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직장인의 미니멀 라이프
TV에서 위안을 받던 아이에서, TV 없이 살아가는 20대가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TV란 가히 커피, 담배, 술과 함께 '중독'의 대상이라고 불리는 무시무시한 존재이다. 그 존재로부터 자유로워진 이야기이다.
TV광 소녀에서 TV 없이 사는 직장인으로
예능프로그램 아는 형님에서 김희철이 스스로를 TV박사라고 칭하는데, 나도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했다. 주말에 방영하는 해피타임 같은 프로그램을 열심히 봐서, 70,80년대 만들어진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의 내용도 곧잘 알았다. 어떻게 그 프로그램을 아냐며 애어른 취급을 받기도 했다. TV에 관심이 많아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방송국 PD가 장래희망이었다. 2006년부터 방영을 시작한 '무한도전(시초 무모한 도전)'은 나에게 신선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였고, 나도 언젠가 커서 누군가에게 위로와 미소와 눈물을 건네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대학교를 입학하기 전까지 매년 말 완성되는 학생기록부 상의 나의 장래희망은 방송 PD였다.
그런데 고3 시절부터 TV가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그 해는 2014년으로 TV라는 매체의 독주체제에서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OTT매체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던 시기이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와서 아무리 리모컨을 돌려도 한 채널에 정착할 수 없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볼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으려고 노력을 해도 리모컨 운동을 하다가 실패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무한도전에도 흥미를 잃었다. (이후 무한도전은 2018년 3월 31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TV는 재미없다'는 생각을 가진 상태로 나의 20대가 시작되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비는 시간이 꽤 많아졌다. 마음대로 쓸 수 있기에, 역설적으로 꾸준히 계획해서 써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만약 집에 TV가 있으면, 피곤할 때 아무 생각 없이 TV만 쳐다보고 있는 시간들이 늘어갈 것이 눈에 선했다. 재미도 없고, 영양가도 없는 것을 바라보느라 나의 시간을 허비할 것이 왠지 모르게 아깝게 느껴졌다. 대학교 시절 첫 자취를 시작하며 계약한 원룸에 기본 옵션으로 집안에 있던 TV를 철수했다. 동기 친구 한 명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둘의 의견을 모아 TV를 없앴다. 그리고 지금, TV 없이 산지 8년이 됐다.
TV 없이 살기! 불편함은 없었을까?
라고 물어본다면 전혀 없다.
뉴스가 보고 싶으면, 유튜브 뉴스 채널을 구독하여 온에어 방송을 보면 된다. YTN, 연합뉴스 등 24시간 뉴스정보를 제공하는 티브이 채널의 방송을 공짜로 시청할 수 있다. 예능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고 싶으면, 유튜브에 뜨는 요약본 클립들을 찾아보면 된다. 쓸데없는 부분들을 볼 필요 없이 하이라이트만 볼 수 있어서 좋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한편당 1시간 20분 정도이다. 웬만한 영화 한 편 러닝타임이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 정주행 하는 것이 너무 지루하고 버겁다. 한국 드라마 보는 것이 더 귀찮아졌다. 20살 이후로 우리나라 드라마 중 정주행 한 것이 거의 없다. 정주행을 했던 드라마들은 한 에피소드 당 24분 정도였던 외국 드라마들이다.
TV가 정말 좋으신가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말년에 몸이 안 좋으셔서 누워서 TV를 보셨다. 오랜만에 자식들과 손자들을 보아도, 굳은 자존심 때문인지 우리를 바라보기보단 계속해서 TV를 보시곤 했다.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TV를 보다 낮잠을 자다,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다시 TV를 보다 잠을 자곤 한다. 나의 상사는 새롭게 TV를 구매하며 TV가 없던 며칠 동안 거실에 노트북으로 TV를 대신했다고 한다. 초등학생 저학년의 아이는 매일 상사에게 TV는 언제쯤 설치되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언젠가부터 TV에 완전히 뺏겨버린 말년과 주말이 정말 괜찮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80대, 50대, 40대인 그들은 모두 TV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나는 앉아서 TV를 보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명상하는 시간이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준다고 느낀다. 이것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관의 객관화를 하여 나의 모습을 내가 바라보았을 때, TV만 공허하게 보내는 모습이 안쓰럽다고 '느끼는 것이다'.
2500원, 한 달에 커피 한잔이 내손에
금전적으로 매 월 2,500원을 아낄 수 있다. TV를 보면 매 월 내는 전기세 고지서 안에 KBS 수신료를 강제적으로 납부해야 한다. KBS 채널을 보든 말든 집에 TV가 있으면 무조건 매월 2,500원을 납부해야 한다. 만약 이 돈을 내고 싶지 않다면 TV를 물리적으로 집에서 제거하고 이를 한전 고객센터에 알리면 된다. 큰돈은 아니지만 1년이면 3만 원이라는 돈을 아낄 수 있다. 두 달치 내 핸드폰 요금과 맞먹는 돈이다. 비는 시간을 알차게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TV 버리기'이지만, 지금은 비는 시간을 그대로 비어둘 수 있게 하기에 만족스럽다.
[참고] 원룸에서 TV 없애고, 전기 고지서 내 KBS 수신료 제거하기
1. 집주인에게 연락하여 TV 반납 의사 전달하기
※ 보통 집주인께 말씀드리면, TV를 관리인 사무실로 가져가신다.
2. 한전 전기 고지서 내 콜센터로 전화하기
※ KBS는 TV수신료 수납 업무를 한국전력에 위탁 대행하였다.
3. 한전 콜센터 직원에게 '물리적 TV제거 상태'와 'TV수신료 제거'에 대한 의사 밝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