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자버 Sep 25. 2022

집주인 할머니와의 때이른 이별

갈월동 반달집 비혼 동거 기록

아래층 주인 할머니는 종종 설쌤을 호출하신다. 지은 지 100년이 더 넘은 오까베* 집이다 보니 이곳저곳 탈 난 곳이 많은 탓이다. 셋방을 놓느라 인위적으로 구역을 나눠놓긴 했어도 애초에 한 덩어리였던 주택이라 문제가 생기면 주인집, 세 들어  사는 집 나눌 것 없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법을 궁리해야만 했다. 그날도 설쌤은 아침부터 할머니 전화를 받고 1층으로 소환당했다. 1층 집 천장에서 물이 샌다는 것이었다. 하필 우리 집 화장실이 위치한 자리에서 물이 샜는데 몇 차례 수리공을 불러서 고쳐봐도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됐는지 잊을 만하면 주기적으로 또 물이 샌다는 연락이 왔다. 옷을 챙겨입고 헐레벌떡 내려가는 설쌤을 보며 나는 그저 또 물이 새나 보다 했다.


*오까베집: 적산가옥이라 불리는 일본식 주택


보통 한번 호출당한 설쌤은 돌아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집을 수리하는 건 둘째 치고 주인집 할머니께서 한번 입을 열면 지나가는 사람도 철퍼덕 자리 잡고 앉힐 만큼 재미난 이야기들을 술술 꺼내는 데 도사셨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별다른 징검다리도 없이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일본 경찰에게 잡혔던 사연부터 아드님이 경주마를 수입하다가 사업이 망한 얘기까지 시대를 막론하고, 국경을 뛰어넘는 거침없는 말솜씨로 관중의 혼을 쏙 빼놓곤 하셨다. 그러다 별안간 “바쁠 텐데 얼른 가봐요~!” 하는 경쾌한 한마디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셨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면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기도 했다. 그래서 설쌤이 할머니께 다녀오기만 하면 나는 곧장 “오늘은 무슨 얘기 해주셨어?”하고 맡겨 놓은 거 있는 사람처럼 설쌤을 닦달했다.


그런데 그날은 아래층에 다녀온 설쌤 표정이 평소와 좀 달랐다. “무슨 일 있어?” 나도 모르게 그렇게 질문했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할머니께서 갈월동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게 되셨다는 소식. “그게 말이 돼?” 당연히 이 집이 할머니 생애 있어 마지막 집이 될 거라 생각했던 나는 큰 사고를 목격한 사람처럼 어안이 벙벙해졌다. 50년 넘게 살던 집을 떠나는 일이 할머니에게 큰 상실감으로 다가오진 않을까? 주제넘은 걱정까지 들었다. 사정을 듣자 하니 90대 노인에게 지하 벙커에 정원까지 달린 2층 주택은 홀로 관리하기 너무 벅찬 곳이라는 것. 한결 생활하기 편하게 가족들이 근처에 살고 병원도 가까이 있는 서울 근교로 이사 갈 예정이라고 하셨다. 하나하나 수긍 가는 이야기지만 여전히 반달집과 할머니를 뚝 떼어 놓고 생각하는 게 이상했다. 아니, 아주 괴상했다. 집뿐만이랴, 할머니가 안 계시는 갈월동을 상상하니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하루 대문 밖에 폐가재도구가 쌓여갈수록 할머니의 부재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게 실감 났다. 이 시대에도 저런 게 존재하고 있구나 싶은 오래된 가구들이 하나같이 할머니에게 천덕꾸러기 같은 짐이었을 것을 상상하니 그것들이 괜히 얄미워 보였다. 할머니 없는 반달집이라니, 집을 튼튼하게 받치고 있던 대들보가 쑤욱 뽑혀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출근길에 할머니를 마주쳤다. 이미 설쌤에게 사정을 다 들었지만, 할머니께서는 나를 붙잡아 세우곤 본인 입으로 이사 가는 사정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셨다. “세는 그대로 받을 거니까 걱정 마세요. 그냥 주인 명의만 바뀌는 거예요.” 항상 세련되고 똑바른 존댓말로 나를 대해주시는 할머니. ‘할머니, 반달집 주인이 바뀌면 이 모든 게 다 바뀌는 거예요. 할머니가 가시면 반달집은 예전 반달집이 아닌 거죠.’ 속으로 생각만 했다. 우린 그만큼 친해지지 못했으니까. 할머니에 대한 애정은 일방적인 것이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을 동경하듯 말이다. 내가 할머니와의 이별을 이렇게까지 아쉬워하는 걸 알게 되신다면 할머니께서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으실지도 모른다. 나는 겉으로 아쉬운 표정이나마 지어 보이며 할머니께 인사를 건넸다. 그게 할머니와 마지막 대화였다.


