론이 있겠지만, 대부분 연인은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저희는 달라도 너무 달라요. 같은 지구인이라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 우리가 사랑에 빠진  기적이죠!” 하지만 이를 주제로 진행한 심리 실험 결과는 이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연인들 대다수가 이미 90% 이상의 분야 - 가치관, 정치 성향, 경제력, 취향, 생활 양식 - 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고, 실제로 다르다고   있는 부분은 끽해야 10%   되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서로 비슷한  너무 당연해서 눈에  띄지 않고, 서로 다른 영역은 자주 부딪히고 언급되기 때문에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훨씬 ‘ 보이는것뿐이라고 한다.


아마 그런 심리 아닐까. 서로 다른 모양의 종이 두 장을 마주 대고 보면, 겹치는 영역이 대부분이어도 삐뚤빼뚤 튀어나온 부분만 눈에 보이는 심리. 우리 마음속엔 사랑하는 사람과 결국 같아지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나와 다른 상대방 모습에 끌린다면 나의 요철을 잘라내고 싶고, 상대방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를 본떠 거기에 맞게 상대방을 교정하고 싶은 본능. 나는 네모, 너는 세모인 채로는 도통 앞으로 굴러 나가지지 않는 때가 많은 것이다. 오래된 커플인 우리는 서로의 다른 점을 교정할 대로 교정한 채, 더 이상 서로 타협의 의지가 없는 영역은 그냥 눈 감고 모르쇠 하기로 암묵적 합의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동거하게 된 마당이니 이런저런 이슈 앞에 마냥 눈을 감고만 있을 순 없었다. 당장은 반달집에 들어갈 가구들을 골라야 한다는 미션을 떠안고 있었다. 상대방이 말도 안 되는 디자인의 가구를 사고 싶다고 주장하면 어떡하지? 나는 나의 의지를 굴복시킬 걱정보단 상대방에게 어떻게 내 주장을 관철하지 고민했다.


“이 의자 어때?”

설쌤이 보내온 가구 사이트 링크와 함께 드디어 우리의 가구 쇼핑이 시작됐다. ‘어디 보자... 당장 의자가 필요하긴 한데 의자는 어째 상판은 빨강인데 의자 다리는 노랑에 파랑까지  다채롭구나.’ 정말이지 설쌤 안목답게 예쁘고 희한하고 무용한 의자였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나는 답장을 보냈다. “그래 좋아, 주문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알록달록한 의자가 중후한 나무 프레임 안에 놓여있을  상상했을 뿐이다. 산뜻하고 귀여운 풍경이었다.  안에서 살고 싶었다. 이건 너무 설쌤 사고방식인데, 하며  의아해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내가 이런 과감한(?) 선택도   있는 사람이구나. 배송된 의자를   거실에 가져다 놓으며 설쌤은 흐뭇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아무것도 없는 거실에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장면을  보고 싶었다고. 비록 동참하기는 했으나 이해할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그 후로 나는 ‘응봇’이 되고 말았다. 설쌤이 귀여운 아이템을 발견할 때마다 내 입에서는 족족 응, 응 좋다는 대답만 나왔다. 그러다 보니 빈집에 테이블, 책장, 수납장과 같은 꼭 필요한 가구는 아직 들이지도 못한 채 아기자기한 소품들만 잔뜩 굴러다니게 됐다. 갈색과 보라 패턴이 예쁜 부엌 행주, 요즘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날로그 체중계, 스케이트보드 모양의 나무 선반 등(한꺼번에 나열하고 보니 더 쓸데없어 보인다!) 점점 재미있는 집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작고 개성 있는 것들이 집을 꽉 채우진 못해도 얼굴에 난 매력점처럼 집에 묘한 매력들을 더해갔다. 내가 너무 설쌤 의견에 휩쓸려가는 건 아닐까? 잠깐 의심에 시동을 걸까 하다가, 내가 내키지도 않는 걸 억지로 할 리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자명했기에 그만뒀다. 같이 살기 전엔 몰랐는데 우리의 인테리어 취향이 이렇게나 찰떡같이 잘 맞다니. 행운이었다. 가구 고르다 파혼까지 갈 뻔했다는 신혼부부의 사연을 떠올리며 상대적인 우월감에 젖기까지 했다.


