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의 연애
첫 화
-안녕하세요. 첫날에 잠깐 인사드렸던 ㅇㅇㅇ입니다. 이번 행사 준비하시느라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만나 뵙고 인사드리려 했는데 어제 올라가셨다고 들어서 이렇게 문자로 인사드리게 되었네요.
-아~ 네 맞아요. 워낙 사람이 없으니 할 게 많아서 먼저 올라왔네요. 고생 많으셨어요.
고생 많으셨어요,라는 말에서 이제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 하자는 그녀의 의도가 보였다.
- 저 혹시 괜찮다면, 연락을 따로 더 드려도 괜찮을까요?
공손하게 주고받은 앞 문자 내용에 잘 이어지도록 택한 최선의 질문에 대한 답장은 4시간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아 … 네 연락 주세요
주말에 만날래요?
첫 만남은 연락하기 시작한 지 이틀 뒤였다. 도무지 카톡으로는 친해질 자신이 없어 빠르게 만남을 잡아 얼굴 보고 대화를 하고 싶었다. 글보다는 아무래도 얼굴 보고 대화해야 좀 더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장소는 그녀와 우리 집 중간 지점쯤, 사람이 많지 않은 곳으로 정했다. 문래역에 괜찮은 이자카야가 많다길래 괜찮은 선택지 2곳 정도를 보내주며 선택을 하게끔 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대화를 시작하려니 처음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것은 지난주 함께했던 행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들을 공유하고 겪었던 서로의 애로사항들을 나누었다.
문제는 행사에 대한 이야기 소재가 떨어진 뒤였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이 어색한 기류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나 원래 이렇게 재미없는 사람 아닌데
식당을 나와 잠시 걷다 근처 카페로 장소를 바꿨다. 이제야 알게 된 서로의 기본 정보들을 다 듣고 난 뒤, 머릿속에선 무엇을 더 물어봐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래, 그녀가 했던 말을 이어가 보자. 가만, 지금 무슨 대화 중이었더라?
아, 지금 서로 아무 말 안 한 지 얼마나 지났지?
나 왜 손이랑 고개를 가만히 못 두고 있지?
오늘따라 술이 참 안 받네. 5분 전에 화장실 다녀왔는데 또 가고 싶잖아?
아무 말 없이 정적만 흐르는 이곳에서의 1분이 10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그냥 커피라도 마셨으면 좋으련만. 멍하니 테이블만 바라보다가 어색한 시선 처리는 허공을 방황하다 그녀의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며 뻘쭘한 미소만 서로 건넸다.
당당하게 연락하고 만남도 잡았는데 이 무슨 낭패인가.
“그래도, 연락해도 되냐고 물었을 때 괜찮다고 해줘서 고마웠어요. 이렇게 나와준 것도 그렇고” 꾸밈없는 속마음이 거짓되고 인위적인 행동들을 뚫고 나왔다.
“사실 누가 번호 물어보면 잘 안 줘요. 누가 저에 대해 아는 게 싫거든요”
“그럼 왜 저한테는?”
“바로 연락해도 되냐고 물어본 게 아니라 고생했다는 업무 이야기로 먼저 시작해서 그게 좀 쿠셔닝이 되었던 거 같아요. 아마 연락 얘기를 먼저 했으면 거절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모든 타이밍과 우연이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때는 그렇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떠나 얼마 전까지 말 걸고 싶고 번호 물어보고 싶었던 상대가 내 앞에서 밥을 먹고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신기하면서 좋았다.
잘 잤어요?
매일 아침, 알람을 끄고 잘 잤냐는 카톡이 와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잘 잤어요,라는 연락을 시작으로 매일 카톡을 이어나갔다. 요즘 서로의 직장에서는 어떤 일로 바쁜지 주말에는 어떤 약속이 있는지. 그녀는 응원을 참 잘했다. 저는 친해지면 말투 되게 초등학생 같아져요, 라며 다양한 감탄사를 활용하여 바쁜 나의 일상 속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깊은 공감력으로 내 마음과 힘듦을 잘 알아주었다. 어느 상황이건 무조건적인 내 편이 되어주었다.
그러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점차 바빠지고 밤늦게까지 지속되는 야근에 답장에 쏟는 성의와 정성이 부족해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장문의 카톡을 받았을 때는, 내가 2박 3일간의 긴 무박야근을 끝마치고 주말 내내 뻗어 있다가 깬 뒤였다.
-일은 잘 마쳤어요?
요즘 많이 바빠 보여요. 얼마 전 잘 안 맞는 상사와 일을 같이 해서 안 그래도 힘든 일이 더 힘들다고 들었는데 그건 잘 마쳤을까 싶네요. 몸도 안 좋다고 했었잖아요. 고생 많았어요 주말 푹 쉬어요.
지독히도 위로받고 싶었던 요 며칠이었다.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두기 미안해서 표현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미리 마음을 알아주고 먼저 위로해 주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3주의 시간이 흘렀고 그간 2번의 추가 만남이 있었다. 4주 차가 되어갈 무렵 다음 만남에서 고백을 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