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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제 Feb 07. 2024

눈치

바람

가장 먼저 눈치를 챈 건 동생이었다.

같은 방을 쓰던 우리는 출근할 때마다 종종 서로의 옷을 빌려 입고 나가곤 했다.

서로 크게 옷에 대한 애착이 없고, 말없이 입고 나가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격들이었다.


퇴근하고 온 동생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언니 담배 피워?"



여느 날과 똑같이 갑갑한 마음에 습관처럼 담배를 찾고, 

평소 같았으면 바로 서랍 안쪽에 넣어놨을 것을 그대로 잊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동생은 아침에 그 외투를 입고 출근하다가 발견한 듯했다.



"내가 아침에 출근하다가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알아? 기가 막혀 가지고 정말-"



쉬이 인정을 하자

하루 종일 물어볼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을 동생이 우다다 말을 쏟아냈다.

대수롭지 않은 듯, 성인이니 상관하지 않겠다던 동생은 부모님께는 말 안 할게- 라며

내게 가타부타 이유라거나, 계기라던가에 대한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잠들기 전 서로에게 잘 자라며 인사를 하고 잠에 들 채비를 할 때에 조용히 묻는 것이었다.



"무슨 일 있어서 그런 건 아니지?'




어느 날 저녁 엄마는 

증명사진을 찍고 왔다는 나를 바라보며 '증명사진보다 자연스럽게 웃는 게 훨씬 예쁜데 우리 딸'이라며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 내 얼굴과 사진을 비교해 가며 볼멘소리를 했다.


사진을 찍을 때면 엄마의 특별한 원픽이 있었다.

눈까지 환하게 웃는 사진.


입꼬리만 씩 웃으며 찍은 사진들은 엄마의 원픽에서 늘 제외됐다.

엄마는 언제나 활짝 웃는 사진들이 좋다며

많은 증명사진 중 한 장을 빼내어 가 안방 가족사진 액자 한 귀퉁이에 끼워놓곤 했다.


내게 저녁을 차려주고 여느 때와 똑같이 별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얘기를 하던 중.

갑작스레 울리는 전화벨에 휴대폰을 챙겨 안방으로 들어간다.

가지나물에 시금치 된장국. 

파 안 넣은 계란찜과 용가리 치킨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한 상 차려진 저녁상이었다.


통화를 마친 엄마는 사뭇 가라앉은 표정으로 방에서 나오고선 다시 내 앞에 자리 잡았다.



"누구야?"

"으응 고모야"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얘, 고모 글쎄 갑상선 암이라지 뭐니"



유쾌하지 않은 소식으로 시작된 대화였다.

그중 가장 메인이 되었던 얘깃거리는 고모의 딸, 그러니까 내게는 사촌언니의 이야기였다. 

자기 엄마가 갑상선암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투병생활을 하려고 하는데, 살가운 말 한마디 안 하는 언니를 고모가 서운해하더라는 게 주된 이야기였다.



"아휴, 정말. 아이 그래 하긴 지현이는 원래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 애가 성격도 무뚝뚝하고, 밖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있었다. 힘들면 힘들다 원체 말을 안 하는 애니까 말이야. 조금 말이라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지현언니 원래 그러잖아, 장녀들은 다 그런가 보지 뭐. 오죽하면 k-장녀라는 말도 있겠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를 연발하던 엄마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엥 나 왜! 나만큼 살갑고 어? 잘 떠드는 딸이 어디 있다고?"



엄마는 모자란 밥공기에 아쉬워서 남은 밥풀만 싹싹 긁어먹는 내 밥공기에 턱 하니 주걱에 덜어온 밥을 더 얹어준 채 말을 이었다.



"잘 떠들지- 떠들 떠들, 오죽하면 별명이 떠벌이겠니 네가? 그런 거 말고 말이야, 오늘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뭘 했고, 사장이 뭘 했고 그런 거 엄마는 아무런 관심 없어. 너 힘든 거 말이야.

엄마는, 네가 맨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종알종알 떠드는 걸 보면, 아 얘가 이렇게 속없이 떠긴 해도 지가 마음에 품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을까 싶어. 너 얼굴 보면 엄마는 다 알아.

딸- 엄마한테도 얘기 좀 해줘."




고모의 항암 소식은 사촌언니에게 진작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붙임성이 없고, 살갑지 않다던 그 딸은

어딘가에서 밤새 엉엉 울다가 퉁퉁 부은 눈으로 나를 만나러 왔다.


따뜻한 라떼를 마시며 언니와 나눴던 대화도 기억한다.

고모의 항암도 고모가 자신에게 서운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언니는 자신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했다.

한참의 대화 끝에 엄마를 보살피기에 남동생 둘은 적합하지 않다며 간신히 웃어 보이기도 했다.




고모의 항암 소식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지현언니의 얘기가 나오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모의 근황을 물었다.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피우고, 주머니에 넣어 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옷이 내가 가진 아우터 중에 동생이 가장 좋아해서 자주 입고 나간다는 것도,


실수가 아니었다.


나는 눈치를 채 주길 바랐나 보다.

나를

내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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