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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Lisa Oct 19. 2023

아빠와 등대

하와이 열사흘 아침,  마카푸우 포인트 등대

일터로 학교로 모두 떠난 월요일, 우리만 남았다. 이젠 오하우의 거리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마지막 남은 시간을 잘 보내고 싶어 주말부터 렌터카를 빌려 운전을 시작했다. 처음엔 낯선 곳에서의 운전이 무서웠다. 또한 엄마가 된 이후 뼛속까지 침투한 안전 제일주의적 사고는 신중을 넘어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광활한 미국땅에 살며 여러 번의 이사로 사회적인 고립을 경험하기도 했다. 가족 지인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는 크고 작은 그런 시간들을 고마운 경찰 소방수 지나가는 생면부지의 선한 이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벌어지지도 않은 다양한 최악의 경우의 수를 세어보며 가능하면 일을 벌이지 않는 조심성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일 년 넘게 건강문제로 운전은커녕 집 내방 침대에서만 보낸 시간 동안 난 무능한 쓸데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족을 도와주는 그런 사람. 남편의 만류에도 내가 힘들면 큰 아들에게 운전대를 맡기겠다고 약속하고 렌트했다. 남편에게 난 십 대 아들보다도 걱정스러운 사람이다. 사실 나 역시 나 자신이 못 미더워 어디 긁어도 마음이 편한 그런 차가 좋다.


신형 하얀 중소형 세단을 타고 아이 들고 새벽부터 산으로 향한다. 컴컴한 새벽 5시 고속도로에 차가 별로 없어 서행하기 좋다. 한편으로는 도로표지판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노안이 온 눈을 껌뻑이며 갈팡질팡한다. 그렇다 도착한 목적지 입구는 어둠 속에 굳게 잠긴 게이트가 길을 막고 있다. 가로등도 없는 컴컴한 산 아래 반짝이는 별빛에 의지하여 좁은 갓길을 발견한다. 뒤에서 아들 세 명이 기겁을 한다.


"괜찮아, 원래 새벽엔 이렇게 하는 거야!" 큰소리치며 울퉁불퉁한 갓 길에 차를 댄다. 차에 요란하게 긁히는 소리가 길게 난다. 난 세단을 운전해 본 적이 없었다. 낮은 차 바닥인지 옆인지 범퍼인지 모르겠다. 이미 늦었다. 할 말을 잃은 아이들이 헤드라이트도 없이 핸드폰 플래시 라잇으로 차를 둘러본다. 잘 보이지 않는지 포기하고 나를 따라온다.


집에 두고 온 남편에겐 있을 수 없는 주차에 이어 비록 2차선이지만 어두운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한다. 쇠로 막아놓은 게이트를 훌쩍 넘어 하이킹을 시작한다. 오랜만에 저지르는 비행의 설렘인지 불안의 떨림인지 나의 새가슴이 두근두근 요란하게 울린다. 큰 소리는 쳤지만 토잉 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뒤에 세워둔 차를 돌아본다. 다행이다.


한쌍의 커플이 내 차 뒤에 정차하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 그 뒤에 다른 차가 또 선다. 이제 마음 놓고 산으로 전진한다.  마카푸우 포인트 등대 트레일 (Makapuʻu Point Lighthouse Trail)을 기분 좋게 걸어 오른다. 요란스러웠던 운전과 주차가 민망할 정도로 완만한 트레일이다.


바다를 따라 내어 진 넓게 포장된 길을 천천히 걷는다. 바다냄새 시원한 아침바람을 맞으며 오르다 보면 더 이상 초라한 핸드폰 플래시 라잇은 주머니에 넣을 수 있게 밝아온다. 일등으로 도착하여 태양을 기다린다. 아직 시간이 꽤 남았다. 은근슬쩍 안전 차단봉을 넘어 절벽 바위 끝에 자리를 잡는다. 뒤에서 쏘아대는 눈 빛 광성 레이저를 무시하고 등대를 왼쪽 옆으로 해가 떠오를 동쪽을 향해 걸터앉는다.


