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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간호사 KokoA Apr 06. 2024

우울왈츠

봄의 우울

강약약, 강약약

모데라토와 알레그레토 사이의 약간 빠른 템포로

쿵짝짝,쿵짝짝하는 특유의 리듬.

그렇게 봄의 우울은 온다.

저음 위에 우아한 선율이 얹어진 왈츠처럼.


봄, 우울은 쇼팽의 왈츠처럼 온다.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빠르거나 너무 격정적으로. 


3월, 4월.

겨울의 끝과 봄의 앞섬의 순간에 꺼내고 싶은 것은 봄의 것이었다. 조금은 힘없이 늘어지고 잇따라 뭉크러지고 흔들리는 그런 것. 

그러나 봄의 것은 겨울의 것들의 팽팽하고 단단하며 흐트러짐 없는 집요한 냉함(冷)에 울렁인다. 낮은 봄이 이끌어주는 따뜻한 앞섬에 밤은 겨울이 끌어내리는 차가운 물러남의 온도차는 우울에 무게를 더했다. 오르는 기온은 '바람과 태양'속 동화의 태양처럼 두껍고 무거운 겨울 옷들을 벗겨냈다. 가벼워질 줄 알았던 우울이 물 먹은 스펀지처럼 다른 무거운 기운들을 쭈욱 빨아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나는 무력하게 다망(多忙)했다. 무력하지만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매년 2번 주어지는 스타트라인이 있다. 한국에서는 3월, 일본에서는 4월. 

3월에 서지 못했던 그 라인. 4월에는 서고야 말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늘 생각 속에만 존재하던 나의 정체성 ‘요가 선생님’이 되기로 했다. 그런데 어딘가 고장이 난 것 같았다.


너무 피곤했다. 얕은 잠을 잤고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집중을 할 수 없었다. 하지 않던 실수를 했고 아끼던 연필을 잃어버렸다. 외로움과 공허함에 과식하기도 했다그중 제일 위화감을 느끼고 불편했던 것은 익숙한 공간에서도 불안하고 긴장을 한다는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은 나는 영리하게 우울한 편이다. 내 몸의 변화를 단지 몸의 변화로만 여기지 않고 마음이 보내는 사인으로 잘 캐치한다. 나는 이게 분명 우울이 보내는 모스부호들임을 안다. 하지만 암호 해독에는 젬병이다. 암호 해독에 골머리를 앓던 중에 얼마 전 심리학을 전공하는 친구와 만나 도움을 얻었다. 뇌과학이나 신경전달물질을 잘 아는 친구였는데 이상하게 요즘 너무 몸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되고 피곤하고 무기력하다 얘기하니 '봄'이라서 그렇단다. 


뭐라고? '봄'이라서 그렇다고?


'봄'이면 날씨도 따뜻하고 꽃도 피고 하늘도 맑으니까 텐션이 오를 것 같은데 오히려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내게 눈을 가늘게 뜨고 지그시 쳐다보던 친구는 “이렇게 변화가 큰 계절에 자율신경이 일해야 하지 않겠어?”라고 했다.


그렇다. 봄은 기후와 환경 변화가 크고 많은 계절, 변화가 크고 많으면 자율 신경이 긴장 상태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겨울의 적은 일조량에 익숙해져 있다 봄이 됨에 따라 늘어나는 일조량 변화에 적응해야 하고 변화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자체로 스트레스이다. 거기다 일조량 변화는 수면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수면 부족 상태가 되면 컨디션 저조로 이어지고 피로가 쌓인다. 그래서 자연스레 집중력이 떨어지고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니 감정 조절에도 에너지를 쓴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무너지기 쉬워진다.세상은 봄이라며 저리도 단란한데. 나는 왜?’하며 와르르 무너지려 했던 순간, 암호 해독을 도와준 친구 덕분에 단란할 수 없는 봄도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쇼팽의 왈츠는 왈츠를 출 때 연주하기에는 부적합하지만 왈츠라는 장르의 예술성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곡으로 평가받는다. 

나의 봄은 세상의 봄이 가져다주는 설렘과 의욕은 받지 못 하지만 시를 쓰게 하기도 노래를 부르게 하기도 하고 드라마 속 히로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나를 예술하게 한다.


겨울의 언덕을 넘어온 

햇살에 닿으며 바람을 쐬며 비를 맞으며 

나의 꽃도 핀다. 흐드러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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