그러려고 그런건 아닌데 설쌤과의 여행 기간과 할머니 이사일이 겹쳤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스리슬쩍 여행을 다녀오니 집주인이 바뀌어있었다. 밤 9시가 지나면 꺼져있던 1층 거실 조명이 밤 늦게까지 환하게 켜져 있어서 그런가, 대문을 들어설 때부터 미묘하게 집 분위기가 낯설었다. 앞으로 우리 생활은 어떤 국면을 맞이할까? 약간의 걱정을 뒤로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여행 짐을 내려놓고 손부터 씻으려고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웬걸 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예 집에 있는 모든 수도가 막혀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설쌤은 실례를 무릅쓰고 아래층에 내려가 사정을 설명했다. 새로운 집주인과의 다소 민망한 첫 만남이었다. 알고 보니 아래층에서 밸브를 잘못 건드려 2층 전체 수도관을 잠근 게 문제의 원인이었다. 창고 벽 한쪽에 집의 각종 기능을 담당하는 밸브들이 한 데 섞여 있었던지라 그 누구여도 처음이라면 헷갈릴 법 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1층과 2층 거주자 모두에게 불편과 마찰을 끼친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왠지 반달집이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라 믿게 됐다. 그것도 자기만의 확고한 성격을 가진 한 성깔 하는 고등생명체. 짐승 같은 반달집이 ‘어디 한번 나를 길들여보시지.’ 하며 어리숙한 거주자들을 골려본 걸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떠나시고 집의 전체적인 매력이 쇠락한 건 당연한 일. 특히나 마당 정원이 전과 다르게 역력히 황폐해졌다. 무릇 꽃들이 잔치를 벌이는 4월에도 정원은 별다른 소식 없이 그저 듬성듬성했다. 그 꼴을 뻔히 봐놓고도 나는 바보같이 이번 봄에도 양귀비가 피기를 기다렸다. 작년 봄, 양귀비 덕분에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는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양귀비 필 자리가 5월 초여름이 되도록 척박한 채 생명이 움틀 기미가 없는 것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서서히 몇몇 장면들이 퍼즐 조각처럼 짜 맞춰지기 시작했다. 할머니께서 겨우내 양귀비 필 자리를 비닐로 덮어가면서까지 애지중지 관리하시던 모습, 할머니께서 마당 정원을 향해 두 팔 한 아름 벌리시며 “정원은 제 작품이에요.” 하던 모습, 할머니께서 새벽부터 빨간 양귀비 앞에 서서 귀한 보물 보듯 바라보고 계셨던 모습. 할머니 말이 맞았다. 정원은 할머니의 예술 작품이었다. 붓을 든 작가가 없으니 캔버스가 텅 비어 있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단순히 눈요기할 꽃이 없어 아쉬운 정도를 넘어 쉽게 채울 수 없는 서글픔이 찾아왔다. 아니지, 겨우 나 정도가 그러면 안 되지. 그러나 반달집이 내일 당장 폭삭 무너져내린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만 같은 봄이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 마당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다가 바닥 쪽에서 이질감이 느껴져 멈추어 섰다.  새로 덧댄 듯한 시멘트 바닥에는 삐뚤빼뚤 못 보던 손글씨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4월 13일 우리 가족.” 새로운 집주인 가족 일가가 이사 오는 날 새긴 모양이었다. 여기 적혀있는 ‘우리’엔 나나 설쌤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 테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내 이마엔 ‘세입자’라는 세 글자가 새겨지고 있었다. 우습게도 나는 박탈감을 느꼈다. 그건 주제넘은 감정이었다. 반달집에 사는 내내 세입자가 아닌 적이 없었지만, 감히 자신을 이 집의 일가족이라고 여겨온 탓이다. 하지만 출근길에 하루도 빠짐없이 할머니 방 불이 켜져 있는지 확인하던 나인걸. 옆집에서 “요즘 할머니 잘 안 보이지 않았어?”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면 그런 책임이 있는 사람처럼 “잘 계셔요~” 하고 대답하던 나인걸. 할머니 또한 우리를 그냥 월세 내는 사람으로 대하진 않으셨다. 동네 사람들에게 나와 설쌤을 소개하는 할머니의 밝은 표정과 자랑스러운 말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집에 사는 가족에서 방 한 칸 빌려 사는 세입자로, 갑작스러운 신분의 낙차는 내게 큰 상처를 남겼다. 넘어선 안 될 결계처럼 주인집 입구에 놓인 네 글자를 조심스럽게 피해 한 걸음 한 걸음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문 옆, 비실비실대던 팔손이가 어쩐 일인지 올해는 풍성하게 푸르르다. 여덟 손가락을 쫙 펼친 것처럼 생겨서 팔손이라 불리는데 남쪽 지방 식물이라 서울에서 겨울을 나기 어렵다던 할머니의 우려가 무색하게 잘 자랐다. 그런 사정을 놓고 보면 기특한데 그저 맨눈으로 보면 억척스럽게 뻗어나간 풀더미일 뿐이다. 대문을 나서 갈월동 골목으로 나서는 나의 기세는 묘하게 풀이 죽어있다. 이 집의 정수이자 나의 기댈 곳이던 할머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생충이 따로 있나? 어두컴컴한 데 숨어 살며 주인집 냉장고를 터는 족속만 기생충이 아니다. 주인집 안부를 이웃집에 몇 번 전한 걸로 세입자인 줄도 잊어버리고 100년 넘은 집의 역사를 본인의 역사로 편입시키고, 아흔 살 할머니의 당당한 기세를 본인의 자부심 삼아 밝은 대낮부터 어깨를 활짝 펴고 대문을 들락날락하는 나야말로 기생충 중의 으뜸가는 기생충이었다. 그런 내가 숙주를 잃었으니 풀이 팍 죽어버릴 수밖에.


