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새로운 비극 (2)
내가 서른두 살, 아내 스물여섯에 첫아들을 낳았다.
땅을 살 돈을 벌기 위해 내가 부산으로 갔던 어느 날, 태어난 지 열 달이 안된 아들은 홍역을 심하게 앓았다. 서둘러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했으나 삶의 경험이 지혜의 전부였던 고지식한 어머니는 돈타령을 하며 욕설로 아내를 주저앉혔다. 상태가 심각해지자 아내는 아들을 둘러업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으로 밤길 이십 리를 내달렸다.
찢어지고 갈라진 맨발로 가까스로 읍내에 도착했을 때 병원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잠에서 깬 의사 앞에 아들을 겨우 내려놓았지만 아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울고 불며 매달리는 아내가 마지막 소원이라며 애원하자 의사는 마지못해 죽은 아들에게 주사를 놓았다. 그러나 이미 굳어버린 몸에 바늘이 들어갈 리 없었다. 퍼렇게 식어버린 아들을 업고 아내는 다시 그 밤길을 되짚어 걸었다. 무식한 미친년이 제 아들을 죽였다는, 아내의 울부짖는 소리가 쏟아지는 비에 묻히던 슬픈 밤이었다.
뒷산 골짜기에 아들을 묻고 돌무덤을 만들었다. 철 모르는 다섯 살배기 딸은 돌무덤을 맴돌며 춤을 추고, 정신 줄을 놓은 아내는 매일 피를 토하며 울었다. 진달래가 흐드러진 들밭에 널브러졌던 아내는, 내가 다녀가는 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던 아내가 보따리 하나를 들고 딸을 앞세워 부산 전포동 루핑 집 마당에 나타난 것이 벌써 일 년 전의 일이다.
좀처럼 말이 없던 아내가 느닷없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큰길 여기에 산부인과가 있고, 여기에 소아과가 있고, 이만 치에 산파가 살고, 여기쯤에 굿 잘하는 무당이 있소.”
아내의 염려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발이 닿는 곳에, 눈이 가는 곳에 반드시 병원이 있어야 했다. 종이를 받아 들고 머뭇거리는데 아내는 말없이 재봉틀을 끌어당겼다.
모두가 만류하는 출근길이었지만 눈앞의 돈을 남에게 거저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무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오후 새참을 기다리는 식당 안으로 주인집 혜자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형님들이 벌떡 일어섰다
“혜자야, 무슨 일, 무슨 일 일어난 거이니?”
“먼 일 나부렀냐? 어따, 혜자야잉, 궁금헝께 싸게싸게 말 좀 혀부러라잉.”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혜자가 겨우 말을 이었다.
“낳았어예. 아랫방 아지매가, 새댁이 아지매가 얼라를 낳았어예. 아들입니더, 아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저녁 길에 용길 형님이 쇠고기 두 근을 끊고, 만종 형님은 미역 한 다발을 안았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집 어머니가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우리를 반겼다.
“막내 아범아, 너네 간나를 내가 받았디. 너네 각시래 저승 두어 번 갔다 왔을 끼야. 얼라 대그빡이 이만해서리. 욕봤디, 암, 욕봤구말구.”
만종 형님이 그 소리를 듣고 마당을 돌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아따, 내 새끼도 아닌디 나가 왜 일케 기분이 좋아번지냐? 용기리 성님, 성님두 일루 후딱 오쇼잉. 이 좋은 날에 춤이라도 춰야허지 않겄소? 엄니도 일로 오쇼잉. 오늘 동네잔치 허장께. 나가 오늘 술도 받고 고기도 받고 싹 다 헐 것잉께. 동네 사람들 다 불러 번지쇼잉.”
문틀에 기대앉아 가쁜 숨을 덮어가던 아내가 그 모습을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아내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 몇 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았다. 옆으로 놓인 포대기 안에서 뽀얀 핏덩이가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었다. 그지없이 무덥던 그 여름의 끝자락, 전포동 루핑 집 아랫방에서 나의 둘째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1971년 양력 8월 20일의 일이었다.
변함없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도시 개발 열풍에 타고 우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아내와 주인집 어머니는 받아온 바느질 감을 날짜에 맞추느라 역시 정신이 없었다. 볼살이 제법 오른 아들은 혜자의 등에 업혀서 잘 크는 듯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말이다.
아들이 태어난 지 삼칠일, 그러니까 스물 하루가 지날 무렵이었다. 복개천 공사 현장으로 뜻밖에, 아내가 아들을 업고 나타났다. 오전 새참을 먹은 직후였다.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망설이던 아내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얼라가 아픕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