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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Lisa Oct 21. 2023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본다

하와이 열나흘, 오하우 섬 한 바퀴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당신은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요?" 같은 쓸데없는 질문에 언제부터인가 고민도 없이 "아뇨, 괜찮아요. 이대로 살래요" 진지하게 대답하는 나이가 되었다. 수능 전이라던가 고1로 돌아가 이번엔 후회 없이 열심히 공부해 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에는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과 결혼한들 내가 선택하는 사람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하는 주제파악이 되었기 때문일까.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도 살아온 날들이 쌓여 인생을 그때그때 나무 살피듯 하기보다는 삶을 하나의 숲으로 보기 시작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혼자살수 없는 세상이 아니기에, 나 혼자 어찌해 볼 수 없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난 살면서 참 많이 후회했다. 뒤 돌아보고 곱씹고 또 곱씹고 그렇게 인생을 많이 허비했다. 이전에 내게 저런 얼토당토 한 선택의 기회가 정말 주어졌어도, 난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다 그 찬스마저 놓쳤을 것 같다. 그게 나다. 그렇게 미련스럽게 지난날들에 집착했던 나도 이제 하나 둘 내려놓기 시작한다.


아마도 나 스스로도 질리게 매달려봤기 때문인 것도 같다. 불혹이면 남들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도달한다는데, 난 겨우 부모탓 남편 탓 남 탓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지 이제 겨우 깨닫는다. 똘똘한 아이들도 아는 것을 난 마흔에 알게 된다. 그리고 자기 연민에서 빠져나와 애잔한 나 자신을 도닥이기 시작한다.


큰 아이를 낳았을 때, 나도 그 신생아와 비슷한 상태였다. 작은 소음에도 화들짝 놀라고 희미한 빛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먹고 자는 모든 것에 예민했었다. 아이와 조금씩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큰 아이가 나보다 떠 빨리 앞서 나가기 시작했을 때 당황했다. 보통 아이들이 한 살 전후로 겪는다는 분리불안을, 큰애는 금세 극복하고 혼자 잘 걷고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난 여전히 엄마와의 분리불안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급하듯 둘째와 다시 그 과정을 반복했다.  그 아이도 나보다 앞서 나갔다. 또다시 셋째와 한 살 유아의  발달과정으로 돌아간다. 이번엔 낙제했어도 어쩔 수 없이 셋째의 손을 잡고 같이 전진한다.


다행히 아이들은 전속력으로 꾸준히 달려 나가지 않았다. 걷다 뛰다, 전진했다 후진했다 정체했다 반복했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 어린 형이 퇴행현상을 격듯, 성장기 소년이 성장통에 못 이기고 앓아눕듯, 사춘기 청소년이 기행 저지르듯 아이들의 성장그래프는 오르락내리락 파동 쳤다. 그럼에도 그 변동점들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헐떡거리면서 여기까지 쫓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그래프는 아이들 것보다 부진했다. 변동점이 마이너스를 찍기도 여러 번 했지만 그래도 성장했다. 그러고 보니 난 아이들을 키우며 지난 시간들을 세 번이나 복습하듯이 반복 또 반복하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그러게 쉽게 변할 사람이 아닌데 내가 잠시 기특했다.


비록 기울기는 다르지만 세 아이들도 나도 우리는 모두 성장하고 있다. 아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다. 나 조차도. 대학생이 된 큰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급성장했다. 이제 내가 가보지 못한 먼 길로 향하고 있다. "내 아들 다 컸구나!" 감탄이 끝나기도 전에, 혼자 랍스터처럼 벌겋게 살을 익혀 아이처럼 엄살을 부리지만 말이다.


어제 상처 낸 하얀 세단에 아이들을 태우고 출발한다. 큰아이는 아직 못 가본, 작은 두 아이와 내가 이미 가봤던 맛있었던, 재미있었던, 멋있었던 곳으로 그리고 미처 가보지 못하고 지난 친 곳으로 향한다.


하와이, 같은 섬에 펼쳐진 바다들도 제각기 다른 독특함이 있다. 우리 세 아이들처럼. 한 폭의 수묵화같이 채색 없이 오로지 짙고 옅은 먹의 농도만으로 표현한 소나무 바위의 바다,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처럼 햇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연과 그곳 사람들의 감정을 점으로 세밀하게 찍어낸 듯한 색채의 바다. 카뮈의 <결혼. 여름>을 읽는 듯 삶에 활력과 축복을 연상시키는 바다.