빨간 지붕의 하얀 등대가 깜빡인다. 아직은 회색빛 바다와 그에 어울리는 어둔 구름 사이에 연한 노란빛이 살며시 아주 살며시 비취 온다. 더 기다려야 한다. 산 위의 바다 공기를 크게 들이마신다. 지금까지의 트레일중 가장 난도가 낮은 완만한 하이킹 코스지만 그 시작점이 중간 언덕일 뿐 정상은 꽤 높다. 이곳에 불어오는 오늘의 바닷바람은 매섭기까지 하다.


힘들게 등반한 어떤 트레일의 정상 못지않게 탁 트인 정경을 자랑한다. 저 아래  등대가 되려 이곳을 지키기에 너무 작아 보인다. 저 멀리 몰로카이 섬까지 보이는 넓고 넓은 바다를 향해 깜박이는 저 작은 힘없는 불빛은 넓은 도로에 딱 하나 켜있는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껌뻑이는 오래된 가로등대 같다.


흐린한 저 등대의 불빛은 도대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내 눈에는 너무도 미미한 그저 작고 귀여운 빨간 지붕의 하얀 등대는 그럼에도 밤바다 위에 떠있는 배들에게는 아마도 절대적인 존재일 것이다.


남동생이 나를 하와이로 초대하고 싶었던 이유는 또 있었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가장 오래 아프고 힘들었던 남동생은 이제 가정의 평화와 화합을 갈망한다. 남동생은 하와이를 떠나기 전 온전한 패밀리 리유니언 (family reunion)을 꿈꿨다. 문제의 나와 '우리의 엄마' '우리의 아빠'까지 함께 모여 용서와 화해의 모임의 자리를 만들고 싶어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척했다. 남동생은 여행 중에도 틈틈이 나를 설득하려 했다. 우리의 부모는 이제 늙었고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는 그런. 하지만 나는 그 마음에도 상처를 줬다. 내가 오랫동안 감당하던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대신하고 있는 남동생이 자랑스럽다기보다 되려 속상하고 화가 났다. “너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살아.“


내 여동생 또한 여행 동안 의사 남동생의 효도를 받으며 잘 먹고 잘 사는 엄마는 그렇다 치고 아빠와의 화해를 권고했다. 남동생과 똑같은 이유를 들이대며, 내가 평생 후회할 것이라고 지난날들은 다 부질없다며 잊고 용서하라고 했다. 하지만 새아버지가 떠났을 때 남동생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아버지의 정을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한다. 여동생 또한 부모의 불화의 한중간에 축복받지 못하고 태어나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다.


그런 여동생은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보다 네 살 차이 나는 나를 더 의지하고 따랐다.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에는 이미 내가 동생의 정신적인 부모였다. 가여운 나의 두 명의 동생들은 나처럼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동생들은 나처럼 그들을 열렬히 사랑해 본 적도 없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 혼란스럽고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망감 상실감은 나보다 적었을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애도 중이다. 사랑 실망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동생들처럼 그들과 적당하게 잘 지내지 못하겠다. 무조건 적인 사랑을 주던, 진리와 미를 알려주던, 내 어린 일상의 전부였던, 내 삶의 배경 음악 같았던 아빠를 나 역시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신뢰했었다. 그렇기에 상처도 컸다. 내겐 가정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우주가 소멸한 것이었다.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아닐까?


저 바다를 향해 손짓하듯 작고 흐릿한 등대처럼 길거리의 수명을 다해가는 외로운 가로등처럼 아빠는 이제 힘이 없고 늙고 초라하다.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절대적인 존재로 어린 시절 멋있던 아빠의 이미지로 내 마음을 지키고 있다. 태평양 너머에서 나를 향해 티도 안나는 시들어가는 빛을 불규칙하게 꺼졌다 켜졌다 깜박이고 있는 것 같다.


절벽에 뿌리내리고 있는 낮은 갈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그 갈대를 지탱해 주는 오렌지색 토양도 바다와 같이 은은하게 진해지고 깊어진다. 바람도 따듯해진다. 탁한 회색 하늘과 구름이 새벽여명에 오묘한 빛을 발한다. 해가 떠오르며 세상이 금빛으로 물든다. 내 마음도 조금은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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