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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 포 Jan 14. 2022

아무튼, 샤워

MZ직장인의 미니멀 라이프


연구결과에 따르면, 샤워에는 많은 효능이 있다. 구글에서 검색을 하면 냉수는 냉수대로 온수는 온수대로 모든 샤워가 효능이 있다. 그래서 '냉수 샤워를 하라는 거야 온수 샤워를 하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어찌 됐든 샤워가 그만큼이나 좋은 활동이라는 뜻이겠다. 보통 여름에는 냉수 샤워를 하고, 겨울에는 온수 샤워를 하니 1년을 놓고 보면 다양한 온도의 샤워 효능을 만끽할 수 있다.




퇴근 후 허물을 벗어내기


집에 와서 일단 씻는다. 무언가를 먹기 전에 일단 씻는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는 것도 씻는 것이지만 되도록이면 샤워를 한다. 샤워는 '나의 허물을 벗어내는 느낌'이다. '퇴근 후, 회사 생각을 하지 말자!'라고 다짐을 해도, 결국 머릿속에는 끝내지 못한 업무보고와 회사 내 인간관계에 대한 상념들이 머리 한 구석을 지배한다. 지금 당장 집에서 고민을 한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내일 출근 후 시작하면 되는 일이지만 쉽사리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럴 때 샤워가 효과적이다. 옷을 벗고 샤워기로 얼굴에 뜨거운 물을 뿌리고, 하루 종일 굽어있던 등에 뜨끈한 물을 뿌린다. 몸에 노폐물이 쌓이는 몸 구석구석을 씻어낸다. 샤워젤 거품이 하수구 밑으로 내려가듯, 내 머릿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상념들이 몸을 타고 하수구로 내려간다. 그래서 퇴근 후 일단 씻는다. 무언가를 먹기도 해야 하고 개인적인 급한 일도 있겠지만 일단 씻는다. 일단 씻으면, 퇴근 후 저녁식사도 개인적인 일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나만의 유레카


나의 상사는 내가 업무용 다이어리에 매일 할 일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한다. 그녀는 샤워를 할 때, 특히 아침 샤워를 할 때 하루 동안 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고 한다. 샤워를 할 땐, 누구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가 된다. 까먹고 있던 '관리비 내기'가 생각날 때도 있고, 잊고 있던 회사의 중요한 업무가 떠오르기도 한다. 샤워라는 것이 하나의 리프레시 작용을 해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러한 리프레시는 카페에 간다거나, 다른 힐링활동을 한다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우울아, 나에게서 떨어져라


우울증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시절, 나의 주말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가슴이 아프다. 외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샤워를 하지 않는다. 식사도 배달음식으로 대체한다. 누워서 의미 없는 핸드폰 보기만 계속한다. 그렇게만 해도 시간은 잘도 간다. ' 다음 주 주말은 조금 다르게 살아야지'라고 다짐을 해도 큰 변화는 없다. 머리로는 다른 일을 하자는 생각을 하지만 5분 뒤에, 5분 뒤에 라는 생각으로 조금씩 미룬다. 그러다 보면 아무 성과도 없고 마음 편히 쉰 것도 아닌 주말이 끝나 있다. 다른 이유로 우울증이라는 것을 인지한 후, 주말의 이런 모습이 우울증의 전형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출을 하지 않더라고 깨끗이 씻고 생활을 하는 것이 우울증 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외출을 하지 않아도 주말 아침에 회사 출근을 하는 것처럼 일단 씻었다. 씻고 나니, 언제든 외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바람을 쐬기 위해 인근 공원에 산책을 할 수도 있고, 사람 구경하러 대형마트에 나갈 수 도 있고, 카페에 커피를 한잔하러 나갈 수도 있게 되었다. 우울한 상태에서 씻는 행위를 완료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당시 '샤워의 가치'를 잘 알지 못했다. 만약 알았더라면, 설령 하지 못하더라도 해보려고 노력이라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우울함을 샤워를 통해 조금은 씻겨낼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러한 기분이 들 때 바로 샤워를 한다. 퇴근 후 남자 친구와 통화를 할 때, 뭔지 모르게 서로의 말꼬리를 잡거나 부정적인 형태의 단어와 문장들이 서로의 입에서 나온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남자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각자 샤워하고 다시 통화하자.


샤워 후 다시 전화기를 들었을 때, 나와 남자 친구의 상태는 이전과 달라져있었다. 퇴근 후 피로감으로 일시적으로 옹졸해졌던 마음의 크기는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긍정적인 말과 힐링이 되는 문장들을 서로 내뱉었다. 샤워 하나 만으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화장실 안에서 그렇게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



[참고]


'엘스비어' 저널에는 찬물 샤워가 우울증을 완화한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찬물에 노출됐을 때 자율신경계가 활성화되기 때문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따뜻한 물 샤워 또한 좋은 효능이 있다. 온수 샤워를 하면 혈관이 확장돼 혈액순환이 한층 활발해지고 노폐물 배출이 촉진된다. 면역 기능을 가진 백혈구의 활동이 활발해져 면역력도 높아진다. 물 자체의 수압·부력은 단단하게 굳은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줘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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