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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제 Feb 06. 2024

운이 좋은 아이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7개월.

그렇게 도망치듯 온 회사에서 내가 버틴 기간이었다.


처음엔 마냥 좋았다.

그렇게 원하던 독립된 공간, 그렇게 원하던 나만의 집이 생겼다는 기쁨에 행복하기도 했다.


이제 마음놓고 울고 고민하고 즐거워 할 나만의 공간이 생겼고, 할머니와도 멀어졌으니 헛된 생각에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되어 마음도 편해졌다.


대학교때 6명이 부대끼며 살던 기숙사와는 다르게

회사에서 제공되는 사택은 2인실이었다. 난 운이 좋게도 같이 살 룸메이트가 배정이 안되서 혼자 지낼 수 있었다.


사택에서 회사까지는 걸어서 약 8분거리에 위치해있었는데, 사택을 나서면 보이는 가수원길따라 쭉 올라가다, 횡단보도를 한번 건너면 회사 입구가 보였다.


마냥 좋고, 행복하기만 했던 회사생활은

문제를 깨닫는 순간 끝나버렸다.


문제는 오직 하나,

나 자신이었다.




대학교 시절.

나는 소위 운이 좋은 아이였다.

운이 좋다거나, 일복이 없다거나

같은 과 동기는 내 손을 보면서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하곤했다.

'너는 참 일복이 없어, 이런 손이 일복이 없는 손이야'


다 같이 일을 해야 하거나 무언가 현장에 나갈 일이 생겼을 때 나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꼭 그때 다른 스케줄이 잡혀있었다. 교수님의 심부름이라거나 수업이라거나, 개인 실험이라거나.

그런 식으로 종종 운 좋게 일을 피해 가곤 했다.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교수님이 먼저 부탁하신 서류 작업이나 다른 일정을 보내고 있노라면 땀에 찌들어서 지친 기색으로 현장에서 돌아온 친구들이 와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듣던 소리였다.

부러움이 섞인 칭찬이었겠지,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 역시도 칭찬을 받은 것 마냥 멋쩍은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칭찬이 아니었고 웃을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난 귀중한 경험을 할 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적어도 전공을 살려서 계속 이 길을 가려고 했다면 더더욱 중요한 것이었다.




운이 좋은 난 현장경험도 부족했고,

'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부족했다.


면접에서 직무관련 경험을 물어봤을때

자신 있게 할 줄 안다고 대답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한가지 간과했던 것이 있다면

「그 경험들 중 내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하고, 생각해서 성공했던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라는 것이었다.


보잘 것 없는 작은 프로젝트 하나에도 대여섯이 달려들어 서로 도와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내가 정의내린 나] 와 [실제의 나]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1인실의 사택, 따박따박 나오는 높은 급여, 정시퇴근, 각종 연차와 복지 등은 [실제의 나]가 아닌 [내가 정의내린 나]에게 주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무력함과 무지함, 무능력함 자책하고, 후회하고 그럼에도 변함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던 날들이었다


그래도 회사는

좋은곳이었다.


력서 사기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무능력한 나를 어떻게든 같이 끌고가고자 해줬고

분위기에 적응 못하는 나를 데리고 드라이브겸 상담도 해주기도 했다.


능력있는 상사와 세심한 사수, 배려있는 동기들까지...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 기대와 노력에 부흥하여 나도 열심히 해봐야지 라고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는 나와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한숨쉬던 그들을 보며

나 하나 때문에 모두가 고통받는구나 라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사직서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축하할 일이 생겼다.


설상가상.

이라고 표현해야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동생의 취직 소식이었다.


부모님은 휴대폰에 담겨있는 모든 연락처마다 전화를 해댈 기세였다. 아빠는 술자리가 잦아졌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말리지 않았다.


머리도 좋았지만 특유의 그 악바리 성질과 계획성.

성실함과 꾸준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했던가,

오히려 늘어난 문제들이 날 괴롭혔다.


도피성 선택들로부터 한가지 알아낸 게 있다면

내 모든 문제들의 원인은 나라는 거였다.


애꿎은 할머니 탓만하던 어리석은 나

후회할 선택을 한 것도 나.

기회를 놓친것도 나.


초에 도망쳐봤자 소용없는거였다.


나름 해결방안이자 도피처였던 담배와 모텔도 그저 잠깐 순간일 뿐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진 않았다.


매일 아침 분주하게 출근 준비를 하는 부모님과 동생의 소리를 들으며

아 정말 행복한 가정이구나,

정말 이상적인 가족이구나 라는 생각을 .


저 그림이 지금 가장 완벽하고

여기 는 나는 없어도 될 존재라 

무능력한 나, 무지한 나, 무력한 나.

그리고 쓸모없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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