그런 하와이의 다채로운 바다를 큰아이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엔 연약해진 그의 피부를 위해 뜨거운 태양을 피해 녹음이 우거진 그런 곳으로 돌아본다. 아이들은 하와이의  엑스트라 라지 쉐이브 아이스, 트럭에서 파는 새우와 포케(Poke) 같은 것만 먹어도 좋으리라.


아이들과 달린다. 창문을 내리고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으러 지나왔던 길을 함께 역주행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왔던 하와이는 특별한 기억이 없다. 그저 사랑하는 아이들의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크고 위협적인 빨강 주황 노랑의 불을 묵직한 리듬에 맞춰 어둠 속의 하늘 위로 던졌다 받았다 입에 넣어다 돌렸다 하는 화려한 불쇼보다 그것에 감동하는 아이들을, 오색찬란한 물고기와 거북이가 헤엄치는 바다보다 모래사장에서 삽질하던 아이들을, 하와이의 화려하고 푸짐한 만찬보다 작은 손으로 어설프게 집어 올려 간신히 자신의 입을 찾아 넣고 만족한 듯 오물오물 잘 먹던 아이들을 기억할 뿐이다.


집 마당에서 놀 때와 똑같이 땅을 파고 돌멩이를 쌓고 의미 없이 뱅글뱅글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라 스페셜 액티비티는커녕 제대로 구경도 못했었다.


이제는 거꾸로 아이들이 나로 인하여 하고 싶은 여행을 못한다. 서핑은 초보자인 나를 배려해 파도가 밋밋한 와이키키 해변에서 그것도 오래 하지 못했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은 땀이 벅벅 되고 걷기도 힘들 정도로 힘든 고난도 하이킹은 원했지만 나를 남기고 갈 수 없어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쉬운 트레일로 대신했다.


미래에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 다시 하와이에 오면 엄마 때문에 우리가 그때 그랬었지 하며 지금의 나처럼 나름대로 추억하지 않을까. 그런 아이들을 위해 오늘은 오하우에서 가장 길다는 집라인(Climbworks)에 도전한다. '아이들은 좋아했지만 엄마는 무서웠다', '내려와 부들부들 떨었다' 같은 리뷰들을 읽고도, 막내의 ”엄마 같이하자" 한 마디에 나도 함께한다.


무리에서 내가 최고 연장자 같다. 아들 1 2 3도 모자라 장난기 가득한 하와이의 선하고 건장한 스태프 1 2 3이 합세하여 놀린다. 겁먹은 연습코스에서 이미 찍혔나 보다. 두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했을 때, 맞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산을 보고(뒤로) 웅크린 자세로 타라고 한다. 안 그러면 중간에 멈춰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야 한다니, 최선을 다해 몸을 동그랗게 말고 팔도 쭈욱 펴고 그렇게 0.5km- 1km를 빠른 속도로 내려온다. 거리감을 잃고 헤롱거린다.


그때 갑자기 크게 충돌하며 줄이 끊어진 듯 ’탁‘ 소리와 함께 잡고 있던 손을 놓치며 나의 몸이 땅으로 뚝 떨어진다. 나도 모르게 자지러지게 소리를 지른다. "우하하~ 우하하하" "엄마! 어엄마~~ 엄마~" 아이들의 짓궂은 웃음소리가 산과 바다로 울린다. 큰소리로 웃던 소리 없이 고개를 돌리고 웃던 모두 웃는다.


여전히 정신 차리지 못하고 안전줄에 매달려 벌벌 떨고 있는 나만 빼고 모두 즐겁다. 내가 아이들의 미숙하고 설익은 모습들을 추억하듯, 아이들도 이다음에 서핑보드에서 나자빠지고, 스노클링 하다 쓰러지는, 별거 아닌 집라인도 무서워 소리치고 벌벌거리던 그런 우스꽝스러운 나를 기억해 줄까. 아이들의 크고 경쾌한 목소리가 깔깔거리는 웃음이 눈 안에서 방울방울 보글거린다. 행복이 울린다. 흔들흔들 줄에 매달리어 감상하는 산과 바다가 아름답다.  


지나온 길 다시 돌아보니 아픈 고통보다 가슴 따듯한 기쁨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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