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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제 Feb 05. 2024

화살

이해한다. 머리로는


집이 몇십, 몇백만 원이면 살 수 있는 니고, 벌이는 그대로 예산은 한정적이다.

아이들은 언젠간 커서 독립을 할 테고,

머릿수에 맞춰 큰 집을 덜컥 사기엔 금전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무리라는 것 알고 있다.


반항하는 쪽은 가슴이었,

가장 쉬운 답은 탓이었다.

화살은 우리 집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무력한 사람에게 향했다.





할머니.


당신이 한 모든 행동에 악의는 없겠지

당신아들만을 위해, 또 딸만을 위해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그저 옛사람일 뿐


먹을 거 입을 거 귀하던 시절에 일찍이 남편을 떠나보내고 핏덩이 같은 여섯 명의 자식을 키우는 당신의 생활력과 고집 같은 것들은 한평생을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당신 귀한 장남이 낳은 첫 딸, 첫 손녀딸이 나였다.

그 무한한 사랑과 애정 어린 손길에 답하듯 그 손을 잡아야만 밖을 나서고, 그 품 안에서만 잠을 청했다. 

오래오래 사세요 라는 카드를 읽으면서 언젠가 내 곁을 떠나갈 날을 떠올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둘 사이를 갈라놓을 것은 없었다.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 애틋함과 사랑은 내가 커가면서 점점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밥 한 끼 안 먹으면 그저 굶어 죽는 줄 알고,

수저에 밥 한술, 계란 프라이 한 조각 올려 쫓아다니며 한 입만 먹으라고 애걸복걸하던,

그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라 방으로 들어가 버리면

상대방이 일을 하는지, 사람을 만나는지 생각도 배려도 안 한 채 수화기를 들어 며느리의 휴대폰 번호를 누르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쯤이었나 첫 생리를 했다. 

엄마는 나를 앉혀놓고 생리대의 종류와 사용법, 생리대를 쓰고 버릴 때의 매너에 대한 교육을 해주셨다.

아빠는 엄마가 해놓은 사전 연락에 따라 장미꽃과 케이크를 사 오시곤 머쓱한 표정으로 내게 건네주셨다.

거창하게 파티를 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그렇게 지나간 첫 생리였다.


다음날 학교,

책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노트를 빌려달라며 다가온 친구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가방 문을 열었고

가방 속에는 생리대와 팬티를 명주실로 한 땀 한 땀 엮어 꿰매 놓은 것들로 가득이었다.

노트를 빌리겠다던 친구는 아무 말 없이 자리로 돌아갔고, 중학교 2학년의 어렸던 나는 수업을 듣지도 않은 채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예전과 같은 애정도 사랑도 없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오래오래 사세요' 라며 품에 폭삭 안기던 어린아이는 5년 동안의 독립을 끝내고도 집에 펼쳐지는

질릴 대로 본 그 여전한 풍경.


작은 방 한편에 살고 있는 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저 작은 방이 내방이었어야 해.


조그맣게 틈을 비집고 자라난 생각은 점점 사람 자체를, 그 존재 자체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생각을 멈추고자 몸부림쳐봐도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난 그 감정에 이리저리 휩쓸렸고, 매일 새벽 계속되는 생각과의 사투 끝에 지쳐 쓰러지는 쪽은 나였다.


새벽녘 하루도 빼먹지 않고 들려오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기도를 외는 간절한 쇳소리는


저 기도가 가족을 위한 것일까

자신을 위한 것일까

무슨 열렬한 염원을 빌고 있길래 저렇게 성실하고도 성스러울 수 있을까.


내가 당신이었다면  작은방에 살고 있는 내 숨을 거둬가 달라고 기도했을 텐데


생각이 당도한 곳은 낭떠러지였다.

생각이 먼저였고, 인지는 나중이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인지한 순간.

발 끝부터 온몸을 휘감는 죄책감에 나는 또다시 도망을 선택했다.


천륜이었다.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은 없을 것라며

스스로도 용서하지 못할 만큼 소름 끼치는 생각들을 떨쳐내기 위해 무엇으로라도 도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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