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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Lisa Oct 20. 2023

누가 타고 있는지 모르는 보트를 타고

하와이 열사흘, 진주만 애리조나 기념관

하이킹을 하고 내려와 차를 살핀다. 차 하단 하얀 페인트 안의 쇠살이 드러나게 스크레치가 나있다.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난 대미지(damage) 보험을 따로 들지 않았다. 주요 렌터카 업체는 보통 일주일을 기준으로 가격을 측정하는데 하와이에는 온라인 베이스로 구축된 Turo rental라는 서비스를 통해 차주에게 직접 저렴하게 대여할 수 있다. 특히 단기는 대형 렌터카 업체와 비교할 수 없다.


큰 사고가 나면 어차피 기존 내 차보험으로 커버하면 되기 때문에 추가 요금을 내기 싫어 자잘한 보험을 따로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타지에서 난 아주 조심조심 운전할 생각이었다. 역시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어떤 차주도 차 아래까지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 어제 조심성 없이 선번(Sunburn) 입어왔다 야단친 큰애 보기 민망하다. 한편으론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내 차처럼  맘 편하게 운전할까 싶다.


여전히 벌겋게 익은 목과 어깨의 통증을 참지 못하고 아이처럼 깽깽거리는 정신 사나운 큰애에게 선스크린도 제대로 못 바르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와줄 거냐며 잔소리를 한탕하고 집에 내려놓는다. 작은 아이 두 명과 진주만 애리조나 기념관 (Pearl Harbor USS Arizona Memorial)으로 향한다. 미국의 국립묘지인 이곳을 방문하려면 짧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셔틀 보트로 이동해야 한다.


현재 미군 입대 조건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17살 이상이다. 하지만 1940년에는 16살이었던 것 같다. 한 동네에서 자란 네 명의 16세 소년들이 동반 입대한다. 그중 14살의 한 아이는 친구들과의 함께 하기 위해 나이를 속이고 입대한다. 그리고 일 년 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15살 우리 막내 나이로 최연소 전사자가 된다. 그 어린 소년을 포함 1177명의 젊은 군인들이 수장되어 있는 국립묘지 진주만 애리조나 기념관을 향하여 새하얀 셔틀 보트에 오른다.


예약된 인원 모두가 배에 오르자 칼 주름 잡힌 유니폼을 입은 해군이 절도 있고 경건하게 말한다. "당신과 함께 탑승하고 있는 사람들 중, 당신 옆에 앞에 뒤에 앉아 있는 누군가는 관광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추모하러 온 분 일수도 있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이즈의 보트에 누군가 애도의 마음으로 함께 타고 있을 수 있는다 생각에 마음이 출렁인다. 구부정하게 기대었던 자세를 좀 더 바르게 세워 앉아본다.


맞다. 우리는 불특정 다수와 함께 배를 타고 난파선을 향해 국립묘지로 향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항상 함께하는 타인이 품고 있는 상실 상처 슬픔 아픔을 모른 채 지내온 건 아닐까. 직장 학교 그리고 가정에서조차 드러나지 않는 그런 것들을 모른 채 함께 표류해 온 것은 아닐까. 난 여전히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내 부모도 함께 살을 섞고 아이를 낳은 남편도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처음 탔던 작은 배는 내 동생 엄마 아빠 나 네 명이 타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사랑한다 노래하던 뛰어난 존재였고 아빠는 엄마가 무능하다 불평하던 비루한 존재였다. 어린 동생은 소외되었고 나는 배의 키와 같은 존재였다. 아빠에겐 성모나 비너스처럼 숭배의 대상이었고 엄마에겐 '너 때문에..., 너만 아니라며..., 너를 위해서...'의 엄마 인생의 원흉이자 희생적인 삶의 이유였다.


몸과 마음 피를 나눈 단 네 명이 탄 그 작은 배안에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마음으로 찬양하고 비난하는지, 왜 소중한데 원망을 받아야 하는지, 왜 태어나 거기 함께하는지 몰랐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책임 회피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지 몰랐다.


우리는 그런 혼란스러운 오랜 항해 끝에 산산 조각난 배의 파편을 하나씩 붙잡고 바다에서 헤어졌다. 그렇기에 난 여전히 그들이 누구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정면의 기념관 이름마저도 실버로 새겨 놓은, 겉과 안 모두 새 하얀 바다 위에 부유하는 추모 기념관에 배가 도착한다. 보트가 내어주는 검은 다리로 발을 내디딘다. 발 빠르게 한 줄로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따라 엄숙함을 따라 이동한다.


신기함과 엄숙함이 공존하는 중간의 넓은 홀. 기념사진을 찍은 이들, 게시판의 역사적 설명에 몰입하는 이들. 전체 도면을 살피며, 침수된 그때부터 지금 그리고 미래의 어느 날까지 연료유를 검은 눈물처럼 바다로 흘리고 있다는, 가라앉은 USS 애리조나의 선체 위치를 가늠해 보는 이들도 있다.  


저쪽 안쪽에 보이는 좁은 삼각형 입구 안의 조용한 통로의 공기가 문도 없이 공간을 확연하게 분리시킨다. 그 깊숙한 내밀함으로 들어간다. 그 안은 왠지 서늘하고 창백하다. 안타까운 이름들이 빼꼭하게 채워져 있는 합동 묘지. 그곳은 누군가 애처롭게 흘리고 간 눈물들의 울림의 잔여 진동이 남아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애리조나호 오클라호마호 등 네 척의 대형 전함이 폭격을 맞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그중 애리조나호는 탄약 격납고에 폭탄이 떨어져 가장 많은 사상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 난파선에 타고 있다 함께 침수된 사람들이 수장된 상실의 바다 한중간에서, 나도 나의 상실의 고통을 잊지 않고 기념한다. 한국에서 엄마를 쫓아 미국으로 향하는 상공에서 바다 깊이 나의 아빠를 수장시켰다. 난 그럴 수뿐이 없었다.


어린 시절 아빠가 내 안에 꼼꼼하고 정교하게 새겨 넣은 이상과 엄마가 폭로하는 아빠의 검은 이면 속에서 나는 한참 방황했었다. 아마 내가 중학생쯤부터 이성적인 판단능력이 생기면서부터 아빠의 이상과 현실사이의 허점 오류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아빠는 부끄러워 그의 지하의 세계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말을 아끼고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슬퍼지고 고통에 일그러져 갔다.


아빠는 나에게 들킨 그의 모순들이 참을 수 없이 수치스러웠던 것 같다. 나로부터 자꾸 도망갔다. 나 역시 그런 아빠가 이해할 수 없어 수치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도망쳤다. 우리는 너무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아닌 이미 아빠와 나는 동질화되어 있었다. 아빠가 만족시킬 수 없는 엄마는 나도 만족시킬 수 없었다.


나에게 당당하지 못하고 자신을 치욕스러워하는 아빠는 나의 치욕이 되었다.  그런 아빠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를 내 마음에서 장래 시키는 것은 나 자신을 부정하는 자살행위와 같았다. 저 멀리, 보통 때보다는 많이 가까워진 아빠는 아마도 나를 그리워하면서 찾지 못하고 있을까. 그저 마음속 검붉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나처럼.


추모관 위로 뻐엉 뚫린 지붕 위로 슬픈 구름이 머무른다. 오늘의 하늘은 동화 속의 하늘처럼 파랗고 청명한데 이곳만 유독 회색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육지로 돌아가기 위해, 누가 타고 있는지 모르는 보트에 다시 오른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앉아 검은 눈물이 쏟아지는 애도의 바다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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