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직장인의 미니멀라이프
말할 힘 조차 없어 결국 입을 닫아버렸을 때, 오로지 혼자 존재하고싶을 때 그럼에도 생각하고 대화하고싶다. 누군가 내 마음을 똑똑 두드려줬으면 좋겠다. 그럴 때마다 나를 다독였던 문장들과 위로했던 글들을 찾는다.
단단한 문장들을 손으로 꾹꾹 눌러 적어보자. 어떤 글이어도 상관없다. 나는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서울대 대나무숲 글 ‘매일 운동화만 신는 친구’를 필사했다. 인터넷에서 부유하는 짧은 글이지만 10년이 가까운 시간동안 내 마음을 일렁이게 만드는 글이기에 필사 대상에 아주 적합했다. 작성자는 장례식장에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온 친구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친구는 구두를 신으면 바늘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겪는 어려움이 있었다. 현실성 넘치는 글은 아래와 같은 문장과 함께 끝맺어진다.
‘타인의 삶을 판단할 권리,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없다.’ 이 짧은 글이 지금까지도 내가 남을 함부로 판단하려고 할때마다 스스로를 제어하는 장치가 된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 의 많은 부분 중에서도 서문을 필사했다. ‘선택사항으로서의 고통’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서문은 달리기에 대한 내용이지만 나에겐 회사를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해서 다닌다는 마음을 먹게 만든다.
에세이의 한 챕터만 옮겨적으려해도 꽤 길다. 그럴 땐 좋아하는 영화의 맘에 드는 한줄평을 따라 쓰는 것도 좋다. 앱 ‘왓챠피디아’에는 거의 모든 영화에 대한 다양한 감상평을 구경할 수 있다. 어쩜 다들 짧은 몇 문장안에 깊은 통찰력을 보일 수 있는지. 한 문장. 두세문장이니 5분도 걸리지 않는다.
퇴근 후 저녁, 책상에 앉아 펜을 들면 묘하게 어색한 기분이 들 것이다. 주말 오전, 가까운 카페를 찾아가 자리를 잡고 글을 따라 쓰면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언가 가치있는 일을 한 것만 같은 기분. 그 기분으로도 필사는 미니멀 취미로서의 가치를 다한다.
어떠한 일이라도 그 일에 정성을 들이면 관조라는 것이 생긴다고 한다. 필사노트가 한장 한장 쌓이면 내가 좋아하는 문장들로만 압축된 하나의 책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