아날로그 체중계를 두고 얼마 못가 디지털 체중계를 구매했다.
집의 매력점이 되어준 아기자기한 소품들


이케아에 갔을  있었던 일이다. 거실 테이블과 침실 수납장  필수 가구 구매를  이상 미룰  없다며 갔던 차였다. 필요한 가구가 있는 섹션으로 이동하는 중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나 나올 법한 요상한 모양의 시계장이 눈에 띄었다. 길쭉한 사다리꼴 모양의 책장 위로 동그란 시계가 얼굴처럼 달린 만화체의 시계장이었다. 설쌤에게  시계장  보라며,  우릴 쳐다보는  같지 않냐면서 감탄했다. 우린 같이 “귀엽다~ 그런데 저런  누가 살까?” 하하 호호 웃으며  시계장을 지나쳐갔다. 그리고 이케아에서 돌아오는 , “누가 살까 '누가' 바로 우리라는 것이 밝혀졌다. 설쌤 나도 쇼핑하는 내내  시계장 생각이 떨쳐지지 않아 의아해했고 그건 아마  시계장이 우리 집에 너무  어울리는 탓일 거라며 반드시 그 시계장을 사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우리 충동구매를 이렇게나 잘해서 어떡하지? 집에 들어가 살기도 전에 지갑이 거덜 나는 것은 아닐까 슬슬 불안할 정도로 쇼핑 쿵짝이  맞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설치 전, 설치 후의 시계장 모습


“새롭네, 새로와!”

보일러가 문제없이  작동하는  확인차 우리 집에 들르신 주인집 할머니께서 노랗게 칠한 침실 벽을 보고 감탄하셨다. 아무리 집주인이 허락했다고 해도 그렇지, 벽을 노랗게 도배해버릴 생각을 하다니. 페인트칠의 장본인이 생각해도 발칙한 색깔이었는데 다행히 할머니 맘에   같았다. 50 넘는 세월을  집에 살면서도 노란 페인트칠을  생각은  해보셨다면서 말이다. 할머니의 응원(?) 힘입어 우리는  꾸미기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출근하고 없는 동안 설쌤이 사부작사부작 많은 일들을 벌여놓았는데, 가구를 조립해 놓거나 아기자기한 소품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식이었다. 퇴근해 집에  때마다 집은 조금씩 바뀌어 있었고  그런 집을 남의  구경하듯 신나게 돌아다녔다.


‘아니, 저게 뭐야?’

그러다 무언가 하나 눈에 거슬리는 걸 발견했다.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던 거실 스탠드 조명 아래 굉장히 낯익은 물건이 놓여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뉴욕에서 사 온 피넛츠 원문 만화책이었다! 손바닥만 한 사이즈에 스누피 친구들이 올망졸망 그려져 있어 꾸밈 용 오브제로 쓰이기 좋은 건 알겠다만, 내 머리로는 ‘책’을 ‘오브제’로 활용하는 행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난 인질을 풀어주듯 피넛츠 책을 낚아채 다시 책장에 꽂아두며 설쌤에게 한 소리 했다. “꾸밀 게 따로 있지. 어떻게 책을 조명 아래에 둬?” 설쌤은 그게 꾸지람 들을 정도로 잘못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얼떨결에 내게 사과했다. “그래서 자버는 원어로 된 그 책, 다 읽었어?” 하는 물음에는 물론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책꽂이도 인위적인 안정감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사람 손을 잔뜩 탄 것 같은 이 아름다움의 정체는 뭐지? 하고 다시 보니, 책들이 ‘깔’별로 색상환을 이루며 깔끔하게 분류된 것이 아니겠는가. 으악! 내 뒤에는 본인의 걸작을 자랑스러워하며 뿌듯한 표정의 설쌤이 서 있었다. 뒤죽박죽 어지럽던 책장이 얼마나 깔끔해졌는지 내가 알아봐 주길 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난 무서웠다. 설쌤이 얼마나 ‘보이는 것’에 민감한 사람인지를 망각했던 나 자신에게 소름 돋아 무서웠다. (무려 직업이 일러스트레이터인데!) 천성이 지저분하고 무딘 나와 그 반대인듯한 설쌤, 잘 살 수 있을까? 충동구매 몇 번에 마음이 통했다고 우리가 천생연분이라 생각하다니. 설혹 99%가 같다고 해도 역시 1%가 다른 것은 아주 크다. 1%는 아주아주 크다.


서로 다른 우리에 매번 놀라며 함께 산 지도 어느덧 1년. 다행히 두 사람 다 맥시멀리스트라는 공통점을 딛고 이렇게 저렇게 잘 살아가고 있다. (음,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집 크기는 그대로인데 물건만 점점 늘어난다. 신기하게 코딱지만 한 집에 그 물건들이 다 들어간다. 대신 벽엔 옷걸이, 모자걸이, 가방걸이, 행주걸이, 걸이들로 가득하다. 선반이나 수납장에 빈 공간이 생기면 설쌤이 먼저 차지하기 전에 내 물건으로 그 공간을 선점하겠다는 경쟁심이 솟는다. 가끔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 놓여있을 때 ‘도대체 왜?’라는 삐뚠 의아함이 떠오르지만 그만큼 설쌤도 나의 삐뚠 구석을 참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그리고 겨우 열 중에 하나 정도 다른 구석일 테니까. 다른 하나보다는 같은 아홉을 더 생각하려고 한다. 열이면 열, 다 똑같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어. 풀고 싶은 숙제가 있는 편이 낫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리고 설쌤에게는 그 숙제를 풀고 싶은 의지가 있다. 의아해서 귀여운 사람과 계속해서 재밌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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