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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Lisa Oct 19. 2023

동생은 떠나고

하와이 열이틀, 나 혼자 창가에

"이모 사랑해" 하나뿐인 여조카 J가 꼭 껴안고 입을 맞춘다. 처음으로 사랑을 말하고 아쉬운 듯 떠난다. 우리보다 학교가 한주 일찍 시작하는 캘리포니아로 오늘 여동생과 조카들이 비행장으로 간다. 열흘 전 공항에서 만난 초등 5학년 여조카는 팬데믹동안 사춘기에 접어들어 낯을 가렸다.


얼마 전까지 세상 까불거리던 아이가 키도 훌쩍 자라 조숙한 숙녀가 되어있었다. 딸이 없는 나도 오랜만에 만난 예민한 나이의 J가 조심스러웠다. 그날 저녁 책을 읽으며 쉬고 있는 나에게 아이는 다가와 "이모는 책이 좋아? 우리 엄마는 책 안 읽어. 안 좋아해." 하며 말을 걸어왔다.


"으응 너희 엄마는 어려서부터 책 보다 손으로 만들고 그리고 하는 걸 더 좋아하고 아주 잘했어. 이모 책 숙제에도 그림을 그려놔서 이모한테 많이 혼났었어." "엄마가?" 하며 깔깔 웃는다. 몸만 컸지 여전히 아이 같은 J가 사랑스러워 한참을 신나게 동생의 어린 시절 만행을 풀어놓았다. 같이 웃고 뒹굴며 금세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J가 더 애틋해지고 더 내 마음깊이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우리 자매는 그렇지 못했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많이 변해있었다. 여행 전부터 들떠서 지나온 시간들을 만회할 정도로 잘 놀아보자 다짐했던 우리는 매일매일 삐꺽거렸다. 시작은 첫날 저녁준비 때부터였다. 집 이사와 공사로 오랫동안 집밥을 먹지 못한 조카와 여동생을 위해 또 타지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온 남동생을 위해 가능하면 아침과 저녁은 집밥을 해줘야겠다 마음먹었었다.


그날 저녁 치킨 카레를 만들려는데  여동생이 자기는 더 이상 치킨을 잘 먹지 않으며 J는 사과와 토마토가 들어간 카레를 먹지 않는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우리는 아무거나 다 잘 먹으니 너랑 애들이 좋아하는 걸로 네가 만들라 하고 손 씻고 그래로 주방을 나왔다.


우리는 둘 다 그렇지 않았다. 여동생은 배려가 몸에 밴 말 수 적은 조용하고 여성스러운 스타일이었다. 나는 누군가 건의를 하며 최선을 다해 원하는 것을 제공함에 어떤 희열을 느끼는 적극적이고 좀 요란스러운 사람이었다. 예전의 여동생이었다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언니 이건 넣지 않으면 어떨까? 치킨을 조금만 넣으면 어떨까?"아주 조심스럼 게 말했을 것이다.


예전의 나라면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뭐? 닭이 싫어? 그럼 뭐가 좋아? 돼지? 소? 지금 가서 사 올까? 사과랑 토마토 아주 조금만 잘게 썰어서 달달 볶으면 어떨까?" 번잡을 떨었을 것이다. 우리는 여행 첫날부터 서로에게 당황했다. 그리고 함께 다니며 목소리가 커진 만큼 주장이 강해진 여동생과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조용히 혼자 몰두하는 나를 마주했다.


한국을 떠나온 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엄마는 재혼했고 우리에게는 'our mom', 'our dad', 형제자매, 각자의 배우자와 아이들이 생겼다. 오랜만에 서로의 집에 방문할 때면 멀리서 날아온 반가운 손님이 쉬다 갈 수 있도록 대접하는 주인으로 만났다. 이렇게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함께 먹고 자고 이동하며 여행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얼마나 변해가고 있었는지 서로 알지 못했다. 아니면 우리는 옆에 있을 때에도 어린아이들을 살피고 남편들을 신경 쓰느라 서로에게 집중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마흔의 우리는, 서로가 알던 젊은 날의 우리가 아니었다. 스스로도 변해도 이렇게까지 변한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예전의 자신들을 기억 속에서도 잊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를 예쁘게 추억하고 있었다.


함께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각자의 지난 시간의 생채기들을 적나라하게 마주해야 했다. 아마도 서로의 기대와 어긋난 상대에게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언제나 그렇듯 남편들을 원망했다. 이혼한 부모도 원망해 봤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그렇기에 우리는 많이 아팠다.


소중한 추억이 뒤틀리고 있었다. 서글펐다. 그 와중에 서로의 마음을 할퀴고 스스로에게도 새로운 흉터를 남겼다. 보듬어줘도 모자랄 상처투성이 사랑하는 동생에게 나는 커다란 검은 문신을 남겼다. 그 애틋한 동생이 떠나고 바다를 향해 내어 진  큰 창문 앞에 앉는다. 또다시 슬픔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이젠 내 주변엔 예전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변한 현제의 모습만이 존재한다. 바다로 뛰어 들어가고 싶다. 나 다움을 기억해주고 있는 내 동생의 깊은 심연 속에서 들어가 한동안 둥둥 떠다녀야 할 것 같다.


아침부터 서핑 갔던 남동생과 아이들이 바다에서 돌아온다. 휴가 마지막 날, 오하우의 현지 서퍼들의 바다로 파도를 타러 나갔던 남동생이 아이들과 즐긴 멋진 파도를 자랑한다. 아이들이 기억할 오늘의 하루가 만족스러운 듯 보람과 기쁨을 나눈다. 둘째와 셋째가 시끌벅적 격양된 목소리로 알 수 없이 웅얼웅얼 자기들끼리 떠든다. 즐거웠던 모양이다.


햇볕볼일 없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며 바쁘게 지내온 큰애가 그간 하얗고 연약해진 피부에 일광화상을 입고 과하게 아픔을 떠벌린다. 빨갛게 익은 목과 어깨가 안쓰러워 알로에를 조심스럽게 바르다가도 어린아이 같이 비명을 내지르는 큰아들에 짜증이 올라온다. "선스크린 잘 바르라고 했잖아. 아직 일정도 남아있는데, 조심하지 않고 이게 뭐야!" 등짝을 한대 내리치고 싶지만 꾹 참고 알로에를 덧 발라준다.


오늘도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으로 내 마음속의 울림을 잠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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