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몽햇살 Jun 04. 2021

반려식물이 키우고 있는 작은 생명체

작고 소중해

 작년 이맘때쯤 수박페페(잎이 수박모양을 닮은 식물. 수박 페페로미아의 줄임말)를 인터넷으로 주문하였고, 더운 날이라 그런 지 도착했을 때부터 식물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더위 먹은 듯 축 처진 이파리는 이내 툭 하고 떨어져 버렸다. 잎모양이 동그랗고 귀여워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에 꽂아두었다. 초반에는 금세 잎이 나지 않을까 자주 들여다봤지만, 잎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잔뿌리만 살짝씩 길어져 나왔다. 새 잎이 나는 건 포기할 때쯤. 1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흐른, 며칠 전 빼꼼히 수박페페 잎이 쏙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물 속에서 고개를 쏙 내민 작고 소중한 새순

plant와 interior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planterior(플랜테리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요즘 반려식물 키우기가 대세이다. 반려식물 키우기는 나의 오래되고 한결같은 취미이다. 식물 키우는 건 단순히 인테리어 효과만 있다기에는 무궁무진한 면을 지니고 있다.


어릴 때부터 피어나는 꽃, 식물, 푸르른 풍경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처음 ‘내손으로’ 식물을 키워본 건 직장생활을 시작할 즈음이었다. 직장에서 누군가가 남는 꽃 포트, 선인장 하나를 주었고, 그때 처음으로 반려식물과 함께 있는 행복감을 느꼈다. 빛이 거의 들지 않던 자취방이라 꽃은 금방 시들어버렸지만, 그때의 선인장은 아직 우리 집 베란다 한켠에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반려식물들이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보고 싶어서 아침에 눈을 뜬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식물이 주는 치유 효과는 엄청나다. 일에 치여 힘든 날에도 묵묵히 내 곁에 있는 식물을 보면 안정감을 느끼고, 내가 무언가를 성장시키고 돌보고 있다는 뿌듯함과 책임감도 든다.


반려식물이 놓인 내 책상

‘식멍’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식멍’은 ‘식물을 보고 멍 때리기’의 줄임말이다.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매일 ‘식멍’을 하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에너지를 충전한다. 너무나도 바쁘고 메마른 일상에서도 무언가를 멍하니 보고만 있는 걸로도 힐링이 되는 건 기적 같은 일이 아닌가. 연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고, 또 어떤 조건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 자기만의 모습과 향기로 성장해가는 식물을 보고 있으면, 나의 모습과도 닮은 것 같아 더 애틋해진다.


힘없이 축 쳐진 채 떨어져 나가서 더 이상 성장할 힘이 없어 보였던 수박페페가 온 힘을 다해 새순을 낸 것처럼, 내 온몸에 힘을 다 쓴 것 같은 순간에도 다시 나도 모르는 새 서서히 온 힘을 비축해, 더디더라도 성장이 이어지길.


내가 식물을 키우는 게 아니라, 식물이 나를 키우는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식물도 거리두기가 필요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