그러다 문득 질려버렸다. 세상 모든 게 제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는 와중에 혼자 예민해져서 상처받고 토라지는 일 따위 너무 질려버렸다. 반달집은 내 것이 아니다. 50년 넘는 세월을 함께한 할머니조차 반달집의 영원한 소유자가 되지 못했듯이. 뻐꾸기가 새끼 키우는 방식처럼 내 자존감을 잘 키워줄 남의 둥지를 찾아 전전하는 일, 인제 그만둘 때가 되었다. 훌륭한 사람의 멋진 이야기에 기대어 사는 기생충으로 영원히 남아있을 수는 없다. 이번 봄에도 필 줄 알았지만 돌아오지 않은 양귀비, 영원히 반달집의 주인일 줄만 알았지만 훌쩍 떠난 할머니, 그리고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진 사랑하는 아빠까지. 당연히 내 곁에 있을 줄 알았지만 지금은 곁에 없는 모든 것이 내게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너의 이야기의 주인이 되어라. 다름 아닌 지금 바로 이곳에서.” 불안한 스물아홉을 지나, 와장창 무너졌던 서른을 지나, 우뚝 멈춰 선 서른하나가 된 건, 과거에 머물지도 미래를 좇지도 않는 비로소 ‘지금 현재’를 살 수 있는 깜냥을 기르기 위한 일련의 과정 아니었을까. 그 모든 과정을 이 반달집에서 겪어냈다는 게 그저 우연 같지는 않다. 그때 항상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 또한 내게 엄청난 위안을 준다.


요즘 사람들이 꿈이 뭐냐고 물으면 속으로는 ‘잘 죽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밖으로는 ‘하루하루 잘 사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내용으로 따지면 피차 다르지 않으니까. 잘 죽는다는 건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두 발 쭉 뻗고 자는 알찬 하루하루가 모여 언젠가 영원히 눕게 될 편안한 자리를 만든다고 믿는다. '해야 할 일'에는 내가 겪은 일을 나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 궂은일도 나의 일, 우울한 마음도 나의 마음, 그래서 기쁨도 온전한 나의 기쁨이 될 수 있도록. 결국 내가 뿌리 내릴 곳은 알량한 내 마음밖에 없다는 사실이 처참하기도 하지만 감히 희망적이기도 하다. 앞으로 좋은 운이 따라 내 그릇이 커지고 깜냥이 길러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인집 할머니를 만나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되었듯이. 그런 운을 기다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마 꽃처럼 계절을 아낌없이 살아내는 것 정도 아닐까? 봄이 와서 꽃이 피는 줄 알았는데 이젠 생각이 좀 다르다. 꽃을 피우겠다는 의지가 봄을 봄답게 만든다. 올겨울에도 반달집이 아닌 어디선가 양귀비 필 자리를 열심히 보살피는 할머니를 그려본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할머니는 건강하실 것이고 할머니는 영원히 젊다. 




이전 27화 대머리 살아 보고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