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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간호사 KokoA Mar 23. 2024

우울 뫼비우스 띠

우울이 먼저냐 살이 먼저냐

우울할 것이냐? 살찔 것이냐?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처럼 답도 없는 문제.

기분이 꿀꿀한 것도 문제만 몸이 꿀꿀한 것도 문제다.  

<우울 뫼비우스 띠>
우울-항우울제 투여-식욕 및 체중 증가-우울


우울은 무거워져 갔지만 나는 가벼워져 갔다. 우울은 나를 자지 못하게도 했지만 먹지 못하게도 했다. 음식 냄새는 역겨웠고 물조차 삼키기 버거웠다.불면에 식음을 전폐하는 나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자고 싶기도 했고 먹고 싶기도 했지만 내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우울했지만 소중했다. 


내 주치의는 내게 약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주치의에게 간호사라고 얘기했으나 괜히 아는 체한다든가 하는 미운털이 박히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약마저 모르고 먹었다.


하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기에는 ’들은 티를 냈다. '정신과 약'이라는 편견 가득한 이름으로 부르기 싫지만 그 악명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각종 부작용들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마다 가진 체질, 체력이 다를 거고 부작용보다는 치료 효과가 더 높으니까 특정 약들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겠다.)

 

내가 복용했었던 항우울제는 졸음을 유발하고 식욕을 증가시킨다. 쉬운 말로 하면 많이 먹고 많이 자게 한다. 그러면 자연의 섭리대로 살이 찐다. 그렇게 모르는 게 약이라며 모르고 먹던 약을 먹고 10kg이 쪘다. 살찐 우울은 이번에 내게서 요가와 옷을 뺏어갔다. 무거운 몸으로는 원래 잘하던 자세가 안 됐고 아끼던 옷은 계속 아끼게만 됐다. 이제 모르는 게 약 몰라서 독이 되었다.


처음으로 주치의에게 그 ‘정신과약‘에 대해 물었고 주치의는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내가 그 약을 먹은 후 체중이 10kg이나 늘었음을 밝히자 그 약은 부작용이 많이 나타나지 않는 약이라며 놀라 했다. 이제 나는 내가 여태껏 처방받아 복용했던 약들을 안다. 정신과 간호사가 되어서 '정신과 약'에 대해 다시 알아보고 공부하며 느낀 것은 내 주치의는 내가 30대 초반의 여성임을 고려해서 비교적 여성에게 치명적인 예를 들면 체중 증가, 피부 트러블 유발 무월경 등과 같은 부작용이 덜한 약을 처방했다.


그 '정신과 약'은 나의 낡은 우울은 고쳐 주었다. 자게 했고 먹게 했다. 늘 나를 침대로 가라앉히던 피로함에서 구해주었고 힘을 주었다. 하지만 내게 새로운 우울을 주었다. 몸이 무거웠고 움직이는 게 불편했고 좋아하는 요가가 뜻대로 안 돼서 짜증이 났다. 살찐 내 모습이 싫었다. 어떻게 우울할지 선택해야 했다.

나는 우울했지만 아름답고 싶었다. 


모든 약이 그렇겠지만 특히 '정신과 약'은 약을 끊을 때 테이퍼링( Tapering: 장기간 약물을 복용할 때 점차적으로 그 양을 줄여가며 회복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번에 끊어 버리면 금단이 올 수 있고 증상이 재발할 수도 있어 위험하다. 알면서도 한 번에 끊어버리고 싶었다. 아는 사람이 더 하다고 생떼를 썼다. 그러나 내 주치의는 알기 쉽게 말하면 대문자 T성향의 단호한 사람이었다. 나의 생떼가 통할리 없었고 새로 다른 항우울제를 처방해 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로 처방받은 항우울제는 효과도 좋고 부작용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약을 바꾸었다. 약을 바꾸니 졸리지 않았고 식욕은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살이 빠졌고 몸이 가벼워지며 안되던 요가 동작들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끼던 옷을 다시 아껴 입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되찾으니 테이퍼링을 거치며 항우울제 단약에 성공했다. 


우울은 평생 ‘안고 가야‘한다.

‘안고 간다’는 표현을 쓴 건 이 감정을 짐처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처럼 따뜻하게 감싸며 상냥하게 다루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우울은 평생 좋아지고 나빠지기를 반복할 테지만 이제 나는 내가 어떻게 우울하고 싶은지 안다.


우울이 먼저냐? 살이 먼저냐?

먼저는 없다. 우울은 평생 안고 가야 하니까.

그러나 살은 평생 안고 갈 수 없다. 이거야말로 짐처럼 생각하고 내려놓아야 했다. 그래서 원인을 파악했고 약을 바꾸었다. 좋아하는 것을 되찾으니 나는 나답게 우울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우울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어떻게? 에 대한 대답은 아름답게 우울하기.

우울은 내게서 ‘아름다움’만큼은 뺏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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