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열하루, 라니카이 필박스
어린 시절 아빠의 서재는 나의 놀이터이자 피난처였다. 엄마와 동생을 피해 아빠 책상밑으로 뛰어들어가 숨으면 아빠는 항상 날 보호해 주었다. 아빠귀에 소곤소곤거리다, 인기척에 얼른 책상 아래도 들어갔다, 키득키득 거리며 아빠가 입에 넣어주는 사탕을 오물거리며 아무도 날 찾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놀았다. 아빠가 나가고 없을 때도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 마냥 기다려도 좋았다.
아빠에게는 항상 은은하고 부드러운 고급스러운 향기가 났다. 어리고 여린 코에도 그 향이 좋았다. 정갈한 아빠의 서재는 그의 향을 품고 있었다. 책과 LP판이 빼꼭하게 둘러있고 엄마를 그린 유화 흑백의 누드사진 조각품이 화려하지 않고 무심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학자의 서재 같았던 그곳이 나의 방공호였다.
래니카이 필박스(벙커) 트레일 (Lanikai Pillbox Trail)은 어렵지 않은 하이킹 코스지만 초입이 꽤 가파른 급 경사다. 나 같이 어리숙한 사람은 구간에 설치되어 있는 밧줄을 붙잡거나, 길가의 나뭇가지들에 의지해, 아이들이 뻗어 잡아주는 손을 잡고 올라간다. 그런가 하면 젊고 씩씩한 엄마는 혼자 아이를 캐리어 백팩에 짊어지고도 쉽게 올라간다. 지치지도 않는 듯 숨도 차지 않고 잘 오른다.
어딜 가나 이런 멋진 사람들이 항상 나를 작게 만든다. 그저 스쳐 지나는 이 짧은 순간에도 그 주체적인 건강한 엄마와 그 엄마가 자랑스러운 듯 웃고 있는 아이를 바라본다. 그때 둘째가 한마디 한다. "엄마! 저기 아기 업고 가는 엄마 좀 봐봐." 짜증이 올라온다. "부러우면 저 엄마 쫓아가던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작은 체격만큼이나 마음이 쪼잔한 나는 잠시 땅을 보고 언덕을 오른다.
땅 트인 전경이 위로해 준다. 대 자연 앞에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작아진다. 무의미해진다.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태양이 떠오른고 있음을 알려주는 잔잔한 바다의 전주곡이 울려 퍼지듯 어둠의 커튼이 조금씩 열린다. 미국 최정에 병력이 집결해 있었던 하와이. 그 역사의 일부분인 콘크리트로 지어진 첫 번째 기관총 보관소 (Pillbox)에 도착한다.
회색의 진지한 벙커는 칼라풀한 그라피티로 단장을 하고 있다.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추는 젊은이들 코카콜라 광고를 찍어도 좋을 모양으로 여행객을 맞는다. 산 능선을 따라 더 걷는다. 해돋이를 감상하기 최적인 산중덕에 자리 잡고 있는 쓸모 없어진 두 번째 벙커가 보인다. 아이들이 서둘러 오른다.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본다. 주변을 둘러본다. 이미 아름답다. 이대로 쭈욱 두 번째 벙커를 지나 산과 바다 중간하늘 위에 줄을 걸어 놓은 듯한 능선길을 위태위태 타다 보면 서쪽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깊은 산으로 들어가 다시 돌아 나오지 못할 것 같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떨어지거나 방향을 잃고서 영영 사라질 것 같다.
나는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남동생이 내어주는 어깨를 딛고 큰아들의 손에 끌려 높은 방공호 위로 올라간다. 오늘도 최고의 태양을 만난다. 새벽 바다 공기가 막혀있던 목구멍을 열어준다. 작아진 마음을 원래보다 더 크게 늘려준다. 산을 뒤로, 동 남 북 태평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작은 섬 두 개가 봉긋 떠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저 멀리에도 바다 위에 섬들이 손짓한다.
해가 오르고 모든 것이 빛난다. 눈이 부시게 빛난다. 대륙과 대륙사이 천국같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바다와 하늘에 가까운 이곳에도 방공호는 필요했다. 완전한 평화가 약속될 때까지 혹은 더 큰 위협에 벙커로써의 역할이 무색할 때까지는. 나도 그랬다. 어린 시절 나만 쫓아다니며 내 숙제에 낙서하는 어린 동생으로부터 잔심부름시키는 엄마로부터 혹은 억울하게 야단맞고 위로가 필요할 때 아빠는 나의 방공호가 되어주었다.
아빠의 책상 아래에서 불평도 하고 울기도 초콜릿을 얻어먹으며 충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 나에겐 이런 작은 콘크리트로 지어진 방공호도 아빠의 서재도 따듯한 휴식처도 찾을 수 없었다. 남편이 출근하는 매일 아침 6:15이면 벨을 누르고 찾아오는 시아버지. 남편 몰래 내 신용 카드를 긁고 나 몰래 남편에게서 목돈을 빌려가는 누가 봐도 천사 같은 교회 권사 시어머니. 그들로부터 날 감싸줄 보호자가 내편이 필요했다.
남편이 단 한 번도 나의 방공호가 되어주지 않았다. 아마 그 역시 자라면서 무너져가는 창고의 그늘에 조차 기대본 적이 없을지 모른다. 아니면 폭력적인 시아버지를 피해 위로받을 수 있는 유일한 보호소가 교회였던 불쌍한 시어머니의 튼튼한 콘크리트 벙커로 굳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필요했다.
이제는 필요 없지만 그때는 간절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으로부터 잠시나마 피할 곳이,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온기에 기대어 안정을 찾을 곳이, 다시 힘을 얻고 내 발로 나갈 때까지 쉴 수 있는 그런 아빠 책상 아래 같은 방공호가 절실했다. 하지만 남편의 엉망진창 서재는 내가 발 디딜 틈이 조금도 없었다. 이제는 그리운 아빠의 책상도 꿈꾸던 남편의 서재도 필요 없다. 나에겐 나만의 서재가 생겼다
해가 하늘 높이 위엄 있게 올라갔다. 어둠도 찬란한 금빛도 사라졌다. 에메랄드 빛 바다와 푸른 하늘 사이 작은 두 섬 모쿠누이(Moku Nui) 모쿠 이키(Moku IKi)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킨다. 다시 내려간다. 왔던 길을. 오를 때보다 내려가는 것은 어쩌면 더 힘들다. 잘못하면 굴러 떨어져 최소 골절상이다. 경사가 심한 곳에선 위에서 한 아이가 잡아주고 또 다른 한 아이가 내려가 받아준다.
균형도 잃고 다리에 힘이 풀려 길거리 풍선 인간처럼 펄럭거리며 내려간다. 급경사는 미끄럼 타듯 땅을 쓸며 지나간다. 황토색 흙먼지를 몸에 뒤집어쓴다. 아이들이 안타까운 것인지 신난 것인지 깔깔 뒤집어지게 웃는다. 나도 웃는다. 마음껏 구르고 내려가 더러워진 몸은 바다가 흔들어 헹구면 된다.
바다가 나를 기다린다. 그 바다로 풍덩 들어가 파도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누워있으면 된다. 먼지도 눈물도 아픔도 모두 씻겨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