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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간호사 KokoA Mar 30. 2024

단약(断薬) 말고 단, 약

항우울제라는 저항

약은 약이다.


약은 불편해서 먹는다. 먹고 나면 편해지니 참지 않고 애써 끊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항우울제는 다르다.

어떻게 다르냐고? 불편해서 약을 먹는데 먹고 나서도 불편하고 약을 먹고 나면 편해질 텐데 참고 애써 약을 끊으려고 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단약(断薬)을 시도한다. 치료를 꾸준히 잘 받아 증상이 호전되어서 단약(断薬)을 하는 긍정적인 경우도 있지만 증상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약의 부작용 등으로 단약(断薬)을 하는 부정적인 경우도 있다.


항우울제 부작용
- 메스꺼움과 구토와 어지러움
- 두통
- 입 마름
- 식욕 변화로 인한 체중 증가 또는 감소
- 설사
- 졸음 또는 불면
- 성기능 장애나 동요
- 불안 또는 초조함



간호학생 때 약리학 수업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부작용이 걱정되면 먹을 수 있는 건 효소인 ‘소화제’뿐이라고. 흔히 안전한 약이라 알려진 ‘타이레*’조차 약과 함께 동봉되는 복약 설명서를 살펴보면 설명서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부작용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 어마무시한 양의 부작용이 쓰인 설명 페이지를 다 읽고 약을 먹는 사람이 있을까? 보기나 할까? 거의 없을 것이다. 신경 쓰지 않고 먹을 것이다. 약의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약이 불편함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나는 믿음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나를 두렵게 한 것은 내가 항우울제라는 “정신과”약을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정신과”약을 먹는다는 자체만으로 내가 “불구”라 느꼈다.

스스로를 구해질 수 없는, 성치 않은 존재로 만들었다.


나는 타(他)와 자(自)의 양방향의 시선을 의식했다.

 “정신질환자”라는 타인의 인식과 “의지박약자”라는 자신의 인지를 양방향으로 받아들이며 자신감을 잃었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래서 나는 테이퍼링(Tapering: 장기간 약물을 복용할 때 점차적으로 그 양을 줄여가며 회복 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거치지 않고 무리하게 단약(断薬)을 시도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당연히 증상은 재발했고 악화되었다.


재발과 악화를 반복하면서도 나의 무리한 단약(断薬)은 멈출 줄을 몰랐고 집요하게 단약(断薬)에 매달린 끝에 나는 단약(断薬)에 성공했다. 내가 단약(断薬)에 성공한 것은 내가 어떻게 우울해야 편한지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항우울제의 부작용인 체중 증가를 겪었고 외적인 변화가 주는 스트레스가 더 크고 불편해서 우울했다. 항우울제를 끊고 잠을 못 자면 수면제를 먹으며 나를 가꾸고 운동을 하며 우울감을 조절하며 예쁘게 우울한 편이 차라리 편했다.

그리고 작년 연말에 ‘프라다 파우치 사건’을 계기로 추가로 성인 ADHD를 진단받았고(우울증 얘기 후 천천히 다루겠다) 그때 처방받은 성인 ADHD치료제가 항우울제보다 나의 불편한 부분을 더 잘 도와주었다. 

나는 우울감보다 집중력, 기억력 저하가 더 불편했다. 나는 책과 글과 외국어가 좋은 사람이니까.


내 인생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스케치를 하고 스케치된 테두리에 색을 칠하는 것보다 이미 있는 것에 좋아하는 것에 시선을 두고 초점을 맞춰 선명하게 담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내게는 항우울제라는 물감이 아니라 ADHD치료제라는 필름이 필요했다. 카메라에 물감을 쓸 순 없지 않은가? 필름으로 색칠을 할 수도 없고.

알맞은 용도로 쓰여야 예술이다. 다른 장르가 하고 싶으면 도구를 바꾸면 된다.


약도 그렇다.

필요에 맞게 알맞게 쓰면 되고 불편하면 약을 끊었다 하더라도 다시 복용하면 된다. 그래야 항우울제뿐만 아니라 다른 약들도 편해진다. 나는 항우울제나 수면제 등을 구태여 “정신과“약이라 구분 짓지 않는다. 약은 불편한 사람들을 편하게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신과”약에만 따라붙는 집요한 두 글자

단약(断薬)단, 약.

단지 약